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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일기 Jul 03. 2024

헤어진 그날로 수십 번을 돌아갔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지만

  회식이 있었다. 그는 돌아오기로 한 시간을 두 번이나 어겼다. 2차를 가지 않겠다는 약속도 어겼다. 잔뜩 화가 난 나는 그를 몰아붙였다. 


내가 기분이 상할 때마다 오히려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하고 싶은 얘기를 온전히 하지 못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내 얘기를 필터링하며 가장 나은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후련했다. 드디어 하고 싶은 얘기를 전부 다 했다. 


헤어질까 두려워서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날, 싫어하던 나의 모습을 한 꺼풀 벗었다.


나는 당연히 그가 집에 돌아와 나를 달래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그는 자신의 힘든 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오늘 일은 미안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이렇게 계속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싫다고 했다.


평생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 수는 없다, 나는 인정받고 환영받고 싶다, 모두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나는 결혼하고 싶지만 너는 결혼생각이 없지 않냐, 그 점이 나는 계속 힘들었다...


나는 또 마음이 약해졌다. 감정이입은 정말 병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쫓기듯이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또 그날 사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듣지 못했다.


그는 이성과의 통화기록을 또 삭제했고, 삭제한 건 미안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네가 이렇게 화낼걸 아니까.라는 가스라이팅이 돌아왔다.


그의 말대로 통화녹음은 10초가량 별 얘기는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성과 연락한 내역을 삭제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한다. 나는 그 통화기록이 삭제되었을 때 이미 알았다. 끝났다는 걸.


그렇지만 내 입으로 차마 헤어지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한다. 나는 그를 잃는 게 늘 두려웠다.


그래서 되뇌었다. 제발 헤어지자고 말해... 아니야 잘못했다고 빌어... 어서 헤어지자고 해...


결국 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왔고, 나는 기쁘면서 슬펐다. 슬프면서 기뻤다. 이 말도 안 되는 감정 속에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침대에 누웠다. 그를 바라보는데 또 용서가 될 것도 같았다. 나는 참 바보 같다.


2주만 시간을 줘. 평소대로 지내다 2주 뒤에 헤어지자.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고서는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렇게 끝났다.



나는 오늘도 그날로 되돌아간다. 


내가 이 말을 안 했더라면, 저 말을 안 했더라면, 내가 참았더라면.


슬프게도 그날의 내가 어떤 행동을 했어도 결과는 이별이다.


수십 번을 그날로 돌아가서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했어도 아 결국은 헤어졌겠구나, 그 사실이 슬프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았을 거니까 후회는 없다. 그냥 슬플 뿐이다.


그날로 돌아가면, 불안하고 아프고 힘들고 또다시 버림받고 상처받은 내가 있다. 


너무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운 나 자신이 있다.


독인 줄 알면서도 놓지 못했던 처절했던 내가 미련하고 한심하고 애틋하다.


나는 그날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뇐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한다.


이제 그날을 지워야만 한다. 트라우마로 남은 그날의 기억을 지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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