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이 사라질 때 멘탈은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외부의 인정 없이도 견고한 자아를 찾아가는 내면 성장의 여정

by HEE

존재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일까, 아니면 타인에게 기억되는 정도일까. 그동안 나는 존재감을 외부의 인정과 반응으로만 측정해 왔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 의견을 구하고, 내가 없으면 아쉬워하는 것들로 내 존재의 가치를 매겼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텅 빈 공간에 홀로 서 있는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소음들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내 안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는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직해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추하고 부족한 면들도, 숨겨왔던 소망들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멘털이 견딘다는 것은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관점을 갖는 것이었다. 나는 존재감을 '양적'으로 측정하던 방식에서 '질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한 사람에게라도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해 완성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이 평온하고 진실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거창한 인정이나 찬사를 기대하는 대신, 작은 순간들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꽃에게 물을 주는 일,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미소 짓는 일, 도서관에 자리 잡고 수십 권의 책들을 펼쳐놓고 찾아 읽는 일.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있으나마 나한 존재라는 것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우주에 파장을 만들어낸다. 다만 그 파장이 너무 미세해서, 혹은 다른 주파수라서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나의 멘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를 다시 정의했기 때문이다. 외부의 반응에 의존하던 존재감에서 내면의 충실함에 기반한 존재감으로.


지금 돌이켜보면, 있으나마 나한 존재가 되었던 그 시간은 나에게 선물이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나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존재감이란 크기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라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진실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존재감이 생긴다는 것을.


있으나마 나한 존재가 되었을 때 나의 멘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 경험 자체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운동을 통해 근육이 강해지듯, 고독과 무시라는 무게를 견뎌내면서 마음의 근력이 생겼다.

이제 나는 누군가 나를 보지 않아도,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결국 있으나마 나한 존재란 없다. 모든 존재는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의미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진정한 존재감은 내면에서 나온다. 내가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가는가,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하는가, 얼마나 성실하게 나 자신과 마주 하는가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갈 때, 나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의미로 존재하게 된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의 진실함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에 닿게 된다.


나의 멘털은 견뎌냈다. 아니, 견뎌낸 정도가 아니라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존재의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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