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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향 Aug 11. 2024

스물셋, 나를 찾는 여행

내 삶의 연금술사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51페이지”



며칠 전 연이은 서울나들이를 갈 때 챙겨간 책에서 이 문장이 참 맘에 들었다. 내 역사 속 여행들을 떠올려보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소소한 나의 여행 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하루는 휴학생 시절, 한 달 반을 다녀온 유럽배낭여행 중에 있었다.

혼자 가기는 무서워서 인터넷에서 여행메이트를 구했다. 다행히 성격 좋고 맘씨 고운 한 살 위의 옥이언니를 만났다.

2006년 10월 12일, 공항으로 가던 그때의 설렘이 생각난다



  말레이시아항공을 타고 쿠알라룸푸르에서 1박 경유 후 첫 유럽 여행지는 영국이었다.

피가델리 서커스에서 맘마미아 뮤지컬을 보고, 하이드파크를 걸으며 켄싱턴 궁전을 구경하고

자연사박물관과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테이트모던갤러리 등을 들렀다.

런던 타워브리지와 웨스트민스터사원, 트라팔가광장, 빅벤, 2층 버스도 타고 명소에선 숙제처럼 사진을 찍곤 했다.

케임브리지대학, 근교인 브라이튼에서의 하루, 그리니치천문대와 내셔널 갤러리, 세인트폴성당,

펍과 클럽의 분위기도 체험하며 가이드북에서 추천해 준 코스들에 점을 찍었다.

일주일쯤 머물렀는데 매일 구름 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심난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적응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적응이 될만하면 떠나야지..

런던에서의 마지막날 대영박물관을 보고 벨기에로 넘어가는 유로라인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언니는 컨디션난조로 숙소에 있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여행을 가면 언제 여길 다시 오랴, 볼 건 다 보고 가는 스타일이라 5시 전에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씩씩하게  대영박물관을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어서 바로 옆에 마트에 들어갔는데 식료품만 판단다…

 봉지가 눈에 띄어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대영박물관을 향해 뛰어가며 보이는 이들을 띄엄띄엄 붙잡고서 길을 물었다.

한 명은 키가 큰 백인남자였는데 자기도 거길 간다며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같이 가자고 했다.

이름은 크리스, 폴란드인이었다.


대영박물관까지만 가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자꾸 안내해 준다.

나의 짧은 영어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는데.. 나중엔 불편하고 또 나의 일천한 영어실력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3층인가에 삼성에서 후원했는지 한국관이 아주 조그맣게 있었는데

영어도, 역사지식도 참 짧아서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게 한이 되었다.

돌아가면 영어와 역사를 공부하리라 불끈 다짐했었는데 돌아와선 또 사르르 식었네 ……^^;;


그는 나에게 영어 말고 다른 언어는 할 줄 아는 게 없느냐, 예를 들면 독일어 말이야~~라고 물었는데

독일어는 제2외국어로 택했지만 구텐탁! 구텐모르겐! 이히리베디히~ 정도밖에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아 차마 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난 학교에서 뭘 배운 걸까 싶던 그날.


여러 생각과 자책으로 마음은 불편하고,

크리스랑 박물관을 다 둘러보느라

다리는 부서질 것 같았다.

함께 탔던 지하철역에서 크리스는 나보다 먼저 내렸고,

나는 도착역을 두 정거장 남기고 있었다.


갑자기 고압적인 영국발음의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충 알아듣는 단어로는 고장 났으니 내리라는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다 내렸다.

핸드폰도 없고, 민박집 전화번호도, 주소도, 길도 모르는데… 머릿속이 까매졌다.

 우선 다 나가니까 일단 내가 내려야 하는 지하철역을 향해 가면 된다고 차분하게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나름의 직관으로(사실 나는 길눈이 그리 밝지 않다 ㅋㅋ) 길을 걸어갔다.


가도 가도 거리는 낯설었고 주변은 어두워지고, 인적도 드물었다. 무엇보다도 유로라인을 타야 하는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었다.

종교도 없는데 온갖 신이름을 불러대며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착하게 살겠다고 빌고 또 빌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내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나는 이 역을 가야 한다고 울상으로 물었다.

한 백인 청년이 나를 가엾게 바라보며 거의 다 왔다고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을 때 한줄기 빛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 방향으로 전력질주를 하니 다행히 아는 길이 나왔다.

민박집에서 언니랑 얼싸안고 후다닥 짐을 챙겨 미친 듯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유로라인 버스에서, 선박으로 옮겨 탄 뒤에야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살!

았!

다!


난 저 패턴의 프로그램이 내 안에 있구나 글을 쓰며 다시 보인다.

호기심-위기상황-도움의 손길-안도 이 패턴으로 내가 여기 살아있음을 느끼고,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주의 섭리 혹은 신에 대한 감사, 나에 대한 믿음과 고마움을 획득한다.


그렇게 조금씩 다양한 여행지에서 나를 넓히며 살아있음 조각을 다시 닦아 빛나게 하거나, 새로운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내 여행의 이유다.


결국 나를 찾는 여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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