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향 Jul 12. 2024

스물넷, 겨울 백두대간 단상

내 삶의 연금술사


2008년 1월 초쯤 사회복지대학생들을 위한 카페에 6차 백두대간에 대한 모집 글이 떴다. 2월 말이면 졸업이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이 많았다. 그런 나에게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체력도, 등산장비도, 참가비도 그 어느 하나 갖춰진 게 없는 상황 속에서 마지막이란 생각에 덜컥 참가신청서를 냈다. 먼저 다녀온 선배에게 등산장비를 빌리고,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지인들에게 추천서와 후원금을 받고 부족한 건 장학금을 신청했다.

자연주의사회사업가 한덕연선생님과 함께하는 6차 백두대간 최종 멤버는 남학생 11명과 여학생 2명에 구간참여자 10여 명이다. 2월 8일부터 23일까지 15박 16일간의 일정이었는데 워밍업으로 월출산과 생일도의 백운산, 장흥의 천관산을 올랐다.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은 구간이 길어 대피소에서 하루나 이틀 묵었고 속리산,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은 새벽 4-5시경 입산하여 일출을 보고 사람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하산했다.

지리산을 오르던 첫날,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엄한 공기가 우리를 에워쌌다. 체력이 약한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선생님 바로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한 걸음씩 오르며 눈에 들어오던 설경은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했다. 완만한 곳에서는 눈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고 노래자랑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덧 해가 기울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체온과 함께 체력도 떨어졌다. 자꾸 뒤로 처지자 내 짐을 동료들이 나눠 들어줬지만 나의 심신은 천근만근이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초콜릿과 위스키를 나눠먹어도 영하 25도의 기온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됐고 동료들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어 버린 내가 미웠다. 부질없는 생각이었지만 왜 여길 왔을까 후회했다. 힘들어 흐느끼는 동료에게 그 어떠한 반응을 해줄 기운조차 없이 얼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주저앉아 다 놓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찰나. 선생님은 뒤돌아 나를 안아주셨다. “괜찮다. 12시 되려면 아직 멀었다.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려보자.” 할 수 있는 건 한걸음 앞으로 디디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무신론자이지만 유일하게 외우는 주기도문을 나와 모두를 살리는 동아줄인 마냥 붙잡고 그저 한 걸음씩 내디뎠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때 뒤에서 파이팅 소리가 들렸다. 실없는 소리로 웃게 해 주려던 후배와 등 뒤를 밀어주던 선배의 온기로 한 걸음씩 디디며 나아갔지만 시간은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도착했다!”라는 감격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 우리가 해냈구나. 살아서 도착한 게 꿈만 같고 고맙고 미안해서 얼싸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밤 연하천대피소 앞에서 우리의 포옹과 눈물은 만날 때마다 안주거리가 되어 우리를 다시 백두대간 동지로 만들어주었다.

새벽이면 주먹밥과 누룽지를 싸들고 랜턴에 의지해서 산에 올라 일출을 보았다. 오르다 보면 우리의 속눈썹과 눈썹은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콧물은 줄줄 흘러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꾀죄죄한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차가운 주먹밥을 먹을 때면 너무 추워서 젓가락이 입에 쩍쩍 달라붙었고 억지로 먹었던 주먹밥이 탈이 났는지 장염으로 여러 날 고생한 적도 있었다. 연이은 등산에 내 무릎에서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오가곤 했었다.

덕유산을 오르던 날, 일출을 보기 위해서 속도를 내라고 재촉하셨던 선생님에 대해 원망 섞인 마음이 올라왔다. 선생님은 씩씩대며 올라온 나를 보시곤 “오르막이 많았는데 올라온다고 수고했다. 잘했다”라는 말로 뾰족한 마음을 녹여주셨다. 그날이 선생님 생신날이었는데 여기까지 안전히 온 건 우리 덕이라며 큰 절을 하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매일 새벽 우리의 안전을 위해 새우잠을 주무시면서도 기도로 섬겨주시던 선생님의 품은 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까맣게 타고 거친 피부를 한 채로 졸업식을 한 나는 그 뒤로도 취업, 이직, 이별, 퇴사, 결혼, 임신, 출산 등 여러 인생 산을 오르고 내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생각하면 놀라운 15박 16일의 강행군은 삶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다. 넋 놓고 본 여러 날의 일출과 일몰, 밤바다의 파도소리, 쏟아지던 별빛이 내 가슴속에 살아있다. 서로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들과 에피소드를 나누며 함께 터뜨렸던 환한 웃음, 헤어질 때의 전우애 섞인 포옹과 덕담들은 어둠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작은 빛이 되었다.

17년 만에 열어본 백두대간 기록은 무수한 산과 동료에 대한 사랑을 떠오르게 했다. 무엇보다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걸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알게 됐으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




작가의 이전글 40살의 내가 10살의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