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의 컨셉은 지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질문과 닿아있다.
일본의 장례 전시회, 엔덱스 2025에 다녀왔다.
처음엔 장례 산업의 새로운 기술이나 특별한 서비스들을 볼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내게 다가온 울림은 기술의 혁신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장례라는 문화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였다
한국의 장례식은 대체로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된다. 조문객은 검은 옷을 입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술잔을 올린다. 대부분의 대화는 “어떻게 돌아가셨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애도의 시간이지만, 정작 고인의 삶을 함께 되새기고 나누는 자리는 좀처럼 마련되지 않는다. 우리는 고인이 어떻게 떠나셨는지에만 익숙하고, 그분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이야기하는 데는 인색한 것 같다.
반면 일본에서 본 장례는 달랐다. 거기서는 고인을 단순히 떠나보내는 존재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대한다.
장례식장에는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이 흐르고, 생전 즐겨 입던 색깔이 드레스 코드가 된다. 벽에는 사진과 영상이 걸려 있어 조문객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삶을 다시 여행한다. 누군가는 고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고마웠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아이들은 서투른 글씨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관 속에 넣으며 사랑을 전한다. 눈물 속에서도 감사가 함께 흐르는 모습, 그 따뜻한 풍경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죽음이 차갑지 않고, 여전히 대화와 온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선명히 전해졌다. 어떤 경우에는 떠나기 전 미리 ‘사전 장례식’을 열어 소중한 이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때 이별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는 뜻깊은 감사의 자리가 된다.
그 모든 경험 속에서 나는 우리의 장례 문화를 돌아보았다. 너무 빠르고, 너무 형식적이지 않은가. 고인의 목소리, 웃음, 삶의 향기는 정해진 예배와 절차 속에 묻혀버린다. 장례식이 ‘이별의 확인’ 자리로만 남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그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함께 걸어드릴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일본의 문화는 장례가 더 따뜻하고 더 인간적인 기억의 자리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장례는 단절이 아니라 이어짐이며, 단순한 작별이 아니라 삶을 기념하고 고인의 삶의 모습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에리히 프롬도 이렇게 얘기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죽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삶을 충분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질문과 닿아 있다.
마침 이때 내가 격주로 참석하는 북클럽에서 호소다 다키히로의 『컨셉 수업』을 읽고 있었다. 컨셉이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기억될 이유와 감정을 담아내는 핵심 메시지라고 한다. 예를들어스타벅스의 컨셉은 “제3의 공간”이고 애플의 아이팟 컨셉은 “주머니 속 1000곡”이다. 에어비앤비의 컨셉은 “Belonging Anywhere”다. 이처럼 좋은 컨셉은 기능을 넘어, 삶의 맥락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장례의 컨셉은 무엇이어야 할까?
일본 장례의 컨셉은 분명하다. “고인이 어떻게 떠나셨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함께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인데 비해, 한국 장례의 컨셉은 여전히 “절차와 효, 슬픔” 중심에 머물러 있다.
만약 나 자신의 장례식 컨셉을 정한다면, 내 마지막 자리가 눈물로만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함께 웃으며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한 기억의 무대가 되면 좋겠다. 누군가는 “그 사람 덕분에 참 따뜻했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삶에서 작은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고 말하는, 긍정의 기억이 넘치는 컨셉 말이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는 자신의 쓸쓸한 장례식을 미리 보고 삶을 바꾼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미래로 갈 필요가 없다. 내 장례식의 컨셉이 무엇이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본다면, 지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곧 삶의 컨셉을 세우는 일과 맞닿아 있다.
장례의 컨셉을 바꾼다는 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