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실수여, 감사하나이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썰렁했다. 내일 아침 산뜻한 것을 해주고 싶은데, 때 마침 마켓컬리 7천 원 쿠폰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바로 주문. 계란, 방울토마토, 그리고 큰마음 먹고 고른 비싼 고랭지 사과까지. 당근, 야채, 훈제 오리, 밀도 식빵을 하나씩 담으니 5만 원이 채 안 된다. 두부를 추가하고, 아차! 김치찌개용 참치캔이 다 떨어졌구나… 어쩌다 보니 7만 원까지 훌쩍 넘어버렸다. 지난번 결제 실수로 배달이 취소된 아픈 기억이 있어, 이번엔 결제 완료와 주문 완료 화면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밀도식빵에 크림치즈를 발라 아삭한 사과를 올려 식탁을 차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음 날 아침부터 부산했다. 출판사에 출판 기획서를 보내야 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기획서를 완료 후 전송 버튼을 누르고, 이제 맛난 아침을 먹자 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어라 현관 앞 보랏빛 컬리 가방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또 결제를 실수한 건가 싶어 나를 책망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치매인가 싶어 급 우울했다.
하지만 배송까지 완료된 상태라고 뜬다. 뭐지? 뭐지? 한참을 뒤지다가 보니, 배송지 주소가 언니네 집으로 된 것을 발견했다. 이 주 전, 언니와 형부가 코로나에 걸려 꼼짝 못 할 때 밀키트를 보내주었는데, 그 주소가 기본값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켓컬리는 종종 ‘지난번 배송 주소’를 불러온다. 예전에도 이래서 배송 사고가 난 적이 있어, 찾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언니 집으로 배달된 것이었다.
급히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가지러 갈 테니 잘 보관해 둬.”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언니의 행복한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세상에, 뭘 이렇게 다양하게 많이 보냈니? 형부랑 둘이 보면서 네 마음이 참 따뜻하다고 했어. 너무너무 고마워. 이제 병도 다 나았는데 뭘 지금까지 신경을 써… 아침으로 사과랑 식빵을 먹었는데, 식빵은 얼마나 폭신한지, 사과는 얼마나 아삭한 지 행복하더라. 너희 아침 시간에 바쁠까 봐 좀 있다 전화하려 했지.”
그 순간 다행히도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 “언니, 내 취향으로 고른 거라 언니나 형부 입에 안 맞는 너무 일상적인 식재료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찮아?” 언니는 다양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언니의 기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배송 실수가 오히려 감사해졌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언니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난다. 언니는 늘 내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직장에 매달려 살아온 삼십여 년 동안, 언니는 매주 우리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고 반찬을 챙겨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더욱 살뜰히 챙겨주었다. 이제 언니는 나에게 친정엄마 그 자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할 때마다, 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내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진심을 다해 우리 가족을 돌봐주었다. 아이가 킥보드에 다쳐 이마에서 피가 날 때도, 도우미 아주머니가 일찍 가서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도, 소풍 김밥을 싸야 하는데 밤샘 작업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언니는 언제나 내 빈자리를 행복하게 채워주었다. 언니 본인은 직장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기에, 내가 집안일 때문에 일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정말 촘촘하고 따뜻하게 챙겨주었다.
내가 퇴임하자 언니는 오히려 좋아했다.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언니랑 여행도 다니고 놀자”라고 말이다. 그런데 책을 내고 강의를 준비한다며 오히려 언니와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와 반찬을 가지고 오는 것도 말렸다. 내가 집에 있는데 언니에게 도움을 받는 게 미안해서였는데, 그래서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언니를 보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바쁘다고, 여전히 언니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나에게… 장바구니 하나로 언니가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언니의 그 웃음소리와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깊이 반성했다. 내 삶에 가장 큰 선물은 이미 오래전부터 곁에 있었는데, 나는 너무 늦게야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오직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다. 언니의 웃음, 형부의 칭찬, 폭신한 식빵에 담긴 기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가득 채웠다.
배송 실수를 만들어준 마켓컬리 시스템이 고마워졌다. 그리고 순발력 있게 대응한 나 자신도 다행스럽다. 앞으로 종종 이런 일상의 장바구니를 보내야겠다. 계란과 토마토, 사과와 식빵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진정한 선물이란 물건이 아니다. 그 사람을 기억하고 배려해서,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내 마음을 전하는 것, 늘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것이다. 언니는 그런 마음으로 그 장바구니를 받아들였다. 비싼 고기 선물도 아닌데… 일상의 소박한 장바구니 하나로 언니도 나도 참 행복한 아침을 맞았다.
이런 아름다운 실수는 자주 해도 좋겠다. 깨달음을 주는 소중한 아침이었다.
언니, 미안하고 사랑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 사랑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곁에, 일상 속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