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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바로 피는 꽃은 없다. 꽃은 기다림 끝에 핀다

꽃밭의가르침. 삶도 그렇다.

by 초록풀


세상에 바로 피는 꽃은 없다. 꽃은 기다림 끝에 피어난다. 삶도 그렇다.


골목길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장미 화분과, 그리스 에게해를 닮은 찐 파랑 화분통이 서 있는 좁은 길목의 풍경. 골목길 사이에 빼꼼히 살짝 보이는 사진 속 화분과 꽃이 마치 소녀가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누구세요? “라고 수줍게 묻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고향이 강원도 태백인데 친구는 친정을 다니러 태백엘 자주 간다. 친구가 골목길과 누군가의 대문 앞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골목길 따라 그 끝에 시선을 멈추면,

“파란 화분과 장미꽃이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살짝 내밀고…. 누구세요? 묻는 느낌이 들어. 골목을 돌아 만난 집 앞은 파란색 화분들이 마치 그리스 에게해 정취를 옮겨다 놓은 것 같아”라고 답을 하자 그녀가 말한다.


“태백을 갈 때면 늘 빼먹지 않고 하는 게 있는데, 저렇게 좁은 골목길을 걸어보는 거. 그러다 만난 막다른 골목의 두 평 남짓한 계단에 장미 덩굴을 심는 사람. 그 와중에 화분은 블루 깔맞춤하고 말이야.

이토록 조용히 피어난다는 건, 얼마나 고요한 결심일까…

막다른 길이라, 아무도 모를 소소한 풍경.

정성스럽게 사는 쥔장이 궁금해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왔다”라고 한다.


골목길 앞에 한참을 서서 바라본 친구의 마음과 사진 덕에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으로 훌쩍 시간 여행을 했다.

마당이 넓었던 우리 집은 온통 꽃밭과 나무로 둘러 싸여있었다. 봄이면 먼저 목련이 피고, 그다음 라일락 나무에 새순이 돋아났다. 밑에서는 채송화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고, 여름엔 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수세미를 보며 저렇게 예쁜 것에 수세미라는 이름이 안 됐기도 하고, ‘저게 진짜 수세미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이중의 생각을 하곤 했었다. 우리 집엔 하와이안 무궁화라는 화려한 빨간 꽃도 피었는데, 늘 분홍빛 수수한 무궁화가 국가 대표 꽃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 하와이안 무궁화를 참 좋아했었다. 수수한 꽃밭에 한 점 포인트 같은 존재였달까.


가을 막바지, 찬바람이 불 때면 꽃씨를 따다 종이에 싸 넣고 책상 서랍에 보관했다. 그 일 년의 의식이 나에게 참 많은 가르침을 줬다는 것을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뿌린 씨앗들이 저 무거운 땅을 뚫고 여린 싹을 드러낼 때, 얼마나 대견했던지 박수를 치며 좋아했었는데…. 그 대견한 모습은, 내가 힘들 때마다 ‘그 작은 씨앗도 땅을 뚫고 올라오는데, 내가 이것을 못 이길까? 땅속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씨앗보다 나은 상황이쟎아’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극복했었던 것 같다.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내 마음처럼, 예전의 씨앗들이 나를 응원해 주는 느낌이었달까?


무언가 긴긴 기다림으로 지칠 때도 종이에 싸둔 씨앗을 떠올렸다. 작은 씨앗이 예쁜 꽃들이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종이와 땅속에서의 시간. 기다림 없이는 새싹도 꽃도 볼 수 없다는 것, 결과를 맺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땅을 뚫고 올라오는 대견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기다리는 것에 조바심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며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배운 것도 그 꽃밭에서였다.


어릴 땐 몰랐는데, 무의식 중에 어린 시절 가꾼 꽃밭이 나에게 엄청난 삶의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원이 생겼다. 예쁜 집을 지어 손자 손녀들을 그곳으로 불러 매년 봄과 가을에 꽃씨를 뿌리고, 또 씨를 받아 보관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 꽃들에게 배운 인내와 시간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사는 게 바빠서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키우느라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 버렸지만, 손자 손녀들에겐 꼭 그 기억과 배움을 선물해 주고 싶다. 그러고 보면 그 꽃씨 의식은 아버지와 같이 했었다. 새삼 아버지가 참 멋진 분이셨다는 생각과 엄마로서 나의 부족함에 반성을 하게 된다.


이런 얘기를 하니…. 친구가 답한다

“꽃씨를 서랍 안에 넣고 있는 작은 손이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하며 꽃길만 걸으라는 이모티콘을 친구가 보내준다. “내가 가진 유일한 꽃 이모티콘이 이거밖에 없네 ㅎㅎ“ 이런 유머스러운 답을 하는 그녀와 아무도 모를 소소한 골목길 풍경 앞에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는 그녀가 한 사람이라는 게 참 좋다.


“나도 그 꽃씨를 심었던 너와 유리 천장을 뚫고 나온 네가 한 사람인 게… 조타~~”

친구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따뜻하게 감쌌다. “그러네, 나도 평생을 유리 천장을 뚫고 올라선 꽃씨였구나.” 33년을 여성으로 직장 생활을 해온 나에게 언제나 유리 천장을 뚫고 올라서는 것은 숙명이었다. 새삼 그 말이 내 인생을 설명해 줘서… 참 먹먹하고 대견하다.


어린 시절의 꽃밭은 이렇게 나를 가르쳤다. 작은 씨앗도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꽃이 된다는 것을. 땅을 뚫고 올라서는 힘은 아무리 미약해도 다 갖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바로 피는 꽃은 없다는 것을…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기다림 덕에 새싹과 꽃이 더 특별하고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하는 추억과 교훈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막다른 골목에 꽃을 심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를 소소한 풍경을 만들어가면서, 그 꽃은 시간을 인내하며 고요한 결심으로 조용히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꽃들은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에 또 다른 추억의 꽃을 피워주고 있을 것이다.


꽃밭의 가르침은 이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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