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경청력
'회복 탄력성'이 좋다는 표현은 대게 어려운 일에도 빠르게 본인의 페이스를 되찾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매우매우 중요하다. 일을 하다보면, 사람을 대하다보면 행복보다는 스트레스와 좌절의 시간이 더 많을 것이기에..
요즘 드는 생각은 이 만큼 중요한것이 나를 들여다보는 힘인것 같다
나를 들여다보는 힘
(이 힘은 어떤 명칭을 붙여줄 수 있을까? 내면 경청력?!?)
현실적으로 이를 기르기 매우 어렵다.
늘 무엇에 쫓기고, 인생 타임라인이 있다. 특히 한국 친구들은.
좋은 성적,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좋은 졸업 성적, 좋은 레쥬메, 좋은 곳에 취직.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말처럼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나랑 친해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기에 나는 지금 혼란스럽다고 생각한다.
들여다보는 방법을 모르거나 들여다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하고 남들과 다를바없는 '평범한' 사람 그 자체인 것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넓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작게는 나는 뭘 할때 가장 행복한지, 멀리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이런 질문들에 답을 내려본 적이 있는가? 가식과 거짓과 허영을 벗고 정말 내 진실된 목소리를 낸 적이 있나 싶다. 누군가 그런말을 했다. 우리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다고.
정말 욕망덩어리, 나약한 존재, 성숙하지 못 하고, 미약하고 대단할 것 없을 수 있는 '나'를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철학자가 그랬다. 우리는 고요함. 고독을 극도록 무서워한다고.
동감한다.
늘상 어떠한 소음에 늘 자신을 노출시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쫓겨나 그 감성을 쫓아내거나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를 요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명상과 종교다.
의식적인 멈춤. 의식적인 회고. 의식적인 정화.
예전에는 종교를 비단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바람을 풀어내고 죄를 스스로 사하는 행위를 하는 곳이라고 아주아주아주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왜 이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여 나약하게 살아가는지 비꼬며...
두 가지의 공통점은 철저하고 의식적이며 물리적인 고립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다는 것이다.
- 핸드폰을 잠시두고
- 음악도 끄고
- 혼자
나르시스트적이 아닌 다른 의미에서 나에게 빠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것이 너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럼 왜? 내면 경청력을 키워야하냐.
왜냐. 70억 지구에서 70억의 n승의 노이즈가 껴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또렷한 목표들이 제때 잘 주어져서 앞만 보고 달렸다. 지금은 자유, 시간, 목표, 모든 것을 내가 정의하고 내 성공을, 내 행복을 내가 만들어나가야한다.
그렇지만 내면 경청성이 부족하다면?
-그 70억의 n승의 의견에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
- 매 순간 흔들린다. 혼란스럽다.
-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 그냥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지금 나처럼 이런 글을 나중에 쓰게 되겠지.
그럼 이 내면 경청력을 어떻게 키워야하나?
정말 간단하다!
1. 자기 전이나 아침에 정말 짧게라도 좋으니 잠시 멈추고 내 호흡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한테 하는 말이다)
2. 나와 친해질 수 있도록 사소한 질문부터 던지고 기록하고 받아들인다.
3. 깊이 있는 질문들은 책에서 얻는다. ('내 최고의 하루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책은 강력 추천한다.) 도끼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 들어 책방에서 3장 읽고 사왔다.
4. 심리 상담을 받아본다.
태국 가서 1일 1마사지 받듯, 우린 정신 건강을 위해 1년 7회 나라에서 무상으로 해주는 심리 상담 서비스라도 꼭 들어봐야한다. 모르겠다면 회사 HR에게 문의해보시길.
나도 이번 주에 간다!
제일 큰 문제는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이고... 이건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건지 아시면 댓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