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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추구자 Jan 03. 2024

자발적 고아가 되기로 했다 3

행복을 위한 날갯짓을 시작하다

자발적 고아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온전한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그리고 차분히 내 마음속에 다짐을 새겼다.




첫째, 나 스스로 나를 돌아보기


사랑받기를 바라고 나를 보살펴 주기를 바라던 부모가 내겐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였다. 그토록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건 그들도 나처럼 나란 존재를 헤아려주길 바라는 나만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없다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실이었다. 상심의 순간을 지나 그 사실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보였다.


처음엔 내가 마냥 불쌍하기만 했다. 누군가는 이름만 떠올려도 힘이 되는 엄마란 존재가 나에게는 짐스럽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지치고 힘들어도 내 속을 터 놓으면 되려 상처로 돌아오는 존재들 뿐이었다. 지친 마음에 외로움까지 거들 때면 늘 말버릇처럼 하던 기도가 있다.

"하나님, 고아 같은 저를 돌보아주세요." 

마음 깊은 곳의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없을 때마다 눈물과 함께 하던 기도다. 하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피해자라는 골짜기로 스스로 몰아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불쌍하게 산 것도 아닌데 피해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스스로 불쌍히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긴다는 건 정말 슬프고 힘 빠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살아온 길을 더듬어 보며 나를 살펴보았다.

나를 살펴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친밀감이나 존중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타인의 평가로 나를 받아들이고 그 평가에 좌지우지되었던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항상 그 끝엔 아쉬움과 후회로 마무리하는 내가 있었다.

여느 날과 같이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며 애써 스스로 위로하듯 적어 놓았던 한 줄 글귀가 나를 바꿔놓았다.

"그동안 참 수고 많았어.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아이들 기르느라 수고 많았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며 노력했던 나에게 내가 해 준 첫 칭찬이었다. 늘 후회와 아쉬움이 범벅된 다짐으로 가득했던 내가 나를 인정한 첫 순간이었다. 


단지 수고했다고 잘 살았노라고 해준 것뿐인데 나의 삶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아마도 홀로 이뤘다는 자부심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동안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후회들이 이따금씩 찾아와 나를 괴롭게 하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음에 대한 그리움과 내가 해온 선택의 아쉬움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다른 선택지에 대한 후회는 날려버리고 나의 선택에 대해 책임지고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멋진 사람이 되었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았던 것은 내가 나로서 바로 성장하지 못해서였다고 깨닫게 되었다. 내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내 결정에 책임지지 못하고 내 판단을 신뢰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당당히 받아들였다.

늘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부모에게 휘둘렸던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내 수준이 아닌 엄마의 눈높이를 맞추느라 큰돈을 써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반복하고 그러다 작지만 빚까지 지게 되었던 적도 있다. 아마도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잘못된 욕구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인정에 나는 볼모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나 또한 부모가 되고 아이들의 성장을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과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의 괴리가 나를 깨우쳤다. 사랑이 담긴 행동에는 반드시 사랑의 온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나의 둘째 아이는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도 반에서 잘하는 편이라고 만족한다며 웃고, 작더라도 잘한 일에는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나를 깨우쳤다. 부모라는 존재에 기대고 싶고 핑계로 삼는 모습이 나를 더 약하게만 만들었던 건 아닌가. 혹여나 나의 부족함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변화를 꿈꾸며 조금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에서 부모란 존재를 지우고 오롯이 홀로, 바로 서는 것이 필요했다.


부모와 상관없이 스스로 일어날 힘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진정한 자발적 고아가 되는 것이다.



둘째, 과거는 뒤로 한 채 현재를 살며 미래를 바라보기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먼지가 쌓인 카펫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쌓여있는 먼지 같은 상처가 새록새록 나를 감싼다. 
어린 시절의 나를 나 스스로 감싸주는 일은 꼭 한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감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 시절 아픔을 들여다보며 곱씹다가는 그 아픔이 나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뇌과학자가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그 일을 또 한 번 겪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과거의 어떤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실은 뒤로 돌아설 수 있는 선택지는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현실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것으로 힐링되는 것처럼 가끔은 과거에 박제된 상처를 떠나 충만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 나를 채울 필요가 있다. 나는 나를 아프게 하는 부모란 존재로부터 멀어져 그들을 등지고 지금 내 품에 있는 자녀들과 남편과의 행복으로 매일을 채우고 있다. 그저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 만으로, 즐거운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그리고 이제는 미래로 내 눈을 돌리려고 날마다 노력하고 있다. 내 자녀의 미래가 밝기를, 나와 내 남편의 미래가 밝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래를 그리고 준비하고 있다. 지금의 즐거움도 놓칠 수는 없지만 미래의 안락한 삶을 위해 더 노력하려고 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방법이 여럿 있겠지만 나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그 해에 이뤘으면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적어놓는다. 아들 키 170cm, 딸 키 162cm 되기, 라식 수술하기, 몸무게 유지하기, 우아한 표정으로 살아가기, 하루 30분 운동하기, 안정적인 수입 만들기, 취업하기 등등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바라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연말에 보면 신기하게도 많은 리스트가 이루어져 있었다.

많은 리스트들 중 한 가지만 자세히 소개하자면, 취업하기는 어느 날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유미의 회사 데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느낌과 커리어 우먼의 멋짐이 드리워져 있는 그 자리가 내 마음속에 박히게 되었다. "나만의 데스크가 갖고 싶어". 그래서 나는 오랜 경력단절을 마치고 입사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주부로 살아온 세월만큼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창피함은 잠깐이요 이뤄지면 대박이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보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용기의 끝엔 '안되면 착실하게 살림에 전념하자'는 마음을 두고 별로 소개할 이야기도 없는 나를 덤덤히 적어내려 갔다.  

그리고 다행히 원하는 마케터로 근처의 제법 큰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도전하지 않았으면 누려보지 못할 기쁨이었다. 입사 후 바로 테이블 매트, 키보드와 마우스, 디자인 문구류 등으로 나만의 데스크를 꾸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인 데다 예전과는 다른 두뇌 회전 속도에 나이를 체감하긴 했지만 나의 의지로 나만의 소망을 이뤘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업무 부담에 짓눌릴 때면 해고된다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되뇌며 없는 용기를 짜내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실수한 날에는 '잘리면 잘리는 거야'라고 용기를 짜내어 버티고 있다. 프로페셔널하게 살아보겠노라고 나름 루틴도 만들고 실패하면 변경도 하며 그럭저럭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쌓으며 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과거는 너무 작은 일들로 느껴지는 경이로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속부터 단단한 나만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여전히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의 저는 글을 써 놓고도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 제 글에 위로가 되셨다는 댓글에 힘입어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 글을 올립니다.

아직도 가족으로 인해 아파하고 계신 분들에게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해 주세요. 부모가 해주지 못한 만큼 더 열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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