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생일 편지
내가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다고 여러 번 말했다시피, 여전히 너를 처음 본 그날을 생생히 기억해. 초록색 셔츠를 입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질끈 묶는 너의 모습을 보며 '에너지가 참 밝고 긍정적이다'라고 생각했어. 단 번에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
그때의 나는 신입사원으로서 허둥지둥, 우왕좌왕, 좌불안석이었는데 너는 어쩜 그렇게 밝고 큰 소리로 인사하고, 늘 웃는지 참 신기했어.
너와 동갑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과장님이 너와 동갑이라고 친하게 지내라며 1층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주셨지. 그게 우리의 인연의 시작이었어.
우리가 처음 겪는 것들에 고민 많던 20대 시절을 지나, 30대에 들어서며 단단한 내면을 만들어가고, 이제는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요즘, 너와 내가 같은 방향성을 보며 성장하고 있다는 게 감사해.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 요즘 나는 오래 함께했던 인연들이 흐트러지고,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고, 떠나보내야 하는 관계들도 생기는 흐름 속에서 혹시 너마저도 잃을까 두려울 때가 있어.
너는 내가 40세, 50세, 그리고 100세, 내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야. 나는 너의 슬픔을 덜어주고, 기쁨은 온전히 축하해 주는 친구이고 싶어.
얼마 전 너는 사실 무기력하고 무료한 요즘을 보냈다며, 우울한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다고 했어. 삶이 단조롭게 흘러가서 저 앞의 미래까지 예측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지.
예전에는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물음표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곤 했었는데, 요즘의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중력 속에서도 그저 바라보려고 노력해. 그것은 내게 관측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어.
누군가는 너를 보며 "서울에 있는 아파트 샀으면 된 거 아니냐", ". 배 부른 소리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면 다른 이야기가 되지. 사람은 각자의 전쟁을 진심으로 치루고 지난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도 살아내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한 인간으로서 묵묵히, 하지만 따스하게 너의 태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돼.
너는 20대 중반부터 집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도 얼마나 애써왔을지 나는 알아.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지. 그래서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너는 내가 아끼는 사람이고 어찌 보면 나의 일부를 거울 보듯 보는 사람이니까.
진심으로 너를 축하할 수 있어서 기뻤어. 네가 어떤 측면에서는 다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그 선명한 의도까지도 알 수 있어서 감사했어. 우리는 때때로 말하지 않아도 뉴런을 공유하는 사이니까 알 수 있지. 또 내 곁에 가까운 친구가 목표와 꿈을 이뤘기에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꿀 수 있어서 고마웠어.
요즘 너는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줄 까봐 의도적으로 퇴근하자마자 운동화를 신고 러닝을 한다고 했지. 어려웠던 시절 무작정 달렸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그 시도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생일 편지에 써 준 짧은 글에서 네가 말하고 싶은 함축적 의미를 고스란히 읽었어. 그 배려와 섬세함이 감사하고 이 지구에서 너를 친구로 만난 게 무척 기쁘다.
아래는 네가 나에게 써준 편지야.
TO. 소중한 토끼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을 읽다가 전쟁통에서도 두려움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던 군인의 이야기를 읽고 다시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했어.
비록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침착함과 감사함을 잃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너는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25년 생일 늦었지만 넘넘 축하하고 2100년 생일도 서로 "잘 살았다"며 축하해 주자.
FROM. 수달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고, 너는 언제나 든든히 너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잘 해낼 거야. 우리가 이야기했듯 그런 나도, 이런 나도 있는 거지. 평온하고 안온한 날들도 있고 촉각을 세우고 분초를 다투는 날도 있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선물 같은 이벤트도 있으니까.
그냥 그런 거라는 삶을 먼저 살아낸 어른들의 말씀처럼 우리도 먼 미래도 꿈꾸면서 지금 이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면 좋겠다.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기쁜 날들도, 고민 많은 날도 온전히 살아가고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