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피 Aug 03. 2020

월급 루팡 대처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월급 루팡과의 눈물 겨운 정신 사투


그를 마냥 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는 회사에서 아주 유명한 월급 루팡인데 어쩌다가 이곳으로 오게 된 건지 그 배경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월급 루팡이라는 것이 1-2시간 다른 일을 하거나, 용무를 보고, 인터넷 쇼핑을 하고, 병원, 은행 등을 다녀오는 그런 소일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 수준을 훨씬 넘어선 상상 이상의 영역이다.



아... 당신은 대체...



정말로 그를 보고 있노라면 내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마치 화산을 예고하듯 분노의 용암이 꿈틀댄다. 한 번은 팀장님이 기안을 쓰라고 쓰라고 말해도 한 4주를 내리 안 쓰는 그를 본 적이 있다.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하면 그것이 아주 간단히 캡처한 사진을 활용하고, 현상을 나열한 비교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한 80%는 오타를 내고 제출하는 것이다. 당연히 옴팡지게 혼이 났는데 희한하게 대미지가 zero이다. 그래서 결국 이 월급 루팡을 맡은 팀장님들은 두 손 두 발을 든다. 상대할수록 본인만 더 열 받기 때문에.



이 월급 루팡은 직무를 담당하면서도 일 년이 훌쩍 지났는데 본인의 직무 내용을 아직도 모른다. 월 프로모션 기안을 놓치는 것은 일상이요, 디자이너에게 하루 전 시안을 요청한다. 그마저도 문안도 제대로 안 준다. 하도 제대로 안 줘서 디자이너가 수정하기 일쑤. 배너의 사이즈가 이미 정해져 있으면, 글자 수가 예상이 가고 몇 자 이내로 적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도, 디자이너에게 시안을 요청하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일정을 논의하고 기안 득 후, 요청해야 한다는 것도 디자이너에게 10번을 들어도 그는 무시하는 것이다.



아아. 그는 도대체 어쩌다가 여기로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토록 피해를 주는 것인가. 나에게 허용된 월급 루팡이라 함은 적어도 자신의 직무 내용은 인지하고, 얄밉게 다른 사람에게 일을 슬쩍 미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업무를 최소 50%는 하는 것을 말한다. 아니면 본인의 업무를 확실히 하면서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거라면 주변 사람들이 사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 누구나 열정적으로 사장님 마인드로 일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 역대급 월급 루팡님께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를 테면, 본인이 맡은 거래처 매출이 1/3 씩 급감하고 있는데도 본인이 매출을 보는 방법 조차 모른다. 정산도 할 줄 모르고, 판매할 제품에 대해 직접 선택하지도 않거니와 물어보면 위엣분이 정하셨어요~라고 한다. 실상은 본인의 고려는 없고 그냥 전달만 받아서 한다. 윗사람들도 하도 루팡이가 실수하니까 루팡이 일을 가져가서 한다. 실수한 거 찾고 고치는 게 더 골머리를 앓기 때문이다. 애초에 루팡이가 회사에 경력직으로 이직하였을 때 첫날에도 자리에서 코를 골며 잔 적도 있었고, 화장실에서 코를 골며 자는 탓에 사람들이 깨우는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담요를 들고 휴게실로 가서 곤히 낮잠을 청하거나, 친구와 1시간씩 통화를 하고 오기도 하는데, 희한하게도 이 지독한 월급 루팡에게 제제를 가할 상대가 내부에 없다.



종종 세상에 존재하는 회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무 내용을 모르는 팀장을 간혹 팀장으로 앉힌다는 것인데, 실무를 해보지 않았거나, 업무의 범위, 실수했을 때의 영향력 등을 유추하기 어려운 팀장은 이 월급루팡이 얼마나 일을 개떡같이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무에 관련되어 이 사람이 주는 일을 받아야 하거나, 이 사람이 준 일로 인해 실수를 찾아내고 월급 루팡에게 다시 수정 요청해야 하는 사람들만 복장 터진다. 어떤 팀장은 모르거나, 모른 척하고 있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한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루팡이 대신 일을 하고 팀 업무는 돌아가니까 애써 나오는 잡음을 줄이고 싶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결국 이 지독한 월급 루팡과 한 달이라도 일 한 사람들은 다 손을 들고 '얘랑은 이제 일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두 손 두 발 든다. 그럼 월급 루팡은 또 대미지 제로로 호기롭게 커피를 3-4잔씩 마시며 그냥 모니터 앞에 가만히 앉아있다. 종종 인터넷 명품 쇼핑몰 창을 기웃 기려면서. 혹은 카톡만 켜놓고 있거나. 바탕 화면만 켜놓고 있거나. 그것도 주변에서 주의를 줬는데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정말 루팡이의 뇌는 하루 지나면 리셋되는 걸까.



아이러니하게 회사에 이런 소문(이라 쓰고 팩트)이 아주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데 내부에서는 절대로 손을 쓰지 않는다. 개인과 개인의 업무 마찰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잡음을 줄이려 한다. 이것은 조직 문화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데 이 월급 루팡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어처구니없게 회사의 평균 연봉보다 훨씬 높이 책정된, 그러나 자기보다 한참 직급 아래인 사람들보다, 혹은 아르바이트생으로도 너를 쓸 수 없다는 평가를 듣는 이 사람은 아직도 회사를 너무나 잘 나오고 있다.



어떻게 월급 루팡과 함께 일하며 내가 정신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다양한 업무와 고충을 겪었지만 이건 정말 상위 레벨만이 이겨낼 수 있는 난관이 아닌가 싶다. 생산성과 효율성, 일을 하러 온 직장에서 일 년이 지나도 본인의 업무 내용을 모르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제가 몰라서요. 제가 안 해봐서요. 제가 잘 못해서요. 이런 명대사들만 읊고 있는 월급 루팡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루팡이가 앉아만 있을 때 그 사람의 일은 결국 누군가가 더 하는 것인데.



그냥 내가 이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해서 나를 발전시켜야지. 내가 이 사람보다 열심히 일해서 연봉을 올리거나 돈을 더 벌어야지. 연봉이 높고 내가 실력이 있으면 이렇게까지 얄밉진 않겠지. 지금 이렇게 참는 것이 나에게 인내력을 길러주겠지.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 일 다 못하고 안 하고 펑크 내는 거 아니까 괜히 내가 굳이 싫어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이 사람도 무엇인가는 열심히 하는게 있겠지.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거야. 누군가 보면 내가 월급 루팡일 수도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나의 일은 굉장히 쉬워 보일 수도 있는 거야. 나는 내 일만 집중하고 오로지 내 일만 하면 이 사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득도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삼 년이 지나면 이 사람과의 일은 기억도 안 날만큼 희미해지겠지. 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보다 나한테 집중하는 게 더 나한테 옳은 거야. 이렇게 내 정신 승리를 하려고 생각해야겠다 싶다가도 나와 연관되는 업무가 있다 싶으면 내 안의 용암이 다시 끓기 시작하는 것이다. 실은 내가 월급 루팡에게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럼 내 일이 덜어지고, 나도 이 사람과 같이 일을 안 하고, 덜 하게 되면 내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렇게 역대급 월급 루팡처럼 그냥저냥 회사를 다녀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거면 나도 그래도 되는 걸까?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더라도 난 그래도 그렇게 살기 싫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나는 정녕 법륜 스님과 같은 이치에 깨닫기엔 한참 먼 한낱 먼지에 불과한 인간이던가.

그럼 내 용암은 언제 조용해질까.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어느 날은 불쑥 분노가 찾아오기도 하는 이 애매하고 성가신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같이 일 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이 극딜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오늘도 회사에서 나라는 캐릭터는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내일은  잘해볼게요.






월급 루팡 대처법을 결론 내고 찾으면, 어느 정도 문제 해결 방법을 발견해내면 2탄을 적겠습니다. 현재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저를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방면에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모자라네요.



저도 누군가의 월급 루팡일 수 있겠죠? 제가 비록 저에게 정직하더라도 말입니다.

직장생활은 참 어렵습니다. 내일의 밤은 한결 가볍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를 하고 나서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