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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Aug 29. 2020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고 1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때와 달라져있을까. 지금 걷는 점들은 선으로 연결되고 있을까.



좌절하는 것도, 멈춘 것도 아니야 잠시 숨을 고르는 거야.



어느 날 대학생이던 내게 아빠가 소주 한 잔을 하며 가볍게 말했다. "네가 너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어른이 된 거다." 나는 그때 아빠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럴 일이 오겠구나. 나는 아직 인생을 다 알기에는 어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직장에 와서 뼈저리게 느꼈다.



생각해보면 직장 이전의 나의 삶은 평탄했다. 부모님의 따뜻한 울타리가 성장 환경 내내 있었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었고, 평범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도 있었다. 서울에 집이 있었고, 대학도 서울로 다녔기 때문에 자취와 독립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도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나는 직장에 와서야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해야 하고, 수직적인 구조에 나를 적응시키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었다.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겪은 것이다. 대게 좋은 점수만 받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눈에 띄고, 상을 받고 하는 것들은 다 나에게 있는 일이었다. 당연한 것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노력한다면 당연히 얻을 수밖에 없는 정당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인이 되어 그 생각이 깨지는 일을 겪었고, 이런 대접을 이 회사에서 받는다니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어찌 됐든 나는 그때 불과 2년 경력이 있는 사원에 불과했고, 어느 직장에 가도 힘든 게 다 있다는 선배들의 말씀을 듣고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선배들은 "지금 네가 이 일을 겪은 것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직장에 있으면 어느 누구나 조금씩 겪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대신 나는 윗분들께 나를 다른 팀으로 옮겨달라고 말씀드렸다. 입사 후 몇 개월 지나 내가 속한 산업의 한계를 알고 난 후 조직생활 내내 고민한 일이었다. 산업의 흥망성쇠와 내가 연결되어있다면 나는 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끝없이 성장하고,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산업에서 주목받고 성과를 내고 싶었다. 다음의 결과를 바꿔야 한다면 성과를 내면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나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숱한 거절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설득 끝에 팀을 옮기고, 원하는 일을 지금은 할 수 있게 됐다. 글의 중반부에야 이야기하지만 내가 겪은 억울한 일은 승진에서 누락된 것이었는데, 승진 누락과 팀 이동을 트레이드했다고 생각하자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봐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 년이 지난 작년과 같은 오늘 누락되었던 승진 공고에서 내 이름 석자를 발견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끝에 이루어낸 결과였는데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즐겁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너무 덤덤해서 자아가 멀리 떨어진 것 같이 보이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고충과 고민, 외로움, 쓸쓸함과의 사투를 지켜본 회사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을 한 마디씩을 전해줬다. 특히 나와 일했던 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살짝 당황했던 건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가 이번에 특진을 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와 그 아이는 2년이 차이가 나게 된다. 내가 누락되는 것도, 그 아이가 특진을 하는 것도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엔 모두 없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승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애매하고 이상하고 미묘했다.



입사 동기가 특진하지 않았다면 내 승진이 기뻤을까?라고 생각했다.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 친구는 열심히 했고 잘했으니까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회사에서 승진과 직급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성장하는 나를 위해 일하고 싶었고, 내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싶었고, 나만 할 수 있고 잘하는 그런 일을 만들고 싶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회사에 있을 때도, 회사를 나와서도 나만의 무기를 가지고 싶었다. 회사에 대한 기대와 목표가 없었던 나와, 회사에 대한 목표가 뚜렷했던 동기는 출발부터 달랐던 걸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입사 동기가 특진하지 않고 나만 승진했고, 혹은 작년에 내가 동기와 함께 승진을 했다. 그러면 나는 어땠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봤다. 좋음과 싫음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미묘하고 애매한 지점에 있을 것 같았다. 작년에 승진을 했더라도 나는 이걸 내가 가져도 될까?라고 고민했을 것 같다. 아마 나는 그때 내 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없었고, 그걸 증명받을, 혹은 남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직급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기 검열을 심하게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이 살아진다는 사람들도 있고, 생각만큼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때로는 고민이 든다.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점들이 어느 순간 뒤돌아봤을 때 선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흡족할 것 같다.



직장에서 나를 위해 일하는 내가, 업무가 바뀌고 일 하는 사람들이 바뀌고, 회사에서 집중 육성하는 팀, 회사의 중심에 있는 팀에 서 있는 내가 나를 위해 점을 찍고 선을 연결 지어 나에게 선물을 주는 그런 날이 오게 될까? 그날이 오길 간절히 원해본다.



억울한 일을 겪었음에도 내가 회사에서 남아있었던 이유를 짧게 이야기하자면, 회사에서 배울 것이 단순히 나가는 것보다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장 나가야지!라고 했었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면담을 하면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됐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없고 내 생각만 고쳐먹을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어렵지만, 제일 쉬운 일이라고도 여겼다. 그때 비로소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스테이지를 넘기고 가겠다.라고 결정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일단 어렵고 고단했지만 그 스테이지는 넘겼다. 1년이면 충분히 넉넉하게 성장했다고 본다. 그 과정을 응집해서 밀도 있게 바라봤을 때 어느 때보다 내 마음과 마인드가 성장했던 때라고 생각한다. 그때 프레임을 바꾸는 법을 알았다. 내 마음에 생채기도 많이 났지만, 스스로 케어하는 법도 어느 정도 체득한 것 같다.



일 년이 지난 오늘, 곁에서 지켜봐 주고 묵묵히 응원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찍는 점들이 시간이 지나 채워졌을 때 선으로 연결되어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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