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코 어른은 아닙니다만..
남들도 그렇겠지만 난 내가 서른이 될 줄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삼 개월 남았다. 하지만 고작 삼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가끔 아찔해진다. 이렇게 약 삼십 년 살았는데 앞으로도 삼십 년이 훌쩍 흘러갈 걸 생각하면 말이다.
난 내가 어린이, 청소년이었을 때 어른들은 뭔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가 생각하는 큰 산들을 넘었기에 때로는 그들이 대단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라는 숫자에 막상 다다르게 되어보니 실상 내가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왜 그러냐 하면 내 키는 16살에 멈춰져 있어서, 그냥 내가 16살의 신체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 이상 다리가 길어지지도 않았고 어깨가 넓어지지도 않았는데 난 그냥 그때 신체 그대로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무언가 더 알아가는 것들과 책임질 것들이 많아질 뿐이지 과연 심도 있게 겹겹이 쌓았는가? 자문하면, 물음표가 남는다. 웃긴 이야기지만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철이 든 줄 알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남들보다 생각이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시절 내가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의 깊이나 범주가 과연 어른이 된 나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질문하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그저 그냥 인생에 있어서 어느 구간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관문들을 겪고 있었기에 그것이 대화와 정신, 마인드셋에 기여한 거다 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나는 어른이란 연애, 취업, 결혼, 출산 등을 해와서 그래서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냥 각 사람마다 그 구간에 있으니까 그냥 그 카테고리의 이야기를 하는 거고, 때로는 그것에 심취해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어른이라는 것은 나이로 정해지거나 특정 구간에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특정 주제에 애정이 있고 깊이가 생겼으면 어른이 된다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어떻게 보면 어른과 청소년, 어린이를 굳이 나눠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난 유 퀴즈 온 더 블록 방송 보는 걸 좋아하는데 거기에서 어린이들과 나누는 인터뷰를 보면 때로는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어른 같을 때가 있다.
저번에 유재석이 한 어린이에게 "어른과 꼰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니 그 어린이가 "어른이면 다 꼰대 아닌가요?"라고 대답했다ㅎ.
어린이의 팩폭 때리는 대답에 한참 웃고 나니 쓸쓸함과 서운함이 한 톨 남았다.
아무튼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사회에 책임질 것이 있고 다음 세대에 좀 더 나은 환경과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개인의 인생으로 봤을 때 어른이라 하면 어른인 사람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서 난 내가 서른을 맞이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하는데,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는 그저 내가 관심 있는 카테고리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할 뿐이다. 그냥 내가 지금 '직장', '커리어'에 관심이 있으니까! 난 '결혼', '출산' 이런 거는 한없이 모른다.
그래서 버스에 올라타는 여고생들을 볼 때면 '나랑 쟤네랑 별 차이가 없어.' 하다가도
'아.. 피부가 다르지, 체력이 다르지.' 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나는 마음만은 청춘이야, 소녀야,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제 그 말을 알겠다. 그때는 '거울만 봐도 주름살이 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까?' 했는데 내가 요즘 그렇다.
가끔 거울을 볼 때면 도대체 이 얼굴이 중학생 때 얼굴과 뭐가 그렇게 다르단 말인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젖살, 볼살이 빠졌고, 눈가와 입가에는 주름이 생겼다. 나만 모르는 시간이 내 얼굴과 마음과 정신에 흘렀다.
난 지금 29살이다. 3개월 후면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나이 30살이 된다. 사실 엄마가 결혼했던 나이인 28살을 어른의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 내가 28살이 되어보니 난 별 게 없었다. 나는 그냥 24살의 정신 연령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른 되기를 좀 미뤘는데... 이제 곧 서른 살이 된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어른이 되는 걸 더 미뤄야 할 것 같다. 가능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