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곧 인간관계를 잘한다는 것
말 잘하는 것에는 관심이 많아서 그런 류의 책들이나 영상은 많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을 잘한다는 것과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같았다. 진심을 나눈 사람들과는 더 오래 보고 싶었고, 새롭게 알게되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관련 영상과 책을 봤고 거기에서 깨달은 점이 몇 개 있었다. 내 삶에서 큰 울림을 준 부분이어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본다. :)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유튜브에서 심리학 채널을 종종 보는 편이다. 그중에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채널 영상을 보고 ‘핵심 신념’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채널에 나온 작가분이 지은 도서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에서 좀 더 깊이 있게 ‘핵심신념’을 배웠다. 정말 좋은 책이다.
핵심 신념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중요한 신념을 말하는데 그게 대화에서, 인간관계에서 방어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특정 사람과의 대화를 불편하게 느낀 거였나 하고 생각해봤다. 인간관계든 대화에서든 감정은 오고 가기 마련인데 그것은 관찰자의 입장으로 본인을 인지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아.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이것부터 시작할 수 있으면 그것이 자아 성찰이든 성장이든 개선이든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핵심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느끼는 핵심 감정이 무엇이냐는 것과 직결된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나에게 “너 진짜 말랐다~”라고 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불편함이다. 나는 마른 것을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핵심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하면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나는 소량을 자주 먹는 편이어서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 나의 양을 보고 “먹고 있는 거냐, 먹는 양이 안 준다, 그래서 살이 안 찌는 거다” 라는 말들을 한다. 근데 말랐다는 말은 그들에게는 마른 것이 좋다 라는 핵심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칭찬의 의미일 수도 있다.
왜 내가 마른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는 걸 되돌아보면, 가족들은 본인들도 마른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말랐다, 살 좀 쪄야 한다, 그런 말들을 많이 했었다. 늘 많이 먹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받고 적게 먹는다고 핀잔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식사를 할 때 내가 먹는 양보다 더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무리하게 먹으면 어느 때에는 체를 하거나 배가 아프기도 하다. 나는 적게 자주 먹는 체질이다.
이런 핵심 신념이 있을 때 나에게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다. 말랐다는 것을 긍정적인 단어로 그 감정을 바꾸던지, 아니면 말랐다는 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감정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대화를 할 때 그런 말이 나오면 긍정적인 의미이냐 부정적인 의미이냐를 질문으로 짚어보던지, 아니면 그런 말을 하는 상대에게 나는 말랐다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워딩은 좀 줄여달라 하고 나의 감정을 설명하고 요청을 하는 식이다. 나는 내가 편안해지도록 선택할 수 있다.
피상적인 대화를 하느냐, 감정적인 대화를 하느냐, 나와 그 사람이 관계 넓이,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되느냐에 따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핵심 신념’이라는 걸 알았으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느냐를 인지하면 좋은 성장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따라 내가 하는 말이나 문장이 달라질 것이다. 좋은 개념을 얻었다.
퇴사를 하면서 내가 가진 타이틀이나 명함을 내려 놓게 되었다. 없다가 있는 것보다 있다가 없는 것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그래서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나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없어지면서 나는 나를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브랜딩이나 상황을 좀 더 나의 쪽으로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인간관계’를 다시 배우고자 했다.
그래서 책장에서 정말 오랜만에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꺼내 읽었다. 그건 내가 지금의 인간관계를 좀 더 편안하게, 슬기롭게, 현명하게 다루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책을 샀을 때는 아마 2011년, 2012년 경이었던 것 같다. 베스트셀러였으니까 늘 잘 팔렸을테고 몇 쇄인지 확인해보니 2011년 정도로 찍혀있었다. 밑줄이 몇 개 그어져 있긴 했는데, 내가 읽었던 것 맞는 것 같은데 도통 내가 어느 부분에서 이 책에 감명 깊었을까 싶었다. 그 정도로 별로 감흥이 안 온 책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어렸고, 내가 모르는 만큼 세상에 대해 아주 몰랐다. 사람은 경험의 깊이만큼 사물, 상황,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때 아주 어렸던 것 같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도 아마 완독하고 나서 “에이 별거 없네” 했다. 그냥 누구나 아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칭찬하세요.’ ‘미소를 띠고 인사를 잘하세요’, ‘사람의 이름을 외우세요’라는 것들 아닌가 싶었다.
작년에 이사 오기 전 필요 없는 책이나 안 읽은 책, 읽었는데 별로인 책, 이제는 팔아도 되는 책을 선별하여 판매하거나 기부했는데, 이 책은 안 버리길 정말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어보니 어쩜 이렇게 보물 같은 진귀한 책이었는지, 그리고 10년 전의 나는 어쩜 그렇게 순수하게 모를 수 있었는지 싶었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른 것 필요 없이 무조건 ‘자기 중요감’ 이다. 인간은 살면서 자기 중요감이 중요한 존재이다. 이걸 늘 어필하려고 하고, 이걸로 살아간다. 이게 핵심이었다. 만일 내가 10년 전에 이걸 알았다면, 아니 단 5년 전만이라도, 단 3년 전이더라도 이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와 무조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마다 자기 중요감을 느끼는 파트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장’이 중요하기도 하다. 내가 이거 했어, 저거 했어, 이걸 이뤘어. 이런 것들은 보통 나에게 해당된다. 내가 이걸 인지했으니 사람들과 말할 때 이런 부분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좀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내가 인간관계에서 너무 내 말만 하여 잃는 부분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건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싶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기 중요감이 확인된다면 사람은 간이고 쓸개고 빼줄 수 있다고 책에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나 새롭게 알게 되는 관계에서 조금씩 적용해 보는 중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보물은 다르니까 그걸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사는 동안에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진귀한 부분을 알아채 주고 싶다. 어쨌든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는 거고, 사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들어간 학원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진심으로 칭찬을 했다. 운동선수를 하다가 일반 사무직을 하다 그만두고 이번에 새롭게 학원에 등록한 사람이었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면서 자기 한계에 도전하고, 그래서 운동을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감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칭찬했다. 운동을 매일 한 사람은 자기 한계에 도전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더라. 그리고 운동을 한 힘으로 다른 일도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더라. 정말 멋지다라고 이야기했다.
뭐 얻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진심으로 그런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운동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기 전까지 자기에게 묻는 질문이나 의심을 이겨내고 했을 것이므로 한 편으로는 인간의 한 성장 파트에서도 중요하다 생각해서 칭찬했는데, 그분을 여태 본 미소 중 그렇게 활짝 웃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진심으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정말 밝게 웃고 있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라고 느꼈을 정도…
이런 걸 데일 카네기는 몇십 년 전에 알았단 말이지…
어떤 사람은 대화를 할 때 물어보지도 않은 자식 근황을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려하면서 상대방의 말하는 문장을 책을 읽듯 천천히 짚어가며 들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그 대화만 흘러가는 대로 했던 것 같다. (물론 과거에도 진심으로 리액션하려고 하긴 했음.) 근데 예전에 대화를 할 때 내가 느끼던 생각들과 지금 대화하면서 상대의 핵심 감정, 중요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유추하려고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그 책을 읽고 나서는 나는 대화를 하면서도 천천히 테이프를 되돌리기 하듯 이해하고 맥을 짚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식을 칭찬하길 원하는 거였다. 그걸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거였고 그게 그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했고, 대단했고, 그걸로 자기 중요감을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열심히 듣고 또 반응하는 말들을 했다. 그랬더니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술술 이야기했다. 책에서 말한 게 이런 거였구나라고 느꼈다. 내가 이걸 좀 더 잘 알아간다면 정말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다를 것 같다. 난 내가 편안한 게 좋으니까 앞으로도 잘 만들어가 봐야겠다.
잘난 척이 때로는 뻔뻔하여 귀엽게 보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이건 자기 중요감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어떤 사람과의 대화가 불편할 때가 있다. 대화가 불편하다는 건 부정적인 단어를 쓰거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 그렇기도 하고, 명령이나 지시하는 투로 말할 때 그렇기도 하고, 말투가 딱딱하거나 시니컬할 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파트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자기중요감과 연결되는 잘난 척이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입증하고 싶어 하는 아주 작은, 그러나 어떨 때는 아주 위대한 존재이므로, 이걸 알아봐주는 사람, 자기가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고 데일 카네기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피상적인 대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통할 수도 있지만 진심을 나눈 관계에서 잘난 척이 메인이 되어버리면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자기 자랑으로 시작하여 끝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과 있으면 불편했고,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싶었던 적이 있다. 같은 자랑을 해도 어떤 이는 안 불편한데, 왜 어떤이는 불편한 건지라고 물음을 던져봤다. 그건 화법의 차이였다. 예를 들어 별거 아닌 작은 일로 칭찬을 받을 때는 약간 뻔뻔하게 자랑을 해도 되고, 핵심적인 승진, 합격, 돈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운이 좋았다, 마침 시험에서 공부한 게 나왔다, 집이 제게 아니라 은행 거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좋다고 한다.
꼴 보기 싫은 점수가 누적되면 사람들은 다양한 걸로 주의를 주고 싶어 해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려고 한다. 예를 들어 웃긴 얘기를 해도 잘 안 웃어주고, 화제를 돌리고, 도움을 요청해도 어설프게 도와주고, 몸을 돌리던지, 내 지위가 낮아지는 농담을 했는데 더 크게 웃거나 한 숟갈 보태는 식이다. (예.. 만일 주변에서 나에게 이렇게 한다 싶으면 내가 자기 자랑을 했고, 질투를 받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주의하던지, 그만 하던지, 더 하던지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생각했을 때 중요한 자기 중요감이 무엇인지 고려하고 나도 그걸 확인받고 싶은 사람이니까 다른 이와의 대화에서 이런 부분을 좀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누군가에게는 잘난 척이 되고 불편할 수 있고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자랑을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생산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좀 더 고려해봐야 하는 것 같다. 일기장에 적던지 허물도 다 말할 수 있는 진짜 친한 친구한테만 하던지, 가족들에게만 하던지 그런 방법들을 선택하면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인간은 자기 중요감이 중요한게 본질이니까 누군가 잘난척을 해서 내가 쿨하게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여 나를 너무 자책하거나 깎아내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다들 자기가 중요한 것처럼 나도 내가 제일 중요한 거니까 말이다. 그냥 감정은 흘러가는대로 보내주면 된다.
그리고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람인 것 같다. 누가 우울하고 슬픈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어 할까. 그걸로 자기 중요감이 충족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작고 귀염 뽀작한 존재가 사람이다. 사람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고 포근히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더 기품 있고 우아한 사람 같기도 하다. 내가 그런 바다 같은 마음과 따뜻한 진심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아마 살아가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인간관계에서 감정이 오고 가는 대화. 그리고 그 대화의 질을 결정짓는 3가지는 ‘핵심 신념’, ‘자기중요감’, ‘잘난 척 주의’이다. 다행히 나에게 눈이 있고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서 정말 좋은 책과 영상들을 통해 좀 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성장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은한 향기를 풍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사는 동안에는 진심을 다해 따뜻함을 두고 가고 싶어서!
나와 타인의 핵심신념과 자기중요감을 이해해서 앞으로 나와 관계를 맺을 사람들, 관계를 더 깊이 있게 진행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지금이라도 이런 책들을 통해 알게 되어 기쁘다. 올 한 해 잘 적용하면서 나를 다독이고 때로는 위로해주며 나와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