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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Apr 28. 2021

진짜 가는 거야?

오지 말라는 사람도, 가지 말라는 사람도 없었다.

2020년 5월, 합격 통지를 받았다. 

Chevening Scholarship과 LSE로부터 영국에 와서 공부해도 된다고. 

회사에서도 1년간 해외 교육파견 승인이 났다. 


그러나, 2월에 처음 시작된 코로나 19는, 가을에는 괜찮겠지라는 희망으로 영국행을 결정한 나에게 보란 듯이, 어디 인생이 그렇게 네 맘대로 될 것 같으냐는 듯이, 너의 계획쯤은 이 험한 세상에 얼마든지 날려 보낼 수 있다는 듯이 Pandemic이 되어 나를 덮쳤다. 


7월에 비자 신청 사무소에 방문하여, 열체크와 손 소독을 하면서 생각했다. 아, 이 시국에도 나 말고 영국 비자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구나. 다행일까? 가도 되는 거겠지? 나 스스로 계속 물으며,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다 사람사는 곳이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나의 영국 유학 길을 들은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진짜 가는 거야?", "갈 수 있는 거야?", "미루면 안 돼?", "안 가면 안돼?"

그런데 가장 중요한 두 곳에서 확고하고 일관된 내용으로 그 물음에 대신 답해 주었다.

"비자 발급받으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영국에 입국해야 합니다."

"최대한 연말까지는 출국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장학금을 주는 곳에서는 위험하니 오지 말라하지 않았고, 

파견을 보내주는 곳에서는 위험하니 가지 말라하지 않았다. 

물론 원망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기에 터져 나오는 나의 푸념이고, 공연한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코로나 19로 거리두기가 계속돼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 했던 사람들 중에는 결국 카톡으로 인사만 나누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만났던 못 만났던 모두들 한결 같이 나에게 조심하라는 인사를 전해주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목숨을 걸고 가는 건가 싶은 느낌이 들만큼 괜한 비장함을 느꼈다. 내가 가려던 유학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영국에 가서 전 세계에서 오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영국의 문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코로나 19와 싸우러, 코로나 19를 버티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9월에 학기가 시작했고, 비자 발급이 지연되어 약 2주간 온라인으로 한국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때 영국 내 대학들은 거의 모두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Zoom 수업에 들어가면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다양한 시간대에 접속하여 수업을 들었다. 뭐 이런 방식으로 세계는 하나임을 느끼는 걸까 싶기도 했다. 어쨌건 당시에 중국, 미국 등에서 와야 하는 학생들은 영국 입국이 어려워 첫 학기는 자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나는 코로나 19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라 비자만 나오면 영국에 입국이 가능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국인 입국자는 자가격리도 없었다. 결국, 비자가 나왔고, 나는 2020년 10월 7일, 인천 공항 출국장에 있었다.

한산한 인천공항 출국장과 공항 면세점 모습, 활주로가 따로 없었다.

지금껏 본 중 가장 한적하고 황량한 인천 국제공항이었다. 6개월 이상 해외에 머무를 경우에 반출 가능한 마스크는 150개였다. 꽉꽉 채워서 150개를 짊어지고 입국장 검열을 통과했는데, 형언할 수 없는 비장함을 느꼈다. 28L, 24L 캐리어를 잃어버릴지언정 이 마스크는 사수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나는 목숨처럼 소중한 KF94 마스크 150개를 들고, 한국과 비교하면 '보건'에 대한 인식도, 문화도 차원이 다른 나라 영국으로 향했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했던 비행 후에, 내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예상보다 더 암울한 겨울이 기다릴 줄은 모른 채, 그래도 조금의 희망을 품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그렇게 모두가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코로나 시대에, 나의 인생 첫 유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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