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토끼 Apr 25. 2021

좀비 말고 줌비

Zoombie로 살아가기

2020년 3월 영국의 1차 전국 봉쇄령을 시작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이제 사무실에 나가지 않은 지 만 1년이 지났다. 코로나 통제가 그나마 잘 되고 있는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쓰고 볼 일을 보러 다녔지만, 상황이 심각한 영국에서는 말 그대로 집콕이었다. 노트북+모니터 앞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상 회의를 하면서 매트릭스에 사는 것 같았다. 몸뚱이는 좁은 방에 갇혀 있지만 줌(Zoom) 세상에서는 더없이 활동적이며 시간대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팀원들을 만난다.


잠옷과 한 몸

아침에 일어나 책상까지 두 걸음 통근하며 많은 것이 바꼈다. 우선 잠옷 바지는 벗을 일이 없어졌다. 회의를 할 때는 윗도리만 갖춰입을 뿐이다. 화장도 하지 않는다. 비비크림 바르지 않은 지 오래고 아이라이너나 마스카라는 만져볼 일도 없다. 화상 회의를 하다보면 집에서도 외출복을 차려입고 단정하게 메이크업까지 한 사람들을 보며 자기 관리에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라도 해야 활력이 생기고 일과 생활의 경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샤워하고 모드를 바꾼다고.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천은 별개다.


나처럼 겨우 눈곱만 떼고 상반신만 준비하는 사람이 더 많은지 줌에 스튜디오 효과라는 기능이 생겼다. 눈썹과 입술에 메이크업을 한 듯한 특수 효과를 주는 기능으로 눈썹은 어색하지만 입술은 꽤나 자연스럽다. 물론 조명에 따라 입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경우도 있어 당황하며 얼른 설정을 꺼버린 적도 있다. 


1. 줌의 스튜디오 효과 중 립스틱 적용한 모습  2. 같은 효과가 빛에 따라 입술 둥둥이 될 수 있다  3. 눈썹 효과. 눈썹은 어색하다


일=삶

워라벨이라고 하는 일과 삶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코로나 이전에도 근무 시간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본사가 위치한 시간대에 맞춰 회의가 잡히고, 여러 나라에서 근무하는 팀원들과 일하다보면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회의는 필수다. 게다가 로컬리제이션 팀에서 일한다는 건 급한 업무의 연속이다. 론치를 앞두고 변수는 생기게 마련이고 개발이나 디자인 과정에서 잡아먹은 시간을 메워야 하는 건 마지막 단계인 로컬리제이션이니까. 


재택근무를 하면서 경계는 더욱 느슨해졌다. 출퇴근 없이 집에서 일하니까 예전 같으면 통근 시간이라 막아놨을 시간대까지도 회의를 잡는다. 회의실과 회의실을 오갈 필요도 없으니 단 5분의 여유도 두지 않고 빡빡하게 회의를 채운다. 아침 7시, 8시, 저녁 7시, 8시, 심지어 밤 10시, 11시에도 회의가 잡힌다. 락다운 기간 중에는 집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저녁 약속이 있다거나 어디 가야 한다는 핑계도 없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니 인식과 습관이 바껴 코로나 이후에도 워라벨을 지키기 더 어려워질 거라고 다들 걱정하지만 당장 일처리가 급하다.



Zoom 놀이

어쨌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떻게든 소통을 이어가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에어비앤비에서는 지역별로 일주일 한 번 정도 온라인 커피 타임 등을 가지며 평소에는 사무실 공간에서 오가며 나눴을 일상적인 대화와 잡담을 할 기회를 가지려 노력한다. 줌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다양한 배경을 사용하기도 한다. 입사 기념일이 되면 기념 풍선이 그려진 배경을 사용하고 회의에 따라 테마를 정해 각자 재밌는 배경을 깔아보기도 한다.  


코로나 2년차를 맞으며 온라인 세상은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워졌다. 에어비앤비도 기존의 오프라인 체험 대신 온라인 체험에 집중하고 있고 온라인 클래스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활동이 넘쳐난다. 각종 챌린지나 온라인 리추얼도 다양해졌다. 작년 10주 동안 문구점응의 매일 글쓰기에 참여해 책을 낸 데 이어(@brand.eung) 지금은 밑미(@nicetomeetme.kr)에서 제로웨이스트 리추얼과 타라 브랙의 10일 명상 챌린지에 도전하고 있다. 덕분에 거리나 시간의 제약 없이 좋은 콘텐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2021년 4월 23일, 코로나 이동금지령이 단계별로 완화되면서 4월 12일부터 식당과 카페의 실외 영업이 가능해졌고 드디어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조식을 먹기로 정한 날이다. 일주일 전부터 단골 카페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야외 테이블의 간격과 배치를 확인,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애 카페 오존 카페(Ozone Coffee Roasters)로 정하고 이 날만을 기다렸다. 아침에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화장품 파우치 깊숙이 숨어있던 마스카라를 꺼냈다. 같은 날, 영국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백신을 맞았다는 발표를 내놨다. 백신이 속도를 내면서 여름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목소리도 들린다. 줌비(zoombie)에서 벗어날 수 있게 곧 백신 차례가 오기를. 마스카라를 더 자주 바를 수 있기를.


4.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버스 탄 기념  5. 문 열 때 도착해 가장 끝 자리 선점  6. 바깥에서 제대로 된 '외식'!


매거진의 이전글 Oyster card의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