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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May 02. 2021

사람이 좋아

근데 피곤하기도 해

"나는 내 스페이스가 중요한 사람이야. 나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급격하게 방전되는 내향적인 타입이라 혼자 하는 걸 좋아하고 또 편하게 여긴다. 출장이 많다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하기도 하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밥도 잘 먹는다.


나도 사람이 좋아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코로나 락다운은 타격이었다. 어쩌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옵션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영국의 1차 이동금지령으로 런던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지냈다. 보는 사람이라고는 줌(Zoom) 속 2차원의 사람들과 가끔 산책 가거나 장보러 갈 때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들뿐인 날들을 보내며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견디다 못해 한국으로 내뺐으니까.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플랫메이트도 없었을지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나에게 큰 도전이다. 다행히 까다롭고 예민한 나를 받아주고 맞춰주는 무던한 친구를 만나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생활하는 게 좋은 점도 많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새벽을 좋아하지만 문 건너 방에서 친구가 자고 있다는 데서 온기를 느낀다. 플랫메이트가 하루 2만보 걷기 챌린지를 하느라 외출하면 집 전체가 나만의 공간이 되는데 어느새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다. 유진이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굉장히 허전할 거다. 십여년을 혼자 살았는데도 둘이 사는 즐거움을 알고 나니 그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함께 하는 건 당연히 불편함을 동반한다. 친한 친구와 함께여도 여행 가면 의견 차이로 싸운다. 그게 피곤해 조율과 타협이 필요하지 않은 나홀로 여행을 다녔다. 난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그러다 구글 퇴사 후에도 인연을 이어간 지형님과 에딘버러 여행을 떠난 2017년, 함께 하는 여행이 얼마나 더 재밌고 풍요로운지 느꼈다. 함께 하면서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와 불편함이 두려워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스스로 속이고 있었던 거다. 못 먹는 포도가 실 거라 자위하는 여우 마냥.


1. 에딘버러에서 지형님과  2. 나의 플랫메이트 유진이와 마스크 벗고 셀카봉 놀이  3. 지척에 사는 Kriz와 오랜만에 신나는 수다


4월 중순 들어 락다운이 완화되면서 조심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있다. 지하철로 15-20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지인들도 보지 못하고 지내다 오랜만에 실물을 영접하니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어제는 런던 사무실에서 일하는 구글러 분을 만났다. 런던에 오게 되면서 구글 지인으로부터 소개 받았는데 락다운 때문에 보지 못하다 연락처를 받은지 거의 1년 만에 처음 만났다. 오랜만에 구글 사람을 만나 옛날 이야기도 하고 공통 지인들의 소식도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을 만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산책을 하며 찬바람을 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와 뻗어 낮잠을 잤다.


사람은 좋은데 관계는 어렵고 피곤하다. 사람이 그립지만 가까이 하면 방전된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Fitbit 심장박동수가 130을 찍으며 가만히 앉아있어도 운동했다고 알림을 받는 내 플랫메이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마시는 것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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