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토끼 May 07. 2021

런던에서 전하는 마음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에서도 독립해서 산 지 꽤 됐지만 머나먼 땅에 떨어져 있으니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다르다. 이젠 건강이 걱정될 나이이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더 불안한 걸지도. 락다운을 피해 도망친 작년, 십여 년 만에 부모님 집에서 지냈다. 어떻게 보면 다시 없을 기회인데 결국 영국에 돌아오면서 '왜 더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후회했다. 있을 때 잘하는 건 왜 항상 어려울까.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우리집과 달리 사랑이 넘치는 이모네는 조카인 나에게도 온기를 아낌없이 전한다. 며칠 전 이모한테 보이스톡이 왔다. 잘 지내는지, 같이 사는 친구랑은 어떤지 안부를 묻다 이모부도 통화에 합류했다. 

혜림아 넌 꽃이야.

응? 갑자기? 

왜 꽃이냐 하면, 꽃은 누가 봐도 이쁘잖아. 가만히 있어도 예쁘고. 혜림이는 꽃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누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데 어찌 심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근데 엄마한테도 꽃이어야 해.

뼈 때리는 말이다. 엄마를 사랑하면서 왜 그렇게 같이 있으면 싸우고 화내는 걸까. 엄마와 나의 관계를 잘 아는 이모부의 애정 어린 당부다. (여담: 이모와 이모부를 보면 엄마가 부럽다. 엄마를 끔찍하게 아끼며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올 분들이다. 이모부는 엄마를 아직도 "누나"라 부르며 따른다.) 


부모와의 관계는 참 어렵다. 엄마와 가깝고 친구처럼 지내지만 엄마가 내 마음을 헤어려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서운함과 슬픔이 화로 터져 나온다. 아빠랑은 대화가 많지 않다. 전형적인 옛날 아버지들처럼 일하시느라 바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다. 아빠를 똑 닮은 나는 아빠가 이해 되고 안쓰러울 때가 많지만 누가 감정 표현 못하는 집 딸 아니랄까봐 살갑게 대하지 못한다. 


작년 초 나는 부모님을, 부모님은 나를 걱정하며 보냈다. 한국에서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가 터진 후, 기관지 확장증으로 평소에도 약을 드시는 엄마에게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매일같이 단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역전돼 하루 확진자 수가 5천 명을 오가며 영국은 전국봉쇄에 들어갔고 이젠 부모님이 내 걱정을 했다. 혼자 런던에서, 아프면 달려와줄 사람도 없이 지내는 딸이 불안한 게 당연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애써 태연하게 (마스크도 없이) 산책도 다니고 장보러 슈퍼도 오가며 지냈다. 불안해하기 시작하면 패닉이 올 것 같아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했다. 4월 중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인천공항에 내려 자가격리할 집에 도착해 영상통화를 할 때야 비로소 엄마 아빠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게 됐다. 안도한 표정으로 잘 들어왔다고 몇 번이고 말하는 아빠, 목소리가 떨리던 엄마. 내가 런던에 있을 때는 혼자 불안해할까봐 내색을 안 했다고.


올해 1월, 다시 영국으로 보내는 마음은 어땠을까. 영국의 신규 확진자가 하루 7만 명을 찍고 변이 바이러스까지 퍼지며 최악으로 치달을 시기였다. 딸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 같았을 그 마음을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수화물을 부치고 텅 빈 공항에서 아빠는 한 말을 또 하고 또 했다. 돈 아끼지 마라, 돈 아낀다고 몸 고생하지 마라. 어디 나다니지도 못하는 락다운이라 돈 쓸 일도 없지만, 아빠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는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배웅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살아서 그래도 안심이라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좋아하는 말이 있다. 10대 때 부모를 잃은 선미(정유미 분)의 대사다. 

부모님들이 왜 막내를 제일 예뻐하는지 알아? 자식 중에 부모님이랑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적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부모 사랑 많이 받아야 하는 거고.


엄마 아빠가 왜 나를 제일 사랑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공해줘서 좋지만, 이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은 건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함께 하는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채워갈 순 있다. 다음에 한국에 가서는 절대 잊지 말아야지.


(보실 리 없지만)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