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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May 08. 2021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기숙사

6평짜리 삶이 던진 질문, 시간과 공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COVID 19와 함께여야 하는 나의 유학 생활은, 사설 기숙사에서 시작되었다.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Student accommodations. Studio 702, Canto Court, 122 Old Street. EC1V 9BD


나는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을 다닐 때도 기숙사에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될 줄이야! 설레냐고? 아니요. 죄송하지만, 설렘이 없습니다.


일단, 이제 혼자만의 공간이 중요해졌다. 방을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소리다. 심지어 코로나가 터진 이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기숙사는 집단 감염 사태로 인해 기숙사 자체가 통으로 폐쇄되어 학생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기숙사에 갇혀 지내는 상황이라 전혀 기숙사 생활이 기대되지 않았다. 일부러 학교 기숙사를 피해서 이곳 사설 기숙사로 얻었다. 학교 기숙사는 대부분 주방을 공유해야 했고, 한 층에 2~30명이 같이 살아야 하는 구조라 감염병에 취약했다. 그래서 돈을 더 쓰더라도 사설 기숙사로 가기로 했고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1. 학교에서 도보 30분 이내 거리 

2. 방 안에 주방, 화장실 완비

3. 한 층에 사는 인원이 10명 미만인 곳

4. 중정이나 산책할 공간이 있을 것

5. 열리는 창문이 있을 것

6. 해가 잘 드는 남향일 것

7. 단기 계약이 가능할 것(기숙사는 대체로 45주 계약이 많음)


이 조건들을 고려해서 구한 곳이 바로 Canto court이다. 인터넷으로 오랜 시간 검색하고 이메일로 확인하고 버추얼 투어도 해서 정했다. 그 와중에 내부 인테리어까지 따졌다. 어디는 너무 하얀색으로 도배를 해서 병실 같았고, 어디는 너무 알록달록해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방 호수도 평면도를 보고 정하고, 최대한 인원이 적은 층에 남향으로 골랐다. 단기 계약이라 한국에서 보증금과 월세를 다 지불했고, 막상 도착해서 마음에 안 들어도 환불은 없었다. 다행히 결과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방은 깔끔했고, 남향이라 햇빛도 아주 잘 들었으며 7층이라서 엘리베이터를 굳이 타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사는 층에는 나 말고 거주하는 사람은 2명밖에 없었다.  

기숙사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 도착하자 마자 찍은 기숙사 방, 햇살 비치는 창문

그리고 나의 사심이 한 껏 들어간 동네였는데 일단 바비칸 아트 센터가 5분 거리, LSO(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St.Luke 공연장이 1분 거리, Hip 하고 Hot한 Shoreditch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였다. 주변에 M&S, Waitrose, Sainsbury까지 갖추고 있어서 문화생활, 식생활이 모두 편한 곳이었다. 비록 문화생활은 코로나와 2차, 3차 락다운 덕분에 한 번도 가지 못하고 끝났지만. 어쨌건 살기 좋은 동네였다. 


문제는 6평에 갇힌 서른아홉 살 유학생의 삶이었다. 강의는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식당을 가기도 불안한, 2020년 10월의 런던 생활이 침대 주방 화장실 모두 합쳐 6평짜리 기숙사 방 안에 갇혔다. 사람의 사고가 사는 곳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마음은 사는 곳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감옥살이가 왜 고달프겠는가, 그 좁은, 갇힌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지. 우주여행을 꿈꾸는 시대에 방 한 바퀴를 다 돌아봐야 12걸음 밖에 안 되는 6평 기숙사에서의 삶은 옳지 않다. 


책상이 곧 밥상이고, 밥상이 곧 책상인 삶. 마음이 좁아진다. 자꾸만 이러려고 왔는가 싶은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생각한다. 평생을 살 것도 아니고 고작 4개월인데 어떤가. 이런 삶도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언제 또 살아보겠는가. 그렇게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나날이 며칠 이어졌다. 그러나 인생의 깨달음은, 행복은, 느닷없이, 별 것 아닌 것으로부터 찾아온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비가 왔고. 비 오는 밤에 아이유의 '밤편지',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 뮤지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이 차례로 6평 기숙사 방을 채웠다. 고요한 밤에, 고요한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 모두가 온전하게, 나의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내게 주어진 공간의 크기가 주는 제약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제약에 허덕이며 살아왔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등교하거나 출근을 했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야근을 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요일 밤이면 월요병에 시달렸다. 월급값을 하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었던 적이 더 많았다. 그런 내게 기숙사 방이 묻고 있었다. 

"시간의 자유와 공간의 자유,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고.


시간이 남에게 묶여 있는데, 내가 사는 집이 30평이건 100평이건 무슨 소용일까. 비록 사는 곳이 방 한 칸일지라도, 24시간이 온전히 내 뜻대로인 삶이 그토록 그리던, 갈망하던 삶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사람들이 무언가를 flex 하는 걸 좋아하던데 어떻게 보면 가장 값 비싼 flex가 바로 시간이 아닐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Flex가 바로 그 Timeflex이니, 6평 공간을 넘어 시간의 숲을 여행하는 것으로. 


그리고 오늘의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에게, 시간의 자유와 공간의 자유, 무엇이 더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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