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미운 사람, 지겨운 사람, 짐스러운 사람의 존재
한동안 남편의 숨소리도 듣기 싫을 때가 있었다.
이혼하면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미운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너무 절망일 것 같았다. 인생이 지옥일 것 같았다.
이 때쯤인 것 같다.
남편과 잘 지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게.
아이들이 지긋지긋할 때가 있었다.
나는 없고 엄마라는 가죽만 뒤집어 쓰고 있는 게
억울했고, 우울했고, 화가 났다.
그런데 이토록 지겨운 아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나도 따라 사라져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들 없는 내 삶은 죽은 삶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저 아이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내 아이들이 다른 엄마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소득이 없는 가난한 부모님은 나에게 속쇄였고, 부끄러움이었고 짐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부담스러운 부모님이 세상에 안 계신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봤다.
두번 다시 내 부모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보내드린 돈보다 2배의 돈을 더 보내드려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때론 밉고, 지겹고, 부담스러운 관계조차도 상대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대상이 사라져버리면 아무 의미 없는 하찮은 감정 따위가 뭐 그리 대수라며 전전긍긍했을까.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