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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Jan 13. 2021

브런치 백 번째 글입니다

 이번 글이 백번 째 글이다. 백 번째 글이란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만 아기도 백일상 차려주니까 나도 백번 째 글 자축글을 올린다.


 백개의 글을 쓰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25년 동안의 내 예능 연대기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예능의 이론 같은 글들도 써나가고 있다. 에세이도 써보고 시도 소설도 끄적거려보고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보는 중이다.


 글쓰기 혹은 책 쓰기의 인연이라면 10년 전에 혼자 막 써놓은 300페이지 분량의 연애소설을 번역작가인 친구가 출판사에 멋대로 보냈는데 출판사 대표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아주 신선하고 날것인 독특한 문체라며 책을 내보자며 원고 수정을 요구하셨다. 독일에서 헤르만 헤세를 전공하신  문학 박사님이자 평론가 그리고  출판사 대표님이셨다.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지만 당시 제작사 국장으로 취업을 하는 바람에 수정할 엄두도 못 내고 흐지부지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까운 기회였다.


 두 번째 글쓰기 기회는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아주 유명한 영화감독님의 부인이자 영화사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내 똘기를 매우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하루는 시나리오를 써보자고 의뢰 비슷하게 하셨다. 자신의 남편이자 영화감독님이 써놓은 발리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가 있는데 나한테 수정을 맡기신 거다. 읽어보니 매우 어둡고 무거운 내용이었다. 그 뒤로 감독님과 회의를 여러 번 하면서 중국 발리 한국을 오가며 펄쳐지는 SF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놉시스를  완성시켰다. 내게는 아주 즐겁고 신선한 작업이었다. 그 뒤로 사드 문제로 감독님의 중국 영화 촬영 건도 무산되고 당연히 이 시놉시스도 시나리오 작업으로 진행되는 게 중단되었다.


 세 번째 기회는 진짜 출간 의뢰였다. 한 서점에서 주최하는 나의 예능 특강을 우연히 들어본 출판사 대표가 만나자고 해서 출판 얘기를 나누었다. 그 후 일의 진척이 빠르게 되어 선인세를 무려 700만 원이나 주는 계약서 초안을 받아 들었다. 내가 도장만 찍어서 보내주면 계약금이 들어올 상황이었다. 여자 예능 피디가 말하는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을 소재로 하는 에세이였다.


 이틀을 고민하다 거절했다. 선인세 700만 원이면 어마어마하다는 감도 없었을뿐더러 그때는 적어놓은 글도 없었다, 단순히 나의 이력이 그래도 괜찮다는 것과 강의 때 들어 본 내용이 아주 알차고 훌륭했다는 이유로 나를 너무 믿어주는 출판사 대표를 생각하니 주춤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영석도 김태호도 아닌데 무슨 예능 책을 내놓겠나 하는 소심한 마음이 제일 크게 차지했다. 


 책이란 건 꼭 유명해야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주변에 방송작가나 피디들이 낸 책들을 보면 크게 읽을거리가 없었고 따라서 금방 사장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 대열에 끼고 싶지 않았다. 오래 망설이다 그 큰돈(그때는 누구나 그 정도는 받는 줄 알았고 이제는 그게 얼마나 큰 선인세인 줄 알았음)을 마다하고 거절했다. 출판사 대표는 크게 아쉬워했지만 아마 그에게는 내 거절이 행운이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쓴 책이 많이 읽힐 리가 없다.


 그렇게 몇 년을 흘려보내다가 브런치를 만났다. 그리고 55일 만에 무려 백 번째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마음 편한 기분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게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의 큰 장점인 구독자 시스템이 나를 신나게 글 쓰게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진지하게 글을 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글공부 많이 해서 일단은 동시 동화 작가로 등단해 보려 한다. 부끄럽지만 선언의 효과를 노려본다. 이것저것 쓰다 보니 내 철없음이 동심과 비교적 가까워 동시 동화에 매우 끌린다는 점이다. 물론 예능 관련 책 의뢰가 들어오거나 에세이를 쓰자고 누가 그런데도 쓸 것이다. 하하하. 그러나 순수문학을 쭉 공부해 나갈 것이다. 아주 재밌는 놀이이자 인생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다.


 브런치 시작하기 잘했어. 이것저것 많이 써보길 잘했어. 백개나 글 올린 거 수고했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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