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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Jan 16. 2021

글을 쓴다는 것...

 따뜻한 바닐라 라떼가 있다.  감성 힙합곡들을 모아놓은 유튜브 채널을 튼다. 보통이라면 이런 순간들에 일을 생각한다. 앞으로의 걱정들도 한 세트다. 하지만 이즈음은 저 세트를 버리고 [커피, 음악 그리고 글을 쓴다]가 한 세트가 되었다. 어느새 글 쓰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이제야 다시 만난 것처럼 익숙하다.


 글이란 건 그냥 마음인 것 같다. 마음을 언어로 옮겨놓는 것이 글이다. 마음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으니 글을 쓰는 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하다. 또한 마음은 자기를 좀 바라봐달라고 표현해달라고 나에게 졸라댔을텐데 그 칭얼댐의 의미를 몰랐으니 참 답답했을 것이다.


 나에게 글이란 곧 책이었다. 책을 쓰는 것만이 글을 쓰는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했다. 책을 낼 수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이유도 없이 상업적인 목적 없이 글을 쓴다는 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행위였다.


글이든 음악이든 미술 혹은 다른 어떤 형태로든 평생토록 자기표현을 하지 않았기에 쌓여있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들쳐보니 순진한 어린애가 있고 꿈꾸는 소녀도 있다. 열정에 들뜬 씩씩한 청년도 다 늙어버린 쇠잔한 노인네도 있었다. 열다가 뚜껑을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뭐가 많다.


 마음에는 자랑할만한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이 숨어 있었으리라. 남들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보여주기 민망한 모든 것들이... 슬픔은 아직 울고 있을 거고 억울함이 여태 씩씩대고 있을 테고 분노도 여직 화를 내고 있을 것이며 나약함과 비열함은 아직도 부끄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수많은 하루들은 잠잠한 것 같았지만 표현되고 연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시끄럽게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모른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몰랐다고 자기변명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쓰고 싶은 마음들이 너무 밀려 나온다. 목구멍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서로 튀어나오고자 난리도 아니다. 긴 세월 닫혀있던 빗장이 풀리니 서로 탈출하려 아비규환이다. 순서도 질서도 없다. 그동안 묶여 있던 마음을 풀어주는 것 만으로 남은 평생이 모자랄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 마음 저마음이 짝지어서 나오기도 하고 변성되기도 해서 스스로 가늠할 수 없는 본 적 없는 마음들도 튀어나온다. 이런 게 내 마음이었다고? 하는 낯선 감정들도 본다.


 한동안은 이럴 것 같다. 통제할 권위나 위엄이 내게 없다. 초소의 마네킹 경비원처럼 마구 넘나들고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것 그리고 지나다는 것을 그냥 바라볼 뿐이다.


  동생 중 하나가 음악을 한다. 그에게 음악은 생계수단 이전에 삶을 구원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음악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음악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음악은 그에게 존재 그 자체이자 유일한 표현 수단이었다. 그런 삶이 이제야 깊이 이해된다.


 언제까지 밀려 나올지 아우성칠지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슬픈 날은 슬픈 글을 쓰고 기쁜 날은 기쁜 을 쓰고 가라앉는 날은 글을 붙잡고 일어날 뿐이다. 이제는 나도 글을 쓰기에 글 때문에 힘들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디로 넘어져도 얼마나 아프더라도 붙들고 일어날 지팡이가 생겼고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손에 쥐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마음이 일어나면 표현해주고 날려 보내는 순환작용이 혼자만으로 해결되니 삶이 불완전하지 않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채로 지나가는 하루는 없다. 매일매일이 완결된다. 참으로 감사한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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