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자서전>을 읽고...

머리털 나고 처음 써보는 책 리뷰

by 박지아피디


친한 구독자님 글 소개로 한 권의 수필을 주문했다. 구독자분이 쓴 글에서 이 수필의 리뷰를 읽었다. 이건 꼭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 사지 않을 종류의 책이다. 하지만 묘한 이끌림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됐다.

그 끌림은 [서로 너무 다름]이었다. 네모 종이를 대각선으로 반 접으면 마주치는 두 꼭짓점 같은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얕디 얕은 내가 깊은 누군가에게 이끌려 잡혀 들어간 기분이랄까?


손훈영 님의 <그 여자의 자서전>을 글공부 삼아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참 우스운 일이었다. 그 수필 책은 글이 아니었다. 몇십 년을 고아서 우려낸 한우 산삼 곰탕이었다. 이거봐라 이래서 내가 리뷰를 안 쓰는 것이다. 이건 마치 피카소의 추상화를 감상한 어린이가 "와 신기하다! 이쁘다!"라고 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살아있는 저자의 자전적 수필 ㅡ그녀가 혹시 볼지도 모르니 난감한ㅡ 그것도 유려한 문장들로만 표현된 그 책의 리뷰에 도전한다는 것은 나의 치기이지만 그야말로 글공부 삼아 시도는 해본다. 어차피 훌륭한 문장으로 쓰지 못할 바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리뷰를 해보기로 한다. 그럼 떨리는 마음으로 리뷰 시작해본다


<그 여자의 자서전>


이 책은 크고 검붉은 토마토이다. 저자 본인은 빨간색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한다고 쓰여 있지만 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커다란 토마토 하나를 체망에 눌러 짜는 상상을 하게 됐다.


주먹으로 꽉 눌러서 짜면 체망 밑으로는 진한 토마토 액즙이 흘려 나온다. 그리고 체망 위에는 차마 즙이 되지 못하고 남은 건더기들이 있다. 그 건더기들은 여러 명의 손훈영들이다.


혼자 있는 걸 생명처럼 생각하는 손훈영

비만 오면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손훈영

친정 식구들한테 칡뿌리 얽히듯이 칭칭 감겨 있는 손훈영

하나밖에 없는 딸을 지리산학교에 보내는 손훈영

암 판정을 받고 호두과자 까먹는 손훈영

백화점의 여우 같은 직원을 움베르토 에코 할아버지처럼 혼내는 손훈영

삼손 같은 머리카락에 반해서 결혼한 손훈영

구제 옷과 낡은 가구들 마당 있는 집을 좋아하는 손훈영

하루 10매 글쓰기와 걷기가 남은 인생의 전부가 된 손훈영


이런 여러 명의 손훈영은 액즙이 다 빠져나가고 몇 가닥의 섬유질 덩어리같이 남아있는 새빨간 건더기 이야기들이다.


진짜는 체망 밑으로 짓눌려 빠져나온 검은 토마토 액즙이다. 왜 토마토 액즙이 검냐면 그녀는 검은색 속에서만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를 짜내면 검은 액즙이 나온다. 이 액즙의 맛은 덤덤하다. 그녀를 맛으로 표현하면 그녀의 표현대로 덤덤함이다. 토마토 즙 맛이랑 똑같다. 달지도 시지도 쓰지도 않은 무덤덤한 맛이다.


이 덤덤한 맛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검은색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흡사하다. 노랑 빨강 초록 주황 등을 다 섞어버리면 탄생되는 색이 바로 검은색이다. 따라서 그녀가 그녀라고 느끼게 하는 덤덤함이란 것도 기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허방하고 절망했을 그 모든 인생의 맛을 다 섞어서 만들어 낸 맛이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고통스럽다거나 나약하다거나 놀랍다거나 기쁘다거나 하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규격적인 감정이나 직접적인 표현들이 없다는 것이다. 내용은 분명 그러한 내용이지만 그녀도 읽는 사람도 덤덤하게 만들어 버린다. 슬프지 못하게 만들고 웃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녀가 그것을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까맣고 덤덤한 그녀에게서 나는 미안하게도 또 그녀가 싫어하는 빨간색을 보고야 만다. 까만 옷을 입고 덤덤한 기분으로 미니멀한 거실에 앉아 은색 노트북을 펴는 그녀의 가슴에서 빨갛고 투명한 심장이 뛰는 것을 얼굴이 불그레 상기되는 것을 글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그녀를 빨갛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것은 독자인 내가 느끼는 점이다.


이 책이야말로 글을 읽은 건지 사람을 읽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한 사람의 영혼과 삶을 통째로 갈아 넣은 이 한 권의 책을 며칠 만에 홀라당 마셔버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쓰기와 읽기를 한 세트로 여기는 그녀처럼 나는 이 책을 또 읽고 또 써보고 여러 번 우려먹을 것이다. 다시 또 리뷰를 쓰게 된다면 그녀의 책을 아니 인생을 더 잘 통찰했을 글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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