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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군자가 될 필요 없다

불편한 관계가 가르쳐준 ‘거리 두기의 미학’

by 뽀시락 쿠크

사람들의 실수를 보며 기뻐하고 신나 하는 빌런의 심리는 뭘까?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순간에 팀원의 실수에 신나 하며, 표정 하나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걸까?'

처음엔 조금 이상했지만,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빌런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스러운 것은 매한가지다.


인간관계로 힘들어할 때, 상담사 선생님은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빌런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게 힘들었다. 억지로 웃으며 인사하고,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평온한 척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럼 그냥 불편한 상태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마음이 편한 쪽으로.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꼭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괜찮다는 것. 그 이후부터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여러 글들을 보며 마음을 컨트롤하려 했다. '화를 내지 말자', '평정심을 유지하자', '아무렇지 않게 대하라'. 하지만 나의 한계에서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성인군자가 된 것처럼 참으려 했던 모습이 미련하다.

왜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 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기에, 이번 관계가 더욱 힘들었다. 그냥 정리하면 되는데, 나의 표면적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았다.

'원만한 사람'이라는 평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빌런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른 사람들은 빌런을 떠날 방법을 궁리하는데, 나는 이제껏 버텨온 것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사적인 대화는 피하고, 명확한 선을 긋고 있지만. 그 시기가 더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나만 혼자 끙끙거리며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인군자가 될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을 이해할 필요도, 포용할 필요도 없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억지로 참기보다,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손절이라는 단어가 거칠게 느껴진다면 '정리'라고 부르면 된다. 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하니까.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그 안에서 배웠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빌런 덕분에 성장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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