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 부자 대감이 있었다. 대감은 평생 앉아서 이야기 듣는 재미로 살 생각을 하고 이야기 잘하는 사위를 구하였다. 천하에 이야기 잘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는데, 아무리 재주가 좋은 사람이어도 사나흘 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다 떨어져서 그만 가버리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사십 먹은 노총각 하나가 이 집에 찾아왔다.
“댁에서 이야기 잘하는 사람을 사위로 삼는다는데, 이야기를 얼마쯤 잘하면 사위로 삼소?”
대감은 자신이 늙어 죽도록 평생 맡아 놓고 할 만한 자신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눈치를 보아 하니 ‘이놈이 이야기는 제법 하는 모양이다.’ 싶어, 일단 시험 삼아 한 닷새만 해보자고 하였다.
“그럼 제가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십 년이나 이십 년이나 딸 다 늙도록 장가 안 갈 수는 없고, 도중에라도 언제든 장가는 갈 수 있지요?”
"허, 그놈, 참. 속고만 살았나. 장가가는 날 쉬고, 또 그 이튿날부터 하면 되니까 일단 해보기나 하게."
총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중국, 그 큰 대륙에서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 큰 대국에도 흉년이 져?”
“그럼요. 중국 대륙 그 큰 데서 뭐 몇억만 인구가 사는 동네지만 크게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게 다 떨어져 버렸어요. 사람 먹을 건 둘째 치고 쥐 먹을 것도 없어서 쥐들이 이쪽으로 먹을 걸 찾아 건너옵니다.”
“그래?”
“대국서 이리로 건너오려면 두만강을 건너야 하는데, 쥐가 뭐 손이 있습니까, 발이 제대로 있습니까. 대장이 맨 앞에 서고 그 뒤에 대장 꼬리를 물고 한 놈이 따라붙습니다. 대장이 먼저 물에 텀벙 빠집니다. 대장 꼬리를 문 놈 뒤에 또 한 놈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놈도 꼬리를 물고 텀벙, 한 놈이 꼬리를 물고 텀벙, 한 놈이 또 꼬리를 물고 텀벙….”
한참 하더니,
“대국 쥐니까 얼마나 많겠습니까?”
“아, 그건 그렇겠지.”
“한 놈이 꼬리를 물고 텀벙, 한 놈이 꼬릴 물고 텀벙, 한 놈이 꼬릴 물고 텀벙….”
“아 그저 중국 대륙 쥐가 전부 모여 들어 아직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아 그러지.”
“또 한 놈이 꼬리를 물고 텀벙, 또 한 놈이 꼬리를 물고 텀벙, 또 한 놈이 꼬리를 물고 텀벙….”
대감이 그만 질려서 언제까지 그 얘기만 하냐며 화를 냈다.
“가만 계셔요. 쥐가 다 건너 와야 다른 얘기하지요. 여기서 중단하면 쥐만 다 빠져 죽고 맙니다요.”
총각은 짐짓 타이르듯 대감의 말을 공손히 막았다. 그렇게 몇날 며칠 쥐가 텀벙거리는 것만 듣고 있다 보니 이십 년을 건너올지 오십 년을 건너올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대감은 이놈한텐 몇 대를 해도 안 되겠다 싶어 그만 사위로 삼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1-1, 815-818면, 수유동 설화108, 끝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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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좋아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걸 경계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듣기 싫다고 할 정도로 이야기를 잘해주면 딸을 주겠다는 대감한테 오십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해서 아주 질리게 만들어 버렸어요.
오래 전 제가 다니던 회사에 책을 참 많이 읽은 친구가 있었어요. 주로 소설책을 많이 읽었고요, 그 독서량이 어마어마해서 늘 놀라워하며 바라보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친구가 참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현실 감각이 전혀 없고 늘 뜬구름 잡는 말만 해대니 도대체 대화가 되질 않았어요.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 <끝없는 이야기>는 우리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환상이 메마른 현실을 견디는 힘이 되게 한다고 말한다는데, 어떤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삶이, 현실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도 never ending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