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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Dec 11. 2015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구복여행

석숭이라는 총각이 있었다. 석숭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석숭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하루하루 겨우 밥 먹고 살다 보니 서른다섯 살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에서 나무를 하고 내려오다가 큰 연못 옆에서 잠시 쉬던 석숭은 갑자기 자기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석숭은 연못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이렇게 복 없이 고생만 하면서 늙을 바에야 차라리 지금 물에 뛰어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석숭이 벌떡 일어나 연못을 향해서 뛰어가려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석숭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석숭아, 석숭아, 아직은 물에 빠져 죽을 때가 아니다. 윗동네 앞 못 보는 점쟁이를 찾아가라. 거기서 점을 치면 네 살 길을 알려 줄 터이니, 괜히 빠져죽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 거기를 찾아가 점을 보아라.”

석숭은 하늘이 시키는 일이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윗동네 점쟁이를 찾아갔다.

“내가 평생 이렇게 머슴만 살다 죽을 것인지, 언제든 좋은 시절을 만나 보기는 할 것인지 점 좀 한 번 봐 주시오.”

점쟁이는 산통을 흔들며 뭐라 뭐라 주문을 외더니,

“음. 이제는 어지간히 때가 되었구먼. 내일부터 무조건 서쪽으로만 가는데, 그냥 몇 달 며칠이고 가다 보면 살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여.”

하고 점괘를 풀어 주었다. 점쟁이 말에 의하면 그렇게 서쪽 끝까지 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그 바다의 용왕이 살 길을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석숭은 결심을 하고 머슴 살던 집 주인을 찾아갔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소. 이제 죽든지 살든지 내 맘대로 그냥 나가서 원 없이 가볼 테니 그동안 일한 값을 좀 쳐주시오.”

주인은 갑자기 왜 그러느냐며 좀 더 일해 달라고 붙잡다가 석숭이 그래도 가야겠다고 하니 그동안 일한 삯과 여벌의 옷가지들을 챙겨 주었다. 곧장 길을 떠난 석숭은 무작정 서쪽으로, 서쪽으로 하염없이 걸어갔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쉴 곳을 찾는데 눈앞에 으리으리하게 큰 기와집이 나타났다. 석숭이 그 집에 들어가 주인을 찾으니 젊은 부인이 나왔다. 석숭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자 부인은 자신이 이 집에 혼자 살고 있는데 오늘이 죽은 남편의 제삿날이라고 하면서 그래도 괜찮다면 들어오시라고 하였다. 과부는 석숭에게 제사 음식으로 저녁밥을 차려 주면서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석숭이 서쪽 바다 용왕에게 살 길을 물어보려 간다고 하자 과부는 자신의 사정도 좀 말해 달라고 하였다.

“내가 어린 나이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청상과부로 살았는데, 어떤 사람과 살면 이 재산을 잘 지키고 살 수 있을지 용왕에게 물어봐 주시오.”

석숭은 알았다고 하고 다음날 다시 길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어떤 집에서 하루 묵어가기를 청하자 그 집 주인도 석숭에게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석숭이 서쪽 바다 용왕에게 살 길을 물어보려 간다고 하자 주인은 자신도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여기서 남부럽지 않게 부자 소리 듣고 잘 살고 있소. 그런데 문 앞에 화단을 잘 꾸며 놓고 귀한 나무를 비싼 돈을 들여 사다 심어 놓았는데 꽃이 필 만 하면 자꾸 말라 죽어 버려요. 어떻게 하면 화단에 꽃을 심어서 잘 살릴 수 있을지 그것 좀 알아다 주시오.”

석숭은 알았다고 하고 그 집에서 하루 잔 뒤 다음날 다시 길을 떠났다. 석숭이 몇 날 며칠을 걷다 보니 드디어 바다가 나왔다. 그런데 용왕의 집은 바다 가운데 작은 섬에 있었다. 석숭이 건너갈 방도가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이무기가 나타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하였다. 석숭이 자초지종을 말하니 이무기도 자신의 사정을 좀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내가 승천을 못해서 이렇게 이무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승천할 수 있을지 그것 좀 물어봐 주시오.”

석숭이 알았다고 하자 이무기는 석숭을 자신의 등에 태워 바다 가운데 용왕의 집에 데려다주었다.

석숭이 용왕에게 엎드려 인사하며 자신의 복을 알아봐 달라고 하였더니 용왕은 집에 돌아가면 자연히 답을 얻게 될 것이라며 그저 돌아가라고만 하였다. 석숭은 그러면 질문에 답을 해달라고 하고는 그동안 부탁받은 일들을 물어보았다. 용왕이 하나씩 답을 해주었는데, 첫 번째 과부는 남편의 제사상을 처음으로 함께 먹은 남자가 그녀의 짝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들른 집에서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이유는 뿌리 밑에 금덩이가 있기 때문이니 그 금덩이를 파내면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무기가 승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이무기가 여의주를 두 개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욕심을 버리고 하나를 놓으면 승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석숭은 용왕의 집에서 나와서 이무기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이무기를 타고 뭍으로 돌아가서는, 용왕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이무기는 여의주 하나를 석숭에게 주고 바로 하늘로 올라갔다. 석숭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있는 집에 가서 그 이유를 말해주니 주인은 뿌리에 있는 금덩이를 파서 석숭에게 주었다. 마지막으로 석숭이 과부에게 답을 전해주었더니 과부는 처음으로 제삿밥을 같이 먹은 남자는 석숭이라고 했다. 그래서 석숭은 그 과부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고 잘 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2, 736-747면, 산내면 설화3, 석숭의 복.


**

너무 가난해서 혼자 힘으로 살기가 힘들었던 석숭은 연못에 빠져 죽을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하늘 목소리는 석숭에게 혼자 틀어박혀서 안 좋은 생각에만 빠져 있지 말고 집 밖으로 나가 길을 떠나라고 알려주어요. 막상 길을 떠나고 보니,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석숭은 자기 복을 찾아서 길을 떠났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해 오는 그 목소리들을 저버리지 않았어요. 우리 옛이야기들에서는 이렇게, 무작정 자기 복만 찾으라고 하지 않아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탓만 하면서 기운 빠져 지내기보다는 자기 주변에 혹시 자신의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한 친구나 가족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힘을 쓸 수 있을 때 자신도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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