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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Dec 12. 2015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남의 소 팔아 책 산 아버지  

옛날에 함평 이씨가 고향을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씨는 가난하고 무식하여 양반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하대를 받으며 품팔이하여 먹고살았다. 하루는 이씨가 남의 집 일을 하면서 그 집 소로 논을 갈고 있었다. 한참 일하다 잠시 앉아 쉬는데, 웬 사람이 사서삼경을 한 짐 단단히 짊어지고 가다 이씨 옆에 앉아 같이 쉬었다. 이씨가 그 많은 책을 짊어지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대처에 팔러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이씨는 책값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임자를 만나면 더 받는 것이고, 임자를 쉽게 못 만나서 내가 아쉽게 팔게 되면 값이 헐한 것이고 그렇다우.”

“그, 소 한 마리 값이 되오, 못 되오?”

“비싸게 팔려면 소 한 마리 값이 더 되지만, 소 한 마리 값만 주면 팔랍니다.”

“그러면 이 소를 갖고 가시오.”

이씨는 당장 소를 줘버리고 쟁기는 논에 박아놓은 채 책을 짊어지고 집에 가서 안 보이게 잘 감춰두었다. 그러고는 부인에게 자기는 이제 집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내가 지금 어디라도 가서 소 한 마리 값을 벌어 와야 하니, 내가 없더라도 무슨 짓을 하든 굶어죽지만 말고 살아 있으시오. 쉽게 벌면 쉽게 올 것이고, 더디게 벌면 더디게 올 것이고 한정은 없소이다.”

이씨가 그렇게 집을 떠나 버리자 소 임자는 이씨가 소 갖고 달아났다고 도둑놈이라며 욕을 해댔다. 이씨 부인도 덩달아 도둑놈 마누라가 되어 욕을 먹어가며 겨우겨우 먹고살았는데, 한 일 년쯤 후에 이씨가 전에 팔아먹은 놈보다 더 큰 소를 끌고 돌아왔다. 그제야 동네에서는 이씨더러 도둑놈이라고 하던 소리가 사라졌다. 이씨는 숨겨 두었던 책을 몽땅 꺼내어 방에 수북하니 쌓아 놓고 술을 좀 해놓고는 동네 양반들 생일이며 제사 때마다 청해서 대접하였다. 동네 양반들이 이씨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흉악한 상놈으로 알았던 이씨네 집에 책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웬 책이냐며 놀랐다. 이씨는 아버지, 할아버지 때 보던 책이라고 하였다. 동네 양반들이 그렇게 술 한 잔씩 얻어먹고 가서는 젊은 사람들 불러놓고, 이씨가 양반 집안인 게 확실하다면서 존경하고 벗할 만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양반 대접을 해주라고 하였다. 이씨가 그렇게 양반 대접받으면서 살게 되면서 살림도 점점 나아졌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이씨 내외가 잠을 자다 같은 꿈을 꾸었는데, 마당에 있는 확독에서 청룡 세 마리가 올라가다가 두 마리는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는데 한 마리는 얼마쯤 가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내외가 함께 마당에 나가 관솔불을 붙이고 확을 들여다보니 커다란 지렁이 세 마리가 들어 있었다. 부인이 지렁이 세 마리를 그 자리에서 집어삼켰고 그 후에 아들 삼형제를 낳았다. 이씨의 아들 삼형제는 모두 인물이 잘나고 재주가 있어서 글을 잘 배웠다. 이씨 내외가 삼형제 공부 시키느라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부지런히 살았는데, 어느 더운 여름날 아들들이 서당에 다녀오다가 보니 부모가 보리풀을 써느라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큰아들이 좀 쉬시라며 책을 내려놓고 오자 이씨는 작대기로 아들을 후려 팼다.

“이놈, 너 보고 글 배우라고 했지 언제 내가 보리풀 썰라고 했느냐?”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글을 가르쳐 놓으니 아들 삼형제가 모두 대과를 해서 위의 둘은 승지가 되고 막내는 군수가 되었다. 그 근방에서 이씨네 이상 가는 양반도 없었고, 원님이 새로 부임해 오면 이씨네 집부터 찾게 되었다. 그 후로 함풍 이씨라고 하면 양반 집안이라고 대접을 잘해주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1-1, 462-466면, 수유동 설화52, 용꿈과 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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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고 싶었으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으면 될 것을, 일을 좀 어렵게 했다는 느낌이 있지요?^^ 어쨌든 한 짐 가득 책을 지고 가던 책장수를 보자 남의 소라도 넘겨버리고 책을 산 그 열망은 이해할 만합니다. 남의 동네 와서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업신여김 당하다가 어떻게든 그 처지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렇게 자기 위신을 어느 정도 세우고 나서는 자식들 공부시키는 데에만 매진하여 결국 양반 집안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살아온 방식이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세대는 이 아버지처럼 해도 양반 집안 되기가 쉽지 않아 살기 괴롭긴 합니다만. 하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완전히 다른 틀이 요구되는 것 같긴 합니다. 이 아버지처럼 열망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 지향이 ‘양반 만들기’에 있다면 더 괴로워질 세상이지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생활력, 수직상승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고의 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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