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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Dec 14. 2015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끓는 기름 부어 남편 죽이고 개가한 여자

변춘정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과거 보러 가던 길에 혼약이 되어 있는 집에 인사하려고 들렀다. 마침 앵두가 많이 날 때여서, 처가집에서는 앵두를 쟁반에 담아 대접하였다. 변춘정은 문 밖에 일행을 세워 두고 잠시 인사만 하려고 들렀던 차에 자꾸 먹고 가라고 권하니 마음이 급해서 한 번에 한 줌씩 집어넣고 우물우물 먹고 씨를 뱉어내고 하였다. 장인 될 사람은 변춘정의 인물 풍채는 좋은데 음식 먹는 모습이 영 상놈이라 마땅치 않아 파혼을 해버렸다. 그리고 딸은 곧 다른 집에 시집을 보냈다. 딸이 혼례를 치른 후 친정에 머무르고 있을 때, 변춘정이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가던 길에 다시 이 집에 들렀다. 딸은 자신과 혼인할 뻔했던 사람이었기에 궁금해서 몰래 문틈으로 엿보았다. 그런데 인물과 풍채가 지금 남편보다 아주 준수한데다 과거에 급제까지 한 사람이라 ‘햐, 울 아버지가 참 옳지 않은 짓을 했구나. 조금만 더 참고 계셨으면 내가 저 사람한테 시집을 갔을 텐데.’ 싶어서 불만이 생겼다. 얼마 후 남편이 다니러 왔는데, 여자는 남편이 자는 사이에 남편의 귀에 끓는 참기름을 부어 죽였다. 남편을 장사지낸 후 여자는 곧 변춘정을 찾아갔고, 어찌어찌 하여 그와 혼인하였다. 여자는 변춘정과의 사이에서 아들 삼형제를 두었고, 변춘정은 높은 벼슬을 하면서 잘살다가 낙향하여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슬비가 내리는데, 변춘정이 안채에 와서 여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여자는 바느질을 하다가 비 내리는 문 밖을 내다보고 살짝 웃음을 지었다. 변춘정이 비를 보고 웃는 이유를 물었다. 여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하더니, 처마에서 물이 떨어져 방울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변춘정과 파혼시키고 다른 데로 시집보낸 일, 자신이 문틈으로 엿보았던 일을 이야기한 후, 마침 남편이 찾아왔기에, 자는 사이에 기름을 끓여서 귀에 부으니 입에서 거품을 내며 죽더라, 빗물방울 떨어지면서 거품 나는 것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 하며 옛날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변춘정은 다 듣고 나서 조용히 사랑채로 나와서는 종들에게 장작을 마당에 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자와 아들 삼형제를 전부 묶어서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으라고 명하였다. 여자는 그렇게 묶여서도 후회 없다고 말하였다. 변춘정은 “너는 나보다 더 잘난 사람 있으면 나도 역시 죽일 년이로구나. 너 같은 독한 년한테서 난 아이들도 다 필요 없다.” 하고는 여자와 아들 삼형제를 전부 그 자리에서 태워 죽였다. 당시에는 개가법이 있어서 개가가 허용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변춘정이 개가법을 일절 금하도록 하였다. [한국구비문학대계] 8-8, 111-117면, 삼랑진읍 설화23, 변춘정(卞春亭)의 개가 금지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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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복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 이 이야기 때문이었어요. ‘분노’와도 무척 관련 깊지요. 이렇게도 끔찍한 이야기가 우리 옛이야기에도 있구나, 싶었어요. 다른 각편은 ‘축첩제도를 없앤 변계량’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집니다. 개가금지, 축첩금지와 관련되는 것은 곧 악독한 여자가 자기 욕망에만 몰입하여 발생하는 불상사를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야기되는 것이지요. 변춘정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어르신’으로 일컬어지거든요. 많이 과장되었겠지만, 여자의 욕망에 대한 두려움, 이를 남자의 권위와 이름으로 억압하는 구조가 잘 드러나지요. 어쨌든 여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태연하게 남편을 죽이고, 그 이후 자기 뜻대로 행복을 쟁취하는 데에 무척 놀랐어요. 끓는 참기름을 귀에 흘려 넣는 방법은 외상을 남기지 않고 변사한 것으로 처리하기에 매우 적절한 방법이지요.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제법 길었던 저에겐 이런 이야기가 무척 자극이 되는 것이지요. <내 딸 금사월>의 오혜상 같은 악녀 캐릭터는 정말 전형적이지만 그만큼 또 꾸준히 생산되고 있잖아요. 막장이라고 욕하면서도 보는 데에는 어쩔 수 없이 카타르시스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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