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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Jun 05. 2024

나이스한 개**

<이순신과 상사뱀> 

오늘, '나이스한 개새끼'라는 표현을 배웠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왔던 대사라고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은 있었던 것 같은 표현이다. 

드라마 때문에 알려지고 많이들 써먹었던?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자기 입으로 "안 돼."를 확실하게 내뱉지는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여지를 주지는 않는,

상당히 젠틀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 및 심지어 존중의 태도를 보이지만

실은 그렇다고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도 아닌,

그런 그에게 마음을 주었던 상대는 피가 말라 죽어가게 만드는,

그런 캐릭터는 실제 사회생활 속에서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오늘 이 표현을 나누게 된 계기는 <이순신과 상사뱀> 이야기 때문이었다.




옛날 한 주막집 딸이, 개울에서 멱 감던 이순신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쳐다보아서는 안 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이 처자가 곧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주막집 주인은 이순신을 찾아갔다.

"그 참, 도련님. 제게 딸 하나 있는 게 도련님한테 마음을 두고 지금 상사병이 나서는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그럼 내가 가봐야 될 일이지만, 오늘은 제사가 있어서 손님들도 오고 하니, 제사 지내고 손님들 가시고 나면 갈 테니 그때까지 참아보라 하오."

하지만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큰비가 내려 개울이 불어나 건너갈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이순신이 주막집에 찾아갔더니 주인은 늦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순신이 그래도 딸을 한번 봐야겠다며 딸의 방 문을 열었더니,

방 안 한가득 구렁이가 들어찬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쳐드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아래위로 활씬 벗고 들어가서, 

 “이 못된 것아. 네가 그런 마음이 있었으면 진작 나한테 말을 할 것이지, 그렇게 속에 넣어 놓고 있으면 내가 알겠느냐. 오냐, 니 원한 풀리는 대로 감아라."

하고는 제몸을 내주었다.

구렁이는 이순신의 몸을 휘감기를 세 차례 하고는 탁 풀어졌다. 

이순신은 정성스럽게 장사를 치러 주었다.


나중에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구렁이가 도와주어서 승전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출처]: '이순신 장군과 상사뱀' 한국학통합플랫폼(https://kdp.aks.ac.kr/)




이야기 속에선 주인공 이름이 '이순신'이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배포 큰 위인을 떠올리다 보니, 대중이 익숙하게 잘 알고 있던 훌륭한 인물의 이름이 동원되는 현상일 뿐이다.

그런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이야기는 자신이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일에

옷까지 활활 벗고 방 안 가득 들어찬 구렁이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줄 수 있었던 이순신의 배포와,

그 덕에, 죽어 상사뱀이 될 정도로 맺혔던 한이 풀어질 수 있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걸 삐딱하게 보게 된 것이니...

이야기 공부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이순신도 '나이스한 개새끼'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 주막집에 금방 갈 수 없었다는 물리적, 실제적 한계도 분명 있었으나,

그런 일이 있었다면 자신이 가보아야 할 것이라고 한 태도는 무척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한편으론 이게 정말 적극적인 수용과 문제 해결을 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삐딱한 시선이다.

어쨌든 옷도 벗고 그 방에 들어가, 구렁이가 되어 버린 처녀의 못다 이룬 욕망을 이루게 해준 것은 배포 있는 행동 아닌가 하는 질문에, 그 정도는 일회성 이벤트처럼, '그래 내가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하는 정도의, 젠틀하지만 판단 감정의 책임은 상대임을 분명히 하는 태도이기도 것 아닌가.


네 감정을 처리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나는 너에게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

나는 너에게 감정을 갖고 있거나 너를 위해 나를 희생할 생각은 없지만, 네가 처리하지 못한 감정 때문에 괴로운 상황이고 그걸 해결하는 데 내가 필요하다면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하는 젠틀하고 나이스하지만 책임 지지는 않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자의 시혜적 태도.


이런 관점에도 수긍이 되는 걸 보니 나도 언젠가는, 의도했든 아니든 나이스한 개새끼의 태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내가 지금 열심히 관계 맺고 있는 어떤 대상이, 미처 그쪽으로 생각해 보진 못했었지만 나이스한 개새끼인지도 모르겠다는 서늘한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상대는 나를 말리게 하는 건데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말라죽기 전에 정신 차려야 것이나, 어쩐 일인지 나는 미숙하고 어리석은 영혼을 어떻게 품어줄 거나, 하는 생각을 제법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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