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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짱 Dec 27. 2015

[하루 한 편 구비구비 옛이야기]

힘자랑 하려다 혼난 이야기

어떤 선비가 밤중에 변소에 가서 허리끈 풀고 변을 보느라 앉아 있는데, 뭔가 누런 짐승이 한 마리 다가오더니 선비를 덮치려고 하였다. 선비는 왼쪽 손은 허리춤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짐승의 머리를 쥐고 힘껏 눌러 버렸다. 선비가 볼일을 다 본 뒤 죽어 자빠진 짐승을 들어보니 어지간한 송아지만 하였다. 선비는 죽은 짐승을 변소 문 앞에 떨어뜨려 놓고는 들어와 잤다. 다음날 아침에 선비는 아들을 불러서 변소 문 앞에 있는 게 뭔지 보고 오라고 하였다. 아들이 가보니 큰 호랑이였다. 선비는 아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힘이 세긴 센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힘이 더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나 싶어 힘겨루기를 해보자고 집을 나갔다. 선비가 길을 가다 주막에 들렀는데, 한 다리를 절고 한쪽 팔도 못 쓰는 남자가 나무토막 제법 굵은 것을 한 손으로 짝짝 쪼개면서 불을 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아궁이에 불을 다 때놓고는 빗자루를 들고 뒤뜰을 쓸러 가는 것을 보고 선비도 나무토막을 쪼개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 번을 당기고 때려 봐도 소용없었다. 선비는 그냥 방에 가만히 들어와서 술을 마시면서 함부로 힘자랑하러 다녔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뜰에서 돌아온 남자가 선비에게 힘겨루기를 한번 하러 가자고 하더니 선비가 거절하자 그런 힘 갖고 힘 겨룬다고 다니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다. 이 남자는 삼형제 중 셋째였는데, 맏형은 자기보다 힘이 백 배 이상 세었고, 둘째 형도 남자보다 몇 배는 힘이 좋았다. 남자가 여남은 살쯤 되었을 때 형제가 함께 도적질을 하러 나섰는데, 어느 날 산길에서 부인 제사를 준비하려고 소 판 돈을 짊어지고 가던 상주와 마주쳤다. 형제가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 상주는 부인 제사 때 동네사람들 술을 해 먹여야 한다면서 이 돈 오십 냥 기부하는 셈치고 좀 봐달라고 했지만 두 형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상주가 어깨를 슬슬 풀더니 순식간에 맏형의 발목을 잡고 던져 바위에 패대기쳐서 죽여 버렸다. 그러고는 둘째 형도 덥석 쥐어 저 멀리 바위에 던져 버렸다. 상주는 남자도 마저 죽이려고 덤비다가 아직 어린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앞으로 힘을 쓰지 못하게 하겠다면서 한쪽 어깨와 한쪽 다리뼈를 부서뜨려 버렸다. 이 사람이 그래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면서 자신보다 백 배 이상 힘이 셌던 맏형도 그 상주에게 그렇게 죽었으니 함부로 힘자랑 하지 말라고 하였다. 선비는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조용히 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7-14, 99-104면, 화원면 설화18, 힘 자랑 하려다 혼난 이야기, 김판암(남,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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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자랑 하다가 혼난 사람 이야기도 시리즈로 할 만큼 많이 있어요. 재미있지요. 호랑이도 한 손으로 때려잡고 자기가 엄청 막 힘이 센 줄 알고 자기보다 힘 센 놈 있나 싶어 세상에 나가 겨루어 보려고 하는 거요. 유럽 민담 중에 ‘용감한 꼬마 재봉사’는 잼 바른 빵 위에 파리들이 달려들자 허리띠를 휘둘렀는데, 한 방에 일곱 마리나 잡아버린 것을 보고는 자기가 엄청나게 큰 힘이 있는 줄 알고 세상으로 나가요. ‘한 방에 일곱’이라고 크게 써 붙이고는 여기저기 자랑해 가면서요. 그런데 꼬마 재봉사는 여러 괴물들과 싸워 이기면서 자기 믿음이 진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에, 위의 힘 센 선비는 더 힘 센 놈에게 형들이 당하고 자신도 불구가 된 어떤 사람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조용히 죽어지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지요. ‘힘’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이야기에는 좀 더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아기장수’만 해도 그렇지요.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엄청난 힘에 대해서는 기존 권위를 지키려는 자들이 가만 두지 않을 테지요. 그런데 파리 일곱 마리를 한 방에 때려잡은 것은 사실 엄청난 힘은 아니었어요. 세상의 권위가 두려워할 만한 힘이라고 하긴 어렵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한 장면 덕분에 자신에게 엄청난 힘이 있다고 믿자 그를 본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믿어줬어요. 한 방에 일곱 명을 죽인 사람인 줄 안 거죠. 덕분에 꼬마 재봉사는 공주와 결혼하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답니다. 자기 스스로 힘을 믿었을 때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엄청난 괴물들도 맞서 싸워 이길 만큼의 힘으로 발휘되었던 것이에요. 위의 힘 센 선비 입장에서 보면 더 힘 센 누군가에 의해 자기 힘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고 그 의구심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져 버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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