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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Feb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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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 (전고운 감독, 2017)

철 좀 들어라.


우리 사회에서 철 좀 들라는 말은 '그러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굶어 죽으면 어쩌냐.'는 우려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 19살이 되면 모든 성인이 집 한 채씩 받고 대학원까지 학비가 들지 않으며 병원비까지 전액 무료인 나라에 태어났다면 철이 있든 없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이곳에서는 쓸모가 없으면 버림받는다. 때문에 모든 개인은 자신의 필요를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렇게 재산과 물질을 소유해 나와 혈육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운 좋게도 부모가 만든 견고한 울타리를 타고난 이들은 노력 없이 안락함을 누리며 살아가는데 말이다.


반면 보호자의 재력 없이 몸뚱이만 가진 개인은 선택지가 없다. 가치 없는 생명이 되어 사회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노숙자가 되거나, 피나는 노력으로 남들보다 두세 배 더 일해 바닥부터 일어나 남들을 밟고 올라서 울타리를 세우는 것. 둘 중 하나다. 우리 사회에서 날 때부터 풍족하지 못한 이들은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철들고 노력해야 최소한의 평범한 일상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모두들 철이 들면서 좋은 대학, 직장, 넉넉한 월급, 넓은 집, 결혼 등 사회가 정해놓은 행복에 맞춰 자아를 버리며 물리적인 안락함을 위해 달려간다.



영화 <소공녀>는 꿋꿋하게 철들지 않음을 선택한 '자발적 홈리스' 미소의 이야기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품위와 존엄을 스스로 지키던 19세기 런던의 소공녀가 떠오르는 영화 제목이다. 정부 발표로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됐던 2014년 대한민국의 소공녀는 어떤 모습일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소는 전업 가정부로 일한다. 4시간에 4만 5천 원. 다른 이의 집을 빛나게 갈고닦으며 성실하게 살지만 그녀의 잔고는 매일 6천 원씩 모자란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며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살아도 집세, 식비, 약값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미소는 매일 지출 일지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재미있는 것은 돈이 쌓이는 저금통이나 통장으로 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돈을 주기 위한 현금등록기에 돈을 보관하는 점이다.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미소의 돈은 모일 새 없이 나가기만 한다. 한 달치 집세를 매일 만 원씩 모으고, 공과금과 약값 식비 등 고정비용들이 계속 나간다.


그녀의 가계부에서 주목할 점은 매일 담배 한 갑과 위스키 한 잔 값이 꼭 들어있다는 것이다.  미소의 담배와 위스키는 보통 사람들의 취향 정도로 설명할 수 없다. 그녀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과 생존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의 의미다. 담배와 위스키 둘 중 하나만 고를 수도 없다. 집이 없더라도 담배, 위스키 이 둘은 꼭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그녀의 삶은 무너지는 것이다.



육체의 편안함과 겉모습의 화려함 대신 영혼의 온전함을 선택한 미소는 철들기를 거부한 채 완전한 자유인으로 산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포기를 학습한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미래를 위해 포기하고 참는 법 말이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고 부모님의 부모님도 그랬으니까. 때로 철이 든다는 것은 취향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를 위해 집을 버린다. 자식을 위해 위스키와 담배뿐만 아니라 자존심과 체면까지 희생한 부모님이 없는 고아인 미소에게는 쉬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딱 몸을 누일 관만큼의 공간과 씻을 곳만 있으면 행복한 미소는 숨만 쉬어도 행복한 식물 같은 존재다.


불을 붙이고 10분 만에 사라지는 담배 연기와 따뜻하고 정갈한 바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는 시간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바뀌라고 말하지 않는 남자 친구. 이 세 가지만이 그녀가 가장 기본적인 안전인 집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삶의 이유다. 우리는 철들기 위해 더 좋은 집에 살기 위해 담배와 위스키를 버리지 않는가.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가지 중 유일한 생물, 물질이 아닌 사람이 남자 친구다. 알다시피 생물은 내 마음대로 통제가 안 되는 것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연인을 소유하고 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만약 한솔이 그녀에게 담배와 위스키를 버리라고 했으면 그들의 관계는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솔 역시 공장 기숙사에서 사는 연약한 노동자라 미소를 보호할 수 없지만 둘은 서로를 통제하려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사랑해서다.



미소는 집을 버리고 낑낑거리며 제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도 도시를 떠나거나 세상을 등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담배와 위스키는 그녀의 수명과 동일한 것이며 아직은 현실과 도시에 공생하고 싶은 마음을 상징한다. 그녀는 영화표를 살 돈이 없어 피를 팔면서도 담배와 위스키에 매일 돈을 쓴다. 현실은 노숙자와 다를 바 없지만 그녀의 정신만은 고고한 귀족과 같았다. 그녀에게 담배와 위스키는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삶의 철학이자 생명을 지탱하는 의미다. 한 모금 입안에 머물렀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만이 그녀를 숨 쉬게 하는 추억이고 현재다. 라이터불을 탁 하고 켜서 불을 붙이면 천 원이 아쉬워 바들거리는 그녀의 일상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일차원적인 행복에 만족하며 철들지 않은 그녀. 그런데 확고한 의지로 선택해 매일 육천 원이 마이너스인 삶을 사는 미소는 어쩐지 행복해 보이지가 않는다. 평소 미소의 표정에 그늘이 있고 해맑지 않아서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행복한데 표정을 꾸미지 않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럴 거다. 그녀에겐 거짓 웃음도 한 톨의 꾸밈도 없다. 남들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았고, 열심히 일하고 아껴도 매일 돈이 모자라 쌀도 없이 편히 몸을 누일 공간 하나 없는 일상을 그대로 얼굴에 새기고 다니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우울한 미소의 얼굴은 그녀의 행복과 똑 닮아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위험해 보이고 마음 아플게 안쓰럽고 춥고 불편한 그녀의 일상에 그녀는 만족한다. TV와 CF 속의 빛나는 미소가 나올 만큼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최상의 만족이 아닌 지저분하고 답답한 삶이 그녀의 행복인 것이다.



그녀는 행복을 남에게서 찾지 않았다. 반면 미소가 찾아간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기대 행복을 찾고 있었다. 부모님의 돈으로 샀을 으리으리한 집에서 글을 쓰고 대학원 논문을 쓰는 여자, 더 큰 회사로 가기 위해 밥과 잠을 거르고 링거액을 꽂는 동기, 이혼한 부인을 찾으며 아파트 대출금 100만 원을 20년간 내야 하는 동기, 자식의 결혼만을 바라는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동기 그리고 부잣집 남편의 얼굴 표정 하나에 흠칫 놀라면서 사는 언니까지. 모두들 행복을 남에게서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것에서 찾고 있었다. 궂은일은 타인에게 시킬 수 있는 재력을 갖춘 사람들의 집을 미소가 3년간 닦으며 관찰한 결과 겉보기에 안락한 삶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20대 때는 자신과 처지가 다를 바 없던 동기들에게 희망을 안고 행복의 단서를 찾으러 갔을게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를 이용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동기들을 믿었다. 그녀에게는 가족 같았고 전부였던 밴드부 사람들. 그녀가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라서다. 하지만 세상은 미소 같지 않았다. 대학생 때도 학비가 없는 그녀였으나 다단계 사기당한 언니에게 돈을 빌려주고 아무의 도움 없이 홀로 마련한 집에 몇 달이고 친구들을 재워줬다. 아주 어릴 때 추억이 깃든 탬버린과 워크맨은 다 버려도 대학교 밴드부 친구들의 사진만은 버리지 않고 캐리어에 끙끙거리며 들고 다니던 그녀. 정작 자신은 학비가 비싸 대학을 그만두면서까지 어려울 때 도왔던 친구들이고, 그런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 없이 그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미소다. 그녀가 그랬듯이 친구들도 그녀의 몸을 누일 작은 공간과 화장실은 부담 없이 줄 줄 알았다. 없는 살림에도 친구를 위해 건강하고 값싸게 허기를 채워주는 계란을 그것도 한 판이나 들고 가서 집을 치워주고 밥도 지어주는 그녀. 하지만 이제는 자유로운 그녀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상황이다. 돈 없이 마음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대학교 때만이 미소와 그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거다.



아무리 과거에 진심과 행복을 주고받은 사이라도 시간이 흐르고 필요가 없어지면 남이 되는 사이들이었던걸 미소는 몰랐다. 그녀가 찾아간 친구들은 살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 그들도 미소도 여전히 지고 갈 삶의 무게가 무겁다. 다만 더 큰 안락함만을 쫓아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친구들과 미소는 다르다. 미소에게 상처를 내는 보통의 타인들을 탓할 수 없다. 모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각자가 포기한 것도 다르니까. 그리고 사실 등장하는 모든 미소의 동기들은 집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않을까. 시댁에 얹혀살며 음식을 못한다는 이유로 타박받는 동기, 부잣집 도련님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언니, 부모님의 기대에 자신의 인생을 맞춰 살아가는 보컬 오빠, 매달 백 만원씩 20년을 내며 살아가야 하는 막내 드럼, 매일 밤 몸을 팔아 오피스텔에 사는 여자까지 모두는 사실 노숙자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을 희생해서 물질을 갖는 사람과, 아무런 희생 없이 무소유의 삶을 사는 이의 삶을 <소공녀>는 극적으로 대조시켜 보여준다.


고아라서 태생부터 혼자인 미소는 주변 사람들을 가족처럼 챙겼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남들에겐 '웃는 것이 예쁘지만 내 인생에 들이기는 싫은 철들지 않은 존재'일 뿐이다. 미소와는 달리 동기들 모두는 본인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이 있어서 남들 하는 만큼 소유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로 길러졌는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살림살이로, 조금이라도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버린 친구들은 미소의 순수에 마구 돌을 던진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을 포기한다면 얻을 수 있는 안락함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미소는 존재만으로 보통사람들에겐 불편을 준다. 더 많이 소유해야 행복한 도시에서 미소 같은 이들의 존재는 이렇게 견고한 사회 시스템에 의해 점점 변두리로 밀려난다.


타인들의 시선에 상처 받고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그녀의 유일한 동행인은 남자 친구 한솔이다. 공장에서 살며 미소에게 맛있는 음식과 '남들 다 하는, 남들 만큼'의 행복을 꼭 선물해주고 싶어 하는 남자 친구다. 어쩌면 미소는 한강 둥지 작은 텐트 안에서 그와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할 텐데. 세상의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미소지만 사우디아라비아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뱉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남자 친구에게 미소가 "결혼?"이라며 소망을 비춘다. 그녀에게 담배 피우고 위스키 마실 돈으로 집을 사라는 말을 남들처럼 뱉어버리지 않고, 공장에서 먹고 자며 저 먼 사막으로 떠나는 남자 친구의 사랑이 조금씩 그녀의 마음을 녹이고 있어서 미소도 결혼을 생각했을 거다.


남자 친구는 미약한 미소의 대책 없는 순수함을 현실에서 지키는 방법은 결국 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보증금 500만 원이 있었다면 미소가 그저 보고 싶어서 친구들을 찾아갔을 때 상처입지 않았을 것이다. 미소의 단 한 가지 행복인 위스키 한 잔도 역설적이지만 결국은 돈이 있어야 마신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보이는 그녀지만 무인도가 아닌 도시에 붙어살고, 자연이 아닌 담배와 위스키가 필요한 그녀가 죽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남자 친구는 생명을 담보로 미소와 미래의 희망을 위해 돈을 벌러 떠난다. 아이 같은 그녀를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 사막으로 향한다. 웹툰 작가라는 자신의 꿈과 미소와의 일상을 희생하고 그는 그렇게 철이 들어버렸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철들지 않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녀의 남자 친구 한솔. 큰 불편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쫓기 위해 감수하는 그녀의 곁에 함께 서있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일일 텐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느끼는 대로 외쳐대는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 딱 감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방을 쓰면 몸을 누일 집과 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너 갈 데 없다며. 그냥 나랑 결혼해서 우리 부모님 행복하게 해 드리자."는 동기 오빠에게 그녀는 외친다.

"내가 집이 없다고 해서 취향도 주관도 없는 건 아니야!"

세상 무엇에도 굽히지 않고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미소는 맑은 영혼과 매력을 가진 한솔을 담배와 위스키만큼이나 사랑한다.


그녀는 패딩을 입어도 추운 방에서 남자 친구와 손만 잡아도 행복하다. 하지만 미소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남자 친구를 이해하며 놓아준다. 미소는 가장 소중한 사람조차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 친구 한솔은 미소와의 미래를 위해 5천만 원을 벌러 중동으로 떠나고. 백발이 된 미소가 여전히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향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너무나도 길어서 글보다는 직접 영화를 보길 권한다. 영화가 끝난 그 후 미소와 한솔을 상상하게 만드는 자이언티의 <눈> 뮤직비디오에서 아마도 미소는 작은 새 한 마리처럼 세상을 떠난 것 같다. 남자 친구는 미소와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려 목숨과 맞바꾼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들을 모두 내고 가장 높고 좋은 방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미소의 옷을 건 옷걸이와 마음 아픈 춤을 춘다. 내리는 눈을 보며 서로의 체온을 나눌 때는 어떤 것도 필요 없었는데. 함께하는 시간만 있었으면 된다. 아마도 미소가 세상을 먼저 떠나지 않았다면 남자 친구가 모은 돈으로 둘이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내일을 알 수 없기에 매일을 그리고 현재만을 살았던 미소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연인 없이 홀로 죽음을 맞는 순간에 미소는 처음으로 아주 슬프게 울었을 것 같다. 그런 안타까움을 눈빛과 온몸에 담아서 한솔은 가장 높고 화려한 방에서 추억 속의 그녀와 위스키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춤췄다. 미소의 감은 눈 위에 눈이 내려도 그 둘의 못다 한 이야기는 끝내 할 수가 없다.



미소의 삶은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쌀이 줄줄 흐르는 구멍 난 쌀 비닐봉지 같았다. 매일 한 줌을 채워도 내가 먹을 것 없이 길바닥으로 흘러 비둘기들 배만 불리며 걷는 그녀. 매일 성실히 노동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오롯이 누릴 줄 아는 미소의 삶은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결말이 없는 영화였으니 슬픈 결말은 뮤직비디오일 뿐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나마 미소가 여름이 아니어도 따뜻한 집에서 한솔이와 서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을 채우며 편안함을 느꼈으면 했다.


모든 제도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미소지만 남자 친구와 함께라면 결혼이라는 관습에 메이고 싶어 했다. 그녀도 남들 다 하는 듯' 최소한의 안전과 위생을 확보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앞뒤 안 가리고 시도 때도 없이 현실에서의 도피를 택해온 나라서 영화 속 미소의 모습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말이다. 사실 미소는 영화 속에서 가장 일찍 그리고 많이 철이 든 사람이었다. 남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뿐이었지. 그렇다고 그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다. 정작 본인은 머리가 하얗게 새도록 일을 하고 남들을 도왔으니 말이다. 미소가 영원히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철들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미소를 위해 꿈을 버리고 돈을 모으는 남자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며 겨울에는 반팔을 입을 정도로 난방을 켤 수 있고, 여름에는 카디건을 꺼내 입을 만큼 시원한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안락함에 길들여져 '미소도 이런 집이 편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순을 봤다.


곧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살기에 도시는 너무나 척박하다. 구석구석 집을 아름답게 갈고닦는 그녀의 노동은 왜 그녀를 점점 더 가난하게만 만들까. 아주 작은 서식지(Microhabitat)에 사는 작은 꽃 같은 미소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려는 한솔이도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꿈과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목숨과 맞바꾼 돈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아픔들에서도 그들을 지켜주길.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Little Princess'가 아닌 'Microhabitat'이다. 아주 작은 서식지에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기 팍팍한 오늘의 한국을 미소의 따뜻함에 먹먹하고 담백하게 담아낸 영화였다.


 





영화 <소공녀>와 함께 보고 들어 보세요.

Zion T. <눈> https://youtu.be/fiGSDywrX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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