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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Dec 31. 2019

누군가 뱉어낸 마지막 숨을 들이마신 날

심약자, 임신부 클릭 금지

대형 병원 수납처에서 번호표를 뽑고 대기 중이었다. 병원 1층은 환자와 보호자, 방문객, 의료진, 안내인 등 수백 명이 뒤섞여 분주했다. 병문안만 할 때와는 다르게 환자가 되니 초진, 접수, 수납, 의무 기록물 복사 등 검색하지 않아도 뜻을 알던 단어들이 내가 해야 할 일 목록으로 바뀌었다. 각 창구마다 세밀하게 분업하고 있어 여러 곳을 돌며 행정 업무를 처리했다. 병원 로비를 중심으로 여러 군데 흩어진 담당처를 찾으려 안내데스크에 질문하며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다.


어느 창구를 가나 대기 인원이 열 명을 거뜬히 넘었다. 내 번호가 지나가면 번호표를 다시 뽑아야 해서 대기 중에 다른 창구에서 일을 보고 올 수도 없었다. 남녀노소 인파에 수액팩이 주렁주렁 매달린 걸이와 휠체어, 보행 보조기까지 정신없이 오가던 병원 로비는 연말 명동처럼 서로의 어깨가 맞닿은 채 걸어야 하는 구간이 여럿이었다. 인파를 헤집고 내가 가야 할 창구들을 찾다 한숨이 나와 잠시 멈춰 천천히 고개를 들며 천장을 봤다. 병원 로비 구조가 독특했다. 4층까지 높게 천장이 뚫려 있었고, 각 층은 가운데를 비운 사각형 형태로 죄수들을 수감하는 감옥처럼 각기 다른과의 진료실 입구가 사각형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판옵티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판옵티콘 감옥 사진과 비슷했던 병원 구조. 병원 로비는 둥근 부분 없이 정사각형 형태로 4층까지 뚫려 있었다.


3개의 창구에서 대기하고 옮겨 다니며 서류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 수납처 대기석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궁!

살면서 느낀 적 없던 소리와 파동이었다. 소리는 폭발음처럼 컸으나 묵직했다. '꿍'에 가깝게 무겁고 충격이 온전히 흡수된 소리. 뭔가 이상한데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나 생각 하던 찰나였다.


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큰 소리가 난 후 3초 정도 섬찟한 정적이 흐르고 동물울음소리처럼 날것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공포영화를 봤을 때 나는 날카로운 소음과는 다른 종류였다.


병원 안전요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크림색 정장 유니폼 재킷이 벗겨질 만큼 빠르게 뛰며 지나갔다. 한 간호사는 여기가 병원인 사실을 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지 로비에서 수납처 부근을 뛰어다니며 빨리 119에 신고를 하라며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들기 시작했다.


분명 무슨 일이 난 거고 소리만 들어도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수납처 대기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다. 벌떡 일어나 인파가 몰린 사고 현장으로 가는 사람과, 보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상황은 안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판단해 계속 앉아있기로 결정한 사람으로. 호기심에 이끌려 발걸음을 사고 현장으로 옮기는 환자들과는 다르게 수납처 직원들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바로 "231번 고객님"을 부르며 무표정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들도 놀랐을 텐데.


코드 블루, 코드 블루 긴급상황 발생


이라는 안내 방송이 꿍 소리가 나고 1분이 채 안돼 온 병원에 울려 퍼졌다. 수술복을 입고 들것과 의료장비를 들고 전속력으로 뛰는 의사들, 수술 침대 위에 각종 장비를 싣고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간호사들을 따라 나도 홀린 듯 일어나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접근을 막는 출입금지 선이나 인간 바리케이드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사고 현장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자발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의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갑자기 모여든 구경 인파는 그 자리에서 청각을 곤두세우고 공간을 떠도는 말에 귀를 기울여 앞사람이 하는 질문과 옆사람의 대답에 집중했다.


아니 글쎄 위에서 여자가 뛰어내렸데, 저 여자 아까 암환자 병동에서 봤는데?, 어머 암환자가 갑자기 뛰어내린 거야?, 살았어요?, 4층에서 뛰어내렸는데 1층에 지나가던 아저씨랑 부딪혔데...


등산복을 입은 50대 아저씨 한 명이 미동도 없이 바닥에 붙어 간간히 경련하는 중년 여성의 스무 발자국 옆에 쓰러져있었다. 떨어진 여자는 소리도 안 내며 배터리가 다 된 장난감처럼 손과 발이 부자연스럽게 꿈틀대고 있었다. 굳이 두 사람의 생존 여부가 궁금해진 나는 인파들 사이로 목을 쭉 빼고 보았다. 의료진에 둘러싸인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4층에서 떨어졌다는 여자의 겉모습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고야... 코가 다 나갔네"라는 주변의 탄식에 그녀의 코를 집중해 보니 해골 모형처럼 코뼈가 사라지고 두 개의 구멍만이 보였다. 코와 입 부분으로 피가 작은 폭포마냥 줄줄 흐르며 옷과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가 떨어졌다던 4층을 봤다. 1층, 2층... 눈으로 층수를 세면서. 사람들도 손가락으로 한층씩 세며 몇 분 전 그녀가 서있었을 그 자리로 시선을 올렸다. 모든 층엔 똑같은 유리난간이 성인 가슴높이로 빙 둘러져 있었다. 그러니 분명 이건 실수나 사고가 아니라 난간 위로 철봉에 두 다리를 번쩍 걸어 매달리듯 힘들게 올라가 굳이 떨어진 거였다. "떨어진 사람은 그렇다 쳐도 지나가던 아저씨는 무슨 죄여" 라며 사람들은 계속 웅성댔다. 방금 4층 진료실에서 떨어지기 전 여자를 봤다는 사람들은 다소 큰 목소리로 불특정 다수에게 경험을 말했고,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 그리고 환자들이 전층의 유리 난간 앞으로 모여들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나도 서류를 들고 총총거리며 바쁘게 지나다녔던 그 자리로 여자가 뛰어내린 거다.


병원 안에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는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이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의료진의 소생술을 받기 시작했다. 쿵 소리가 나고 5분이 채 안돼 떨어진 여자와 날벼락을 맞은 남자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사람들은 거꾸로 떨어지던 여자의 코와 지나가던 남자의 머리가 부딪혔을 거라고 추측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형체를 잃은 그녀의 코에도, 의식을 잃은 남자의 코로도 숨이 들어가고 나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사고 현장엔 핏자국과 출입통제선만이 남았다. 찰나의 소름 돋는 마찰음과 비명 한마디 뱉지 못했던 당사자들의 고통이 공간에 남긴 여운은 길었다. 아직도 묵직한 쿵 소리가 눈만 감아도 귀에 울리니 말이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놀란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진정시키고, 각자가 보고 들은 사고 관련 정보들을 종합하는 사람들 곁에서 잠시 멍하게 있다 시간을 봤다. 저녁에 예정된 시사회 전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참이나 지나버린 수납처의 번호표를 버리고 멍하니 다시 새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암환자인 그녀가 삶을 포기한 순간 일어난 이상한 일. 그 날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크고 작게 각자의 삶에 잔상과 후유증이 남았을 거다.


밥을 먹으면서도 엄마와 내내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도 사고의 여파가 남아 저녁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엠 브리딩> 시사회장으로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근육이 마비돼 자력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이 기계의 힘으로 끝까지 호흡을 붙잡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였다. 숨을 끊겠다고 결심해 뛰어내린 사람의 코가 부서져도 이어지는 목숨을 눈 앞에서 보고 나서, 뇌의 명령이 근육으로 가지 않아 다리부터 시작해 폐까지 마비됐는데도 숨을 쉬고 싶어 했던 사람을 스크린으로 마주했다. 4층에서 뛰어내렸지만 여전히 들숨 날숨을 쉬고 있던 여인의 공허한 눈빛이 계속해서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루게릭병 환자 닐 플랫의 얼굴과 겹쳤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는 진부한 말도, 생을 마감하고 싶은 누군가의 극한 고통 앞에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양 극단의 두 상황 사이 어디쯤에 놓인 나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새삼스러워졌을 뿐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참 이상한 하루 속에 모두가 놓여있으나, 우리는 잘 때도 자동으로 숨을 쉬며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 따위는 철학자의 몫으로 미뤄놓고 산다.


산소통을 맨 잠수부가 심해를 유영하는 장면에서 들었던,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가 마스크에 의존해 숨 쉬는 장면에서 나왔던 숨소리. 듣는 것만으로 콧구멍이 답답해지는 그 소리가 다큐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나온다. 영화 제목 그대로 '나는 숨 쉬고 있다.(아이엠 브리딩)'는 것을 관객이 눈과 귀로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거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라면 편집됐을 법한 초점이 나간 화면도, 닐이 "망할 고물 마이크!"라는 말을 반복하며 음성 인식 기계로 글을 쓰려 컴퓨터와 사투하는 몇 분도 여러 번 보여준다. 엄청난 불행을 하루아침에 마주한 환자를 소재로 한 억지 감동과 눈물도 없다. 다큐 주인공 닐 특유의 유쾌한 장난에 오히려 피식하고 웃음이 날 정도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닐의 아버지도 루게릭병을 앓았으며 이 병의 유전 확률은 50%라는 거였다. 동전 던지기도 아니고 반반의 확률로 2세에게 같은 병이 유전될 확률이 있는데 자녀를 낳는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고민해봤다. 그런데 이 병 참 잔인하더라. 닐의 아버지는 50세 때 루게릭 병이 발병했다. 때문에 아이를 계획하고 낳을 당시에는 본인이 루게릭 병인 줄 몰랐던 거다. 닐 역시 서른에 발병했으나 자녀를 낳을 때는 본인이 루게릭병에 걸릴 줄 몰랐던 거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 투병 중에 여러 명의 자녀를 계획하고 낳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뇌가 내리는 명령이 근육에 전달되지 않아 근육이 퇴화해 처음에는 걷지 못하고, 그다음은 손을 쓰지 못하고 결국에는 혀와 호흡기관까지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병. 눈꺼풀 외 모든 기관이 하나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데 가려움과 통증 등 감각은 살아있는 이 병.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들은 살아있는 감옥이자 산 지옥이라고 이 병을 표현한다. 이 끔찍한 병이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인데 두렵지 않았을까.


다큐를 보며 남의 일을 쉽게 재단하는 내 가벼운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루게릭병을 물려받은 닐은 예상외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에 걸린 후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본인이 같은 병을 앓기 전에는 루게릭 병을 앓는 아버지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본인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마저 든다고 말한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듯 닐은 담담하게 병을 직접 앓아보며 일어난 변화들을 말하고, 블로그에 기록한다. 또한 닐이 사는 나라에서는 병마와의 싸움이 온전히 개인의 몫이 아니고 투병생활 중에도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있었다.

영국인 닐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 병원에만 있지 않아도 된다. 24시간 활동 보조인이 교대로 닐의 집에 상주하고, 얼굴 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아내가 옮길 수 있게 돕는 거대한 그네를 닮은 요람형 보조기구들이 집에 있다. 그렇게 닐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 일상을 산다. 과거에 그랬듯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함께 맥주와 간식을 먹으며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낄낄거린다. 돌이 갓 지난 아들 오스카가 이유식을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아기처럼 이유식을 본인 입으로 넣어달라며 아내에게 장난을 친다. 온 얼굴과 두 코를 막고 있는 호흡기를 위생을 위해 주기적으로 교체할 때면 기계에서 호흡이 멈췄을 때 나는 '띠-'하는 경고음을 들어야 한다. 닐은 일상적으로 죽음의 소리를 들을 때도 가벼운 농담과 장난을 잊지 않는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 오스카가 물건이 손에 잡히는 대로 장난치고 물어뜯는다. 오스카는 닐의 침대 밑에 연결된 수많은 전선들을 뽑으려고 하거나 닐의 얼굴을 덮은 호흡기를 고사리 손을 뻗어 뜯으려 한다. 그럴 때면 닐은 얼마 전으로 되돌아가 수많은 호스와 전선들을 손으로 뜯고 일어나 두 팔로 아이를 안고 정원을 상상하는 상상을 수천번도 더 했을 거다. 아버지가 상상도 못할 고통과 큰 병을 앓고 있는 집에서 태어난 오스카의 얼굴에 그늘이 생기지 않도록. 닐은 차곡차곡 죽음을 준비하며 아들과 아내의 미래를 함께 설계한다.


온몸이 마비돼 볼품없이 말라가고 두 콧구멍에 공기를 가져오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해 많은 사람에게 전시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닐은 같은 병을 앓았던 아버지를 외면한 미안함과 같은 병을 앓을 누군가가 당신보다는 덜 고통스럽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카메라 앞에 섰다. 닐이 더 이상 기계의 힘으로도 호흡을 유지할 수 없어 기계들이 시끄럽게 경고음을 뱉어낼 때. 당황한 아내와 활동보조인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다 카메라를 친다. 떨어진 카메라 렌즈가 천장만을 비추고 있을 때, 숨이 넘어가고 혀가 굳어 말도 잘 못하는 상태에서 닐은 "카메...라..."라는 단어를 뱉으며 카메라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춰주길 부탁한다.


자신의 가장 힘겹고 치욕적인 순간도 숨기지 않았던 닐이 바란 것은 단 한 가지다. 인류가 루게릭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가까운 미래에 이 병을 치료할 길이 열리는 것. 닐은 자신이 말을 잃고, 자력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할 때는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며 유서를 비롯한 모든 행정절차까지 마쳐놓았다. 혀가 굳기 시작해 닐의 말과 명령어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 기계와 씨름하며 그는 블로그에 100여 개의 글을 남겼다. 그의 유쾌하고 실력 있는 글만큼이나 영화 <아이엠 브리딩>에 담긴 그의 일상은 극장에 가서 돈 내고 굳이 찾아 볼 만하다. 닐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들 그리고 친구들과 활동 보조인들이 병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을 보는 관객이 많아져 그의 진심이 변화를 만들길 바란다.


닐 플랫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글과 영상은 여전히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아이엠 브리딩>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숫자에 또 한 번 놀랐다. 한국루게릭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매년 500명이 루게릭병을 진단받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루게릭병 환자들은 5~10년 일찍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 국내에는 약 2500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있다고 한다. 스티븐 호킹, 박승일 선수 등의 잘 알려진 환자와 sns에서 활발히 일어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운동' 등을 보면서 '루게릭 병'이라는 병명은 꽤나 익숙했다. 희귀 질병이라 국내에 약 50여 명 정도만이 이 병을 앓겠지라고 근거 없는 추측을 할 뿐이었다.

명확한 숫자를 마주하고서야 왜 닐 플랫이 '힘들고 치욕적인'이라고 표현한 투병의 순간을 기록했는지, 박승일 선수가 마비되는 몸을 안고 계속 삶을 이어가며 주변에 이 병을 알리려 노력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숨 한번 들이쉬고 내 쉬는 순간도 고통인 이들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병을 알리려 고행을 한다. 루게릭 병의 치료법을 개발하고 병을 앓는 이들이 남은 일상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병을 알리고 기금을 모아 미래의 환자가 겪을 고통을 줄여주려는 거였다.


일면식 없는 타지와 미래의 환자들을 위해 닐은 아들에게 하듯 조건없는 사랑을 불어넣고 떠났다. 온 지구인은 서로의 호흡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는 걸 아는가. 보통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쉬어지는 숨 조차 의지대로 못했던 루게릭병 환자 닐 플랫이 쉬었던 숨이 지금 우리 코로 들어와 폐를 지나갔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천번 마시고 내뱉는 호흡을 지구의 모두와 공유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드뢰서는 저서 <수학 시트콤>을 통해 우리가 매 번 들이마시는 날숨 1리터 속에 1832년 3월 22일 사망한 독일 작가 괴테가 내쉰 마지막 날숨 분자가 섞여있음을 수학 공식으로 증명했다. 지구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의 모두와 숨을 나누는 건 진리였다. 전 세계인이 나눠 쓰는 숨결 속에 닐 플랫, 박승일 등이 사랑의 선순환을 만들었다.


엄마 뱃속에서 올챙이 모양이었을 적 생긴 콩알만 한 심장이 어떤 동력도 없이 뛰고 있듯, 자동으로 코를 드나들고 있는 공기를 깊게 느껴본다. 병원 로비 한복판에 떨어진 삶의 깨진 콧구멍으로 여전히 들어가던 숨을 방관했던 순간도 다시금 떠올렸다. 더 이상 숨을 쉬기 싫었던 그녀가 공허하게 내뱉은 호흡도, 닐 플랫이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가쁘게 들이마시던 숨도 모두 내 폐 속을 거쳐갔으리라. 어쩌면 지금 숨을 쉬는 것 역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닐 플랫은 말했다. "제발, 제발, 제발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 주길 바란다."라고. 닐의 간절한 말과 영화 <아이엠 브리딩>은 듣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오늘도 분주히 각자만의 삶의 몫을 다 해내고 있는 이들에게 닐이 내미는 손을 잡아보자.


유쾌한 닐의 글과 영상 덕에,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내가 내쉰 숨을 들이마시는 중인 사람들에게 한 끼 밥을 산다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기부할 수 있게 됐다.




* 닐 플랫과 아내 루이즈가 블로그에 쓴 글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www.iambreathing.kr


* <승일희망재단>의 목적은 단 하나. 루게릭병 요양원을 건립하는 거다.

http://www.sihope.or.kr/?ckattempt=1


#아이엠브리딩데이, #아이엠브리딩, #iambreathing


매거진의 이전글 '온실 속의 화초'는 부러움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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