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굴곡진 선처럼

- 그래! 해보자

by 해피마망

오늘은 해골과 마주했다.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사진을 받아 들자,

나는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태산이 쿵! 하고 떨어진 것처럼 무거움이 몰려왔다.

내 앞에 놓인 것은 구멍이 뻥뻥 뚫린 해골 사진이었다.




'이걸 지금 나더러 그리라고?'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는 겨우 선 긋기 연습을 하던 사람이 아닌가?

마음속에서는 질문이 터져 나왔지만 그렇다고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나를 본 선생님은, 흐릿한 선으로 전체적인 형태를 먼저 잡아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상하좌우의 비율을 맞추고 해골의 밑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사진을 응시했다.

손은 마치 마비라도 온 듯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태산 같은 답답함을 안고 한참을 노려보던 나는 볼펜을 집어 들었다.


'그래, 해보자'

나는 속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이런 드로잉은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아그립바 같은 데생을 해본 게 다잖아.'

'특별히 미술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못 그리는 건 당연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그리는 것뿐이야.'

나는 '푸우~' 하고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답답했던 마음이 한숨과 함께 조금은 날아갔는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대범하고 정직하게, 그렇게 그려보기로 했다.


상하좌우의 비율을 가늠하며 머리통의 윤곽을 잡았다.

해골의 형태는 보기보다 복잡했다.

세 개의 큰 구멍과 하나의 작은 구멍, 그리고 눈 자리 두 개와 콧구멍 두 개, 입을 벌린 구강까지.

구멍이란 구멍이 모두 드러난 형상이었다.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는 것처럼 그림은 생각대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맞춘다고 맞췄지만 비율은 어긋났다.

얼굴의 상반부에 비해 하반부가 훨씬 커졌고, 콧구멍도 눈구멍만큼이나 크게 그려졌다.

결국 해골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림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다시 무겁기만 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열중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점점 주눅이 들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굴곡진 선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굴곡이 지며 우울했다.

원하는 만큼 그려지지 않는 그림 앞에서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이번 것은 망했다 치고 다시 그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선을 이어갔다.

볼펜 드로잉의 최대 난점은 지울 수 없다는 거다. 아무리 잘못 그렸다 해도 지울 수 없는 그림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면에 끌려서 볼펜드로잉을 택하지 않았던가.

중간에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잘한 일일 것이다.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오! 잘하셨네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그림을 그리던 분들이 모두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처음인데 잘했네."

"형태가 살아있네."

모두들 한 마디씩 했지만 어쩐지 그런 말을 듣는 거 조차 부끄럽기만 했다.


해골 밑그림



돌아오는 길에도 기분은 여전히 무거웠다.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화가 났다.

마음 한구석에, '내가 잘 그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믿기로 했다.

그리기를 지속하는 한 , 이 굴곡진 마음과 서툰 선들이 조금씩 내 실력을 끌어올려 줄 거라고.

그래서 다음 수요일에도 나는 다시 볼펜을 들것이다.

그날은 오늘보다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 더 자신 있는 손길로 선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서툴러도 괜찮아요, 인생도 드로잉도"



볼펜 하나, 종이 한 장.

흔들리는 선에서 나는 내 삶을 봅니다.

힘을 빼지 못해 서툴지만,

그 서툼 속에 배움과 기쁨이 자랍니다.


'수요일은 선을 긋는다.'는 매주 토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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