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문 같은 힘뻬기
정사각 도형을 직사각 도형으로 형태를 바꿔 그린 후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도형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이 정도쯤이야...' 했던 나에게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각을 잡고 올바른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볼펜드로잉 초보자 교본을 사이트에서 찾아내서는 서른 장가량 프린트를 했다.
교본의 선을 따라 직선도 그리고 사선도 그리고, 곡선도 그렸다.
몇 장이고 반복해서 선을 그렸다.
'힘을 빼야 해, 힘을...'
밑그림을 그리듯 선에서 힘을 빼야 하는데 도대체 힘 빼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힘을 빼려 하면 할수록 손은 더 떨렸고, 손의 힘과 떨림으로 인해 선은 마치 뱀이라도 지나간 듯 굽어져서 진한 흔적을 남기곤 했다.
그래도 계속 그렸다.
정사각도형도 다시 그려봤다.
커피를 마시던 머그컵도 그렸다.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으며.
SNS에 그 과정을 올리자, 선생님이 바로 답을 남기셨다.
"혼자서 그리지 마세요."
"여기 와서 그리셔도 충분합니다."
그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곧장 펜을 내려놓았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수요일, 화실에서 또 선긋기를 배웠다.
이번 과제는 색상표 만들기였다.
맨 위의 거의 흰색에서 맨 아래 거의 검은색까지, 볼펜의 선하나만으로 열 단계의 그라데이션 색상표를 만드는 작업이다.
쉬울 거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힘을 빼는 것'이다.
선긋기를 하면서 새삼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힘주어 살아왔던가.
젊어서는 없는 살림을 일구기 위해 하루하루 힘을 쏟았고, 사십 대 이후로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진실한 마음과 건강한 육체뿐이었다.
그런 만큼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하며 애쓰고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몸엔 구석구석 힘이 배어있었다.
어깨는 늘 뻣뻣하게 굳어있고, 손끝 하나에도 딱딱한 굳은살이 배겼다.
그렇게 몸에 밴 힘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을 통제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을 때, 남편이 어깨를 풀어준다며 두 팔을 귀 뒤로 올려붙이라고 할 때,
'힘 빼라'라는 말은 나에겐 마치 고문 같았다.
힘써왔던 나의 삶에서 이제는 힘을 빼야 하는 시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힘은 여전히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묵묵히 색상표를 그려 나갔다.
모든 단계가 자연스럽게 전 단계를 품으며 좀 더 진한 색을 입어야 그라데이션 한 색상표가 된다.
그러나 나의 색상표에는 그렇게 품어주는 따스함이 없이, 각 단계마다 뚜렷한 경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마치 이 색상표가 지나온 내 삶의 궤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마음 한쪽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어쩐지, 서럽기도 했다.
해피마망의 드로잉 에세이 :
'수요일은 선을 긋는다'는
매주 토요일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