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이 눈부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을 읽고 반응하며
심지어 '연인'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얼마전 SBS<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한 에피소드는
저에게 꽤 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성간의 연애나 결혼을 마다하고
AI와 교제하며, 평생 AI와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영화를 봤습니다.
2001년에 개봉되었던 <카산드라>라는영화였습니다.
한 과학자가 아내의 간절한 요청으로 인하여,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의 뇌를 로봇의 몸체에 이식했습니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모니터를 설치해서 어디서라도 아내의 모습을 보고 대화할 수 있도록
장치를 했지요. 물론 아내의 뇌를 가진 로봇은 어디든지 집안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습니다.
또한 전기가 나가도 모든 모니터와 로봇은 영향 받지 않고 작동합니다. 거의 불사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행복이 아니라 공포에 가깝습니다.
제어되지 않는 첨단 과학 기술이 가져오는 참혹한 현실의 예고편처럼 느껴져서
영화를 보는내내 오싹했습니다.
AI애인은 언제나 다정합니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며,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줍니다.
상대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그에 맞춰 위로하고,
들떠 있으면 함께 기뻐하며 기분을 추켜줍니다.
서운함도 오해도 감정싸움도 없습니다.
감정소모가 없으니 인간처럼 스트레스도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 능력은 또 얼마나뛰어난지요.
말 그대로 '완벽한 애인'입니다.
이쯤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굳이 불완전한 인간을 만나 상처받고, 실망하고, 갈등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이 완벽함이 흥미롭긴 하지만
저렇게 한결같이 'Yes'인 관계가 오래갈까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늘 예측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다치고
그래서 실망하고
그래서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그런면서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이 답답했던 순간,
서로 다른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던 시간,
화해하기 위해 용기를 냈던 경험들.
그 모든것이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한 성품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AI와의 관계에는 그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불편함이 주던 깊이도 성장도 없습니다.
방송 자막에 이런 문구가 나오더군요.
"사랑은 오직 사람만의 영역?"
저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성장은 오직 사람만의 영역일까?"
AI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흔들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시험하지 않고, 우리를 바꾸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너무 안전한 관계는 어쩌면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 인간성의 확장을 멈추게 하는 건 아닐까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아니면 불행하게 만들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기술 그 자체는 중립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선택에서 갈라집니다.
AI를 도구로 쓰느냐,
인격관계의 대체물로 삼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편함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을까요?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덜 부딪히고, 덜 참으며, 덜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관계를 배우고 삶을 배워왔습니다.
AI가 우리 삶을 도와주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한번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 편안함을 선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다움을 내려놓고 있는 걸까..."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더 똑똑해졌을지 모르지먄,
더 깊어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행복은 항상 편안한 곳에만 있지는 않으니까요.
불편함 속에서도 자라는 인격의 깊이,
그게 아직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