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하루

- 설명할 수 없는 울음

by 해피마망

문을 열자 8월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습한 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들어서서 마주한 풍경은 생소했다.

바닥은 맨 땅바닥에 가마니가 깔려있었는데 습하고 쿰쿰한 냄새는 이 가마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냄새 같았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가마니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다가 여자가 들어서자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공연스레 얼굴이 붉어지며 애기 엄마가 인도하는 대로 중간쯤 들어가서 방석 위에 앉았다.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게 겸연쩍어 여자는 살포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는 해도 얼굴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여자는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앞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벽에 붙어 있고 그 앞으로는 커다랗고 높은 강대상이 무겁게 놓여있었다.

상 위에는 검고 커다란 책이 두권 놓여있다.

예전에 잠깐 다니던 옴마니반메훔을 외던 회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신성하다기보다는 뭔가 허술한 시골집 같은 친근한 분위기에 여자의 마음에선 이미 경계심 따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시간이 되었는지 강대상 옆으로 문이 열리더니 양복을 입은 서른 남짓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강대상 앞에 서서 앞에 앉은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잠깐 옷매무새를 단장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앉아있던 사람들도 옷을 여미거나 자세를 바꾸며 잠시 술렁이는 듯했다.

"찬송가 1장을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1장입니다."

여기저기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나고, 옆에 앉은 애기 엄마가 곡조가 그려져 있는 찬송가 책을 여자 앞으로 살짝 놓아주었다. 여자는 입을 벌리지 않고 그저 노랫소리를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곡조는 느릿느릿하지만 힘차게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는 여자의 눈앞으로 이불을 빨고 반찬을 만들며 집을 나갈 준비를 하던 자신의 모습이 스쳐갔다.

마음이 바쁜 여자는 마구 움직였다. 공연히 이방 저 방을 다니며 이불이며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 등을 가져와 빨래를 했다. 빨래판에 빨래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문지르고 또 문질러댔다. 빨래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씨름을 하는 거 같았다. 밤이면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사진 찍듯이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습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 여자의 눈을 안개처럼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여자의 손등으로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뜨끈했다. 또 한 방울 뚝 뚝 뚝...

여자는 와락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터져 나온 울음에 옆의 애기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웬일인지 여자는 이 울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봇물이 터지듯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여자를 바라보았다. 애기 엄마가 급하게 소리쳤다.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설교를 하던 목사의 말소리도 멈췄다. 예배당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멈추고 여자의 통곡소리만이 공간을 차고 올라갔다.

"자, 성도 여러분, 모두 다 이리로 모입시다.

우리 함께 이 여인을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이 여인의 울음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되기를 원하며 간절히 함께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여!!!"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자기가 울었다는 것만 기억났다.

어떻게, 왜 울었는지도 몰랐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깨어났을 때는 저녁나절이었고 그녀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함을 느꼈다. 왜 자기가 뜬금없이 이런 시간에 잠에서 깼는지 의아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아이들 말로는 한 시쯤 교회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계속 잤다고 했다. 아이들도 딱히 엄마를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여자는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잠을 잘 자서 그런지 몸이 가볍고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튿날 아침에 애기 엄마가 찾아왔다.

애기 엄마는 커다란 냄비를 들고 왔는데 냄비에는 고기를 잔뜩 넣은 미역국이 가득했다.

애기 엄마 말로는, 그날 엎드려서 울던 여자는 마치 아이가 떼를 쓰듯이 예배당 바닥을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울다가는 갑자기,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라며 소리를 죽여 빌다가 또 엎드려 울다가 빌다가를 한참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여자를 보면서 교인들은 애가 끊어지도록 힘써 기도했다고 했다. 한참을 그렇게 뒹굴며 울던 여자는 마침내 혼절한 듯 쓰러지며,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처럼 숨을 쌔근거리며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애기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도 여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남의 얘기를 듣는 것처럼 담담했다.


하루는 어제와 똑같이 흘러갔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가끔 애기 엄마가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애기 엄마는 잘 주무셨냐는 인사말과 함께 먹을 것만 내려놓고는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바로 돌아갔다. 만약에 애기 엄마가 뭐라고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을 잘 듣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금방 가버리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은 여자를 보면서 성령 받았다고 말했다.

여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말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 하나만이, 몸 안에 남아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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