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드로잉 배우기
얼마 전 인물화 한 점을 보게 되었다.
머플러의 털 하나까지도 만져질 듯이 굉장히 섬세한 그림이었다.
놀라운 건 그 그림이 볼펜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지울 수도 없는 볼펜으로 이렇게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나도 볼펜 드로잉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간단하게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싶은 마음도 결심을 키웠다.
무작정 그림을 그린 분을 찾아갔다.
선긋기의 기본부터 시작했다.
직선, 사선, 점점 이어 그라데이션까지.
단순한 선이지만 그 속엔 그리고 싶은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음과는 다르게 선긋기는 참 어려웠다.
생각처럼 손이 따라주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아무 이상 없이 슉하고 그려지는 선들이 실전에서는 엉망이었다.
삐뚤빼뚤
굵었다 가늘었다.
일정한 힘의 속도로 일정한 간격을 갖고 선을 긋는 게, 아기가 자기 손으로 첫 수저를 뜨는 거마냥 허술하기 그지없다.
'아니 이게 뭐라고 안 되는 거야'
'팔 근육이 없어서 이러는 건가'
당황한 마음에 수치심이 생겼다.
"실력은 시간의 결과예요"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께서 천천히 하라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걸 꼭 해야 한다.
그림들은 모두 선으로 완성되는 것이니
드로잉에 있어서 선긋기는 기본 중의 기본, 완성 중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서 선긋기에 몰입했다.
어느새 수치심은 사라졌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스케치북 위에 하염없이
선을 긋는 열심인 학생이 있을 뿐이다.
문득, 그래도 엉덩이 무겁게 앉아서
열심히 선을 긋는 내가 의식이 되었다.
픽 웃음이 났다.
스스로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 이 시간들은 또 켜켜이 쌓일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여 마침내 성취하는, 내 삶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되어 갈 것이다.
도전하는 설렘이 없다면
삶이 무슨 재미이겠는가.
선을 긋는다는 건 결국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