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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Feb 01. 2023

퐁네프의 연인들

두 사람의 세계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yellow_mellow_page)과 Notion을 통해 연재했던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에 옮깁니다.


미친 사랑 이야기 4


이 영화의 제목을 안 들어본 분은 거의 없으실 거예요. 

영화는 안 봤어도 파리에 여행을 가면 왠지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곳 퐁네프 다리.

저 또한 프랑스 여행 중에 아 ~ 무 감흥 없이 퐁네프 다리를 찍고 왔던 기억이 있어요. 

왜 유명한지 도대체 모르겠던 관광 명소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파리에 갈 기회가 있다면 퐁네프 다리에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하고 오래된 다리. 

오래돼 보수공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 그래서  통행이 금지된 곳. 

영화에서는 그런 곳이 퐁네프 다리입니다.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남자. 알렉스. 

불안한 눈빛으로 차도를 걸어가더니 도로 바닥에 엎드려 이마를 짓이기다가 그대로 쓰러집니다. 

쓰러진 그의 발목 위로 차가 무심히 지나가고 그는 곧 부랑자 버스에 실려 갑니다. 

이건 분명 사고인데.. 알렉스에게는 너무 평범한 일 같이 느껴집니다. 

그는 순화해서 말하면 '방랑자'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노숙인'입니다. 

그의 삶은 폭력, 욕설과 더러움, 위험과 함께 합니다.


그런 그를 본 미쉘. 그녀는 안과질환으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어요. 

그 때문에 그림도 그리기 힘들고, 연인과도 이별하여 자포자기하고 거리를 집 삼아 살아갑니다. 

알렉스에게 퐁네프 다리는 삶, 미쉘에게는 죽음과도 같습니다. 

퐁네프 다리에서 둘은 친구가 됩니다.


알렉스는 우연히 그녀의 편지에 적힌 주소를 보고 사랑인지 집착인지 단순한 호기심인지 모를 이끌림으로 그녀가 살았던 집까지 갑니다. 

결국 그녀의 방까지 찾아가서 그녀의 노트를 들고 나오는 알렉스. 

꽤 먼 거리를 한 밤중에 절뚝거리는 발로 혼자 오고 가는 모습은 힘들어 보인다기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미쉘과 줄리앙. 

알렉스는 그녀의 노트를 읽고 그녀의 사랑 줄리앙에 대해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도, 헤어짐도, 기다림도 그에게는 너무 낯선 단어들이에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마 어렸을 적 버려져 사랑이란 것이 뭔지 제대로 알 기회조차 없었던 게 아닐까요. 

그에게 사랑이란 그녀를 놓지 않는 것, 그녀를 자신의 옆에 두는 것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수준의 사랑이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쓰고 집착하는 것과 겹쳐집니다. 날 것 그대로의 사랑.


지하철에서 우연히 줄리앙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첼로를 연주하는 걸 듣고 미쉘과 알렉스는 미친 듯이 그 소리를 쫓아 가지만 알렉스가 줄리앙을 먼저 발견하고 그를 쫒아보냅니다. 

파리 지하철을 미친 듯이 질주하는 미쉘의 옆으로 앙리 마티즈의 '재즈' 포스터가 보여서 반갑네요. 


아마도 상상 속이었을 거예요. 

미쉘은 줄리앙을 찾아가 총을 쏩니다. 

그 후로 미쉘은 줄리앙과의 이별을, 현재 자신의 길 위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싸구려 와인을 한 껏 마시고 알렉스와 퐁네프 다리에서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그러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중 하나인 불꽃놀이씬이 나오죠. 

둘의 만남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 듯, 알렉스와 미쉘의 마음이 그러하듯 하늘에는 너무 아름다운 불꽃들이 펼쳐집니다. 

둘은 즐거워 보여요. 

레오까락스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의외로 색감이나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장면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삶이 항상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신들의 축제는 아니었지만 남들의 축제에 기대어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요.


밤이 되면 잠이 오는 미쉘과 달리 여전히 알렉스는 잠들지 못합니다. 

수면제를 먹어야지만 잘 수 있어요. 

어느 날 밤, 알렉스는 미쉘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하늘이 하얗다'라고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구름은 검다'라고 대답을 하겠다고 해요. 

하늘은 미쉘, 구름은 알렉스... 같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


미쉘과 알렉스는 카페에서, 식당에서 사람들의 마실 것에 수면제를 넣어 그 사람들의 돈을 가로챕니다. 

그 돈으로 둘은 바다를 보러 가요. 

여기서 둘은 매우 즐거워 보입니다. 

둘은 발가벗고 바다를 뛰어다녀요. 

마치 경계선에서 티나와 보레가 숲 속을 발가벗고 뛰어다니는 장면이 연상되네요.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완전한 해방'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오로지 자신들만 존재하는 듯해요.


네가 이제 약 없이 잘 수 있어서 좋아. 이런 게 사랑인가 봐.

바다에서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결국 수면제를 찾습니다. 

그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었던 길거리 삶에서 ‘돈’이 생기게 되고, 미쉘은 그 돈으로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합니다. 

여전히 미래를 그리지 않는 알렉스와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에요. 

알렉스는 그들이 힘들여 (?) 번 돈을 미쉘 스스로가 물에 빠뜨리도록 합니다. 

절망하는 미쉘. 둘은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미셸은 잠시 거리에 나왔다 하지만, 알렉스에게 거리는 자신의 삶입니다. 

예술을 좋아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던 미쉘과 거리의 부랑아 알렉스는 완전히 삶을 공유할 수 없어요. 

그는 자신이 없는 사이 사라진 미셸이 불안합니다. 

아마 그녀가 원하는 것과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애초부터 같지 않았다는 걸 알렉스는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관계가 언젠가 깨질 것도요. 

그래서 미쉘에게 더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떠난 삶을 이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미쉘이 한스와 함께 루브르박물관에 간 날, 알렉스는 미쉘이 보이지 않자 자신을 자학합니다. 

알렉스는 고통을 잊기 위해 더 큰 고통이 필요합니다. 

아침이 되어 돌아온 미쉘을 때리는 알렉스를 미쉘도 때립니다. 

이때 둘의 연기가 너무 사실 같았어요. 표정, 몸짓 하나하나까지 어쩜...

시간이 흘러 까까머리였던 알렉스의 머리는 길어지고 미쉘의 눈도 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제 절대 서로 떨어지지 말자. 

난 점점 어둠 속에 갇히고 있어 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될 거야.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그녀를 찾는 벽보가 지하철 사방에 붙습니다. 

치료법이 개발되었다고요. 당황하여 그녀의 포스터를 찢어버리는 알렉스. 

사랑하는 미쉘의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포스터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온 사방에 붙어 있어요. 

알렉스는 모든 포스터에 불을 붙입니다. 이 장면도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습니다. 

조금 다른 느낌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리게 하네요.


그녀가 떠나갈까 봐 두려운 알렉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알게 된 알렉스는 세상 유일한 빛을 잃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고, 결국 '그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결국 미쉘은 라디오를 통해 그녀를 찾고 있다는 뉴스를 듣게 되고, 안아달라고 하는 알렉스를 뿌리치고 떠납니다.


내 희망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악몽은 끝날 거야.


알렉스에게 집과 같았던 다리가 그녀에게는 사실은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을 까요. 

그녀는 잠시 이곳에 온 것일 뿐 영원히 이곳에 지낼 사람은 아니었죠. 한스가 말했던 것처럼요.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추위에 떨고 미래가 없이 살아가는 건 그녀가 평생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미쉘은 둘이 즐겨마시던 싸구려 와인에 수면제를 타고, 알렉스가 잠든 사이 떠납니다.


알렉스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어. 나를 잊어줘 -미셸-


이란 말을 남기고요.

알렉스의 말에 마음이 아픕니다.


아무도 나에게 잊어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어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지만 잊는 법은 모릅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죠. 처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이별 후의 고통을 모릅니다. 

그래서 더 무모합니다. 

결국 알렉스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더 큰 고통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총에는 마지막 한 발의 탄피가 있었어요.

세월이 흘러, 알렉스는 미쉘을 찾는 포스터를 붙이던 사람의 차에 불을 지르고 그를 결국 죽게 만들어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그를 이제는 시력을 찾은 미쉘이 찾아오고 둘은 크리스마스 자정에 퐁네프 다리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크리스마스 자정 함박눈이 내리는 날 만난 두 사람.

그녀에게 행복한 일상은 호텔에 가서 잼과 버터 바른 빵을 먹는 것이었고 알렉스에게 행복한 일상은 폐허가 된 다리 위에서 싸구려 와인을 마시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셸이 피곤하다며 떠나겠다고 하자 알렉스는 그녀와 함께 퐁네프 다리에서 떨어집니다. 

두 사람을 가까스로 구출해준 배는 르 아브르까지 간다고 합니다. 

미셸은 알렉스에게 우리도 가자고 하고, 둘은 마치 바다를 여행했을 때처럼 배위를 뛰어다닙니다. 

잠시 그들은 퐁네프 다리에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자기 자신으로만 살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알렉스의 사랑은 조금 섬뜩합니다. 

미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알렉스는 그녀를 보내줬어야 하는 게 맞죠. 

하지만 누군들 연인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좋아하겠어요. 

저 또한 한 때 나의 연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섬뜩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점점 피폐해져 가는 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럴 려면 반려 동물을 키워'라고 하는 주변의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을 죽게 만들 수도 있었던 알렉스에게 '르 아브르에 우리도 가자'고 하는 미쉘도 바로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그녀는 눈 수술을 한 후 예전과는 다르게 말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퐁네프 다리에서의 기억을 추억하는 듯도 보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었고, 미래도 없었고 하루살이처럼 살았던 그 시절을. 

퐁네프 다리를 지나오며 그녀는 눈물을 흘려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듯 말이죠. 

다시 퐁네프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알렉스와 미쉘은 '르 아브르'로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둘이 '르 아브르'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미쉘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알렉스가 달라진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이 노래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10cm의 음악을 좋아하고, 특히 '스토커'는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예요.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스토커'의 뮤비를 봤는데 그게 '퐁네프의 연인들'이었습니다. 음악과 영상이 너무 잘 맞더라고요. 이 영상을 보시고 마음에 든다면 이 영화를 한번 보시기를 바라요. 레오까락스 감독의 영화 중에 그나마 스토리 텔링이 제 수준에 맞는 영화 중에 하나거든요.

https://youtu.be/Iu-NVopNDKU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레드벨벳의 사이코에요. 사이코들의 사랑이야기... 이 영화와 은근히 잘 맞는 것 같아요. 발라드처럼 부른 버전이 훨씬 좋은 것 같아서 라이브 버전으로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s://youtu.be/Pg7nBHXQCCA   


이 영화를 보고 ‘미스터 레오 까락스’라고 하는 레오까락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퐁네프 다리는 진짜 퐁네프 다리가 아니라 세트라고 합니다. 매우 저 예산으로 촬영했을 것 같은 이 영화에 사실은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레오까락스는 자금난에 시달렸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도 딱히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하네요.


드니 라방은 레오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그 인물에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역할에 몰두한 것 같아요. 레오까락스 감독의 또 다른 유명작품인 '홀리모터스'에서도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였어요. 그리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그런지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관객평 중에는 '남주 외모 때문에 영화에 몰입이 안된다'라고 한 것도 봤는데 재밌었어요. 외모는 모르겠지만 연기하나만큼은 정말 잘한다고 봐요.


영화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연기의 폭이 정말 다양한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치명적인 팜므파탈에서부터 시력을 잃어가는 거리의 여자까지... 그녀가 못하는 역할은 뭔지 궁금하네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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