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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Feb 01. 2023

러브 오브 시베리아

절정에 다다른 차가움이 뜨거운 불꽃이 되어...

+인스타그램(@yellow_mellow_page)과 Notion을 통해 연재했던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에 옮깁니다.


미친 사랑 이야기 3


이 거대한 사랑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식상한 카피라이팅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와 찰떡인 한 줄입니다.


1905년 육군 훈련소에 걸어둔 모차르트의 그림. 

이 자가 누구며, 왜 죽었는지 보고하지 않았냐고 하는 교관의 외침에 용기 있게 '그는 위대한 작곡가고 오래전에 죽었다'라고 말하는 병사. 

자신이 모차르트를 몰랐다는 사실을 들키게 한 병사에 대한 화풀이로 교관은 '모차르트는 개뿔이다'를 외치라고 강요합니다. 

그는 이를 외치지 않고 벌로 방독면을 쓰고 버팁니다. 

이야기는 그, 그리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시작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1885년 러시아입니다. 

황제 사관학교의 사관후보생인 톨스토이는 우연히 제인이라는 미모의 미국 로비스트와 기차의 1등석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둘이 악수를 나눌 때, 둘은 알았을까요. 

그들이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지. 

우연히 동석하게 된 톨스토이와 제인은 모차르트의 세비아의 이발사의 아리아를 부르고 담배를 피우고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둘은 이때부터 호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제인은 로비스트로 모스크바에 왔습니다. 

의뢰인 맥클레켄은 발명가인데 자금이 부족해서 기계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죠. 

자동 벌목기계인 시베리아의 이발사라는 기계입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죠) 

이를 위해 제인은 황태자 기계 및 기술 발명회 부위원장인 래들로프 장군에게 접근합니다. 

그녀는 맥클레켄의 요청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합니다.


톨스토이는 제인에게 푹 빠진 듯합니다. 

그의 친구가 무도회에서 제인과 춤을 추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친구인 폴리엡스키가 제인의 어깨 밑에 있는 사마귀(있는지 아닌 지도 확실하지 않은)를 언급하며 일부러 톨스토이를 자극합니다. 

결국 둘은 결투를 벌이게 되고 톨스토이는 부상을 입어요. 

사관생도들 간의 결투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이후의 자괴감으로 사관학교 자퇴를 생각하게 됩니다. 


폴리엡스키의 부탁으로 제인이 톨스토이에게 저녁을 차려주며 이렇게 얘기하죠.

"우린 때때로 삶에 분노를 느끼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는 거예요"

순진하면서 단순한 톨스토이는 제인이 찾아온 것으로 인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보입니다. 

제인이 나타난 이상 자신에게는 더 이상 친구와의 결투도, 자퇴도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어요.


시간이 흘러, 톨스토이는 임관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래들로프 장군이 제인에게 청혼하러 가는 길, 톨스토이는 이에 동행하게 됩니다.

래들로프 장군은 자신이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며 청혼문을 톨스토이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인을 좋아하던 톨스토이는 장군의 청혼문을 읽는 척하다가 자신이 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립니다. 장군이 맥클레헨의 발명품에 투자하기로 거의 결정된 시점에 느닷없는 톨스토이의 고백으로 제인은 당황하게 되고, 톨스토이와 장군은 차례로 황급히 자리를 뜨게 돼요. 

톨스토이가 하늘과 같은 장군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한건 대단한 용기입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릴 각오를 했어요. 

제인은 (다행히) 그의 고백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합니다.


제인은 톨스토이를 찾아갑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원래대로의 모습을 톨스토이에게 보여주어요.

매우 특별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있는 그대로의 머리색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잠시 내려놓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아이엠러브'에서도 엠마가 머리를 자르면서 좀 더 자신의 본모습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제인도 자신의 본 머리색을 보여주며 톨스토이에게 다가가요. 

제인 또한 톨스토이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약간은 망설이고 조심스러운 톨스토이에게 오히려 제인이 뜨겁게 고백합니다.


안드레이 제 말 좀 들어 봐요 제발 용서해 줘요 누구도 당신만큼 날 흔들어 놓은 사람은 없었어요 제발 사랑해 줘요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를 사랑하냐는 제인의 물음에 톨스토이는 'Da(Yes)'라고 대답합니다.

이들의 은밀한 소리를 톨스토이 가족의 메이드인 '두냐샤'가 듣고 있었습니다.

그녀 또한 톨스토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행복할 듯했으나.. 역시 영화가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죠. 

안드레이는 황태자를 위한 사관생도들의 공연,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치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제인과 래들로프 장군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거기서 제인이 장군에게 '20대 철부지가 어떻게 장군과 같은 사람과 비교가 되겠냐'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제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배신당하고, 자신의 사랑이 '철부지'처럼 여겨진 것에 대해, 

그리고 질투심에 휩싸인 톨스토이는 무대 중간에 장군에게 위협을 가합니다. 

정말 미친 사랑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장면이에요. 


그의 사랑은 20대 철부지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무모해요. 황태자 앞에서 그런 일을 벌이다니. 

그는 자신에게 닥칠 일을 상상이나 하고 일을 저지른 걸까요.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습니다. 

어떤 것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무모하고 위험하고 손가락질당하고, 때로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되기도 하는 것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입니다. 

러시아인의  질투는 국가를 이끌죠! 영국의 증기 기관차처럼!이라고 제인에게 말했던 톨스토이의 대사가 오버랩됩니다.


결국, 톨스토이는 황태자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가게 되어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죠. 사관생도로서 임관까지 마친 톨스토이에게 제인과의 사랑은 뭘 의미했을까요. 

탄탄대로가 펼쳐진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도 괜찮을 만큼 그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기로 작정을 한 걸까요?

톨스토이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감옥에서도, 톨스토이의 집에 가서도, 당신은 누구냐? 는 물음에 

제인은 '아무 존재(No one)도 아니에요'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톨스토이가 열차로 이송되는 때에 맞추어 사관생도 동기들이 그를 찾으러 역으로 갑니다. 

제인도, 톨스토이의 어머니도, 두냐샤도 그 자리에서 각자 안드레이(톨스토이)를 찾습니다. 

톨스토이를 찾지 못하자 생도들은 그들이 생도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를 불러요. 

안드레이도 이에 화답합니다.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사고뭉치였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린, 그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된 그를 친구들은 진심으로 슬퍼합니다. 

어머니, 제인, 두냐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안드레이를 애타게 부르지만 그는 떠나갑니다.


세월이 흘러, 안드레이가 살고 있는 집을 제인이 찾아갑니다. 

안드레이에게 자신만의 비밀을 전하러... 하지만 결국 비밀은 전하지 못합니다. 

안드레이가 두냐샤와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실망과 절망을 안고 돌아와요. 

그녀의 음성을 멀리서 듣고 알아차린 안드레이, 산 넘고 물 건너 그녀에게 가지만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기만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그의 눈빛 속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있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허무함이 있고 이렇게 밖에 그녀를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체념도요. 

제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말끔하고 장난기 가득한 청년이었고, 담배도 피우지 못했는데 세월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는 얼마나 그녀를 기다려 왔던 걸까요. 

작은 소리에도 온몸이 반응해서 미친 듯이 그녀를 쫒게 한 건 어쩌면 그의 몸에 새겨진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두 번째 명장면입니다.(제 기준)   


영화 초반에 나온 병사는 안드레이의 아들 앤드류입니다. 그의 어머니인 제인은 앤드류에게 아버지인 안드레이와 자신의 얘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나고 20년 만에 마침내...  


이 영화에 대한 관람객들의 평은 다양합니다. 

평생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는 분도 계시고요, 

위대한 사랑이야기라고 하는 분도 계세요. 

톨스토이라고 제인에 대한 그의 행동이 그의 삶을 이토록 힘들게 할 줄 알았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 줄 알았겠나 싶기도 하고요. 

누구의 말처럼 사랑은 '사고'같습니다. 또는 폭풍 같고요. 

한번 휩쓸리면 정신을 차릴 수 없어요.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사람에게 쏟은 사랑이 때로는 나의 인생을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경우, 군인으로서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사랑에 판단력이 흐려졌고, '질투심'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몇십 년이 흘러 그녀를 보게 되었음에도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톨스토이 역을 맡은 배우가 처음에는 맘에 들지 않았어요. 

다른 생도들과 다르게 너무 나이 들어 보였거든요.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마지막에 그의 표정을 보고 울지 않을 사람, 울지는 않더라도 감정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는 가슴 아픈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인생을 온전히 받쳐 사랑할 자신이 없어요. 

누군가에 의해 삶이 흔들리기는 건 이제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한 때는 사랑이 전부인 것 같은 시절을 누구나 겪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 때문에 어떤 선택을 했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어떤 선택에든 책임은 따르는 것이죠. 

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 한 사랑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아마 그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아요. 

그의 표정, 눈빛 보이지 않는 한숨... 모든 것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미친 사랑으로 앞서 두 작품을 소개했지만, 이 작품이 저에게는 꽤 강한 충격을 줍니다.   


+ 영화의 원 영어제목은 '시베리아의 이발사'입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아의 이발사'와 겹치는데요. 내용도 겹칩니다. 한 여자를 향한 두 남자의 사랑. 세비아의 이발사는 원래 희곡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작곡가 파이지엘로가의 세비아의 이발사라는 오페라를 만들고요 이어 로시니도 같은 이름으로 오페라를 만듭니다. 모차르트 또한 오페라를 보고 감명받아 원작자에게 세비아의 이발사 2편을 만들자고 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피가로의 결혼'입니다. 세비아의 이발사의 이름이 '피가로' 거든요. 영화 전반에 '피가로의 결혼'음악이 깔리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 매우 돋보입니다. 제인의 아들 앤드류가 Mozart: Piano Concerto No. 23: II. Adagio를 교관에게 연주하는데요. 이 음악을 오랫동안 찾았습니다. 

2013년 겨울, 제가 뉴욕에 몇 개월간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사건 사고 때문에 원래 살던 집에서 나와 친구의 집에서 잠시 지내고 있었어요. 

친구 Fred는 Thrift shop(중고매장)에서 알게 됐어요. 

뉴요커들은 타인에게 쉽게 말을 겁니다. 

그렇게 Fred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예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친구덕에 여러 음악 공연을 무료로 보러 다니곤 했어요. 

친구집 소파에서 10일 정도 신세를 졌는데, 친구의 저녁 일과는 오디오 앞에서 Trader's Joe(미국의 식료품 할인매장)에서 산 저렴이 화이트와인(3달러)을 마시며 Mozart: Piano Concerto No. 23: II. Adagio를 듣는 거였어요. 

저도 같이 와인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했는데 그때 이 음악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음악 자체가 좀 쓸쓸하고 감성을 자극하는데 당시 제 마음이 좀 그랬거든요. 

집주인과의 갈등으로 더 이상 그 집에 살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뉴욕의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운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타지에서 제 자신이 잉여인간 같이 느껴져서 쓸쓸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어요. 

그때 제 마음을 녹여준 게 친구와 와인과 이 음악이었습니다. 

형광등 없이 간접조명으로만 이루어진 거실 분위기도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지금도 형광등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때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그냥 제목도 모르고 듣기만 했는데, 나중에 정말 이 음악이 그립더라고요. 하지만 제목을 몰라서 아쉬워하던 차에 이 영화를 보고,!!!! 했습니다. 

이 음악만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그때의 상황도 많이 떠오르고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Fred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Hélène Grimaud - Mozart: Piano Concerto No. 23: II. Adagio   

저는 러시아풍의 왈츠! 하면 이 음악이 생각나요. Khachaturian - Masquerade suite 이 영화에도 왈츠 장면이 나오는데요, 러시아의 추운 겨울과 이 왈츠곡은 정말 찰떡입니다.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번 감탄합니다. 이 음악의 작곡가는 아람 하탸투랸(하차투리안)이고 아르메니안 러시안입니다. 음악은 작곡가가 살았던 환경과 사회, 기후와 분위기까지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하탸투랸의 왈츠가 너무 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음악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으면, 제 앞에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음악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아사다마오 선수의 프리 배경음악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NTdPMRhKXI   


이 영화는 러시아 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45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와 제인의 사랑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축제인 사순절 전, 일주일 동안의 마슬렌니짜라는 축제 장면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데요. 보기만 해도 추운 설원에서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결투를 벌이기도 하며 보드카를 사정없이 마시고 찬물로 샤워하는 모습이 다분히 러시아 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의 건축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이 가는데요 아마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클래식 음악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라흐마니노프, 차이콥스키 등 대가들의 음악을 본토에서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번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크렘린 궁전은 꼭 바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예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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