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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Jan 25. 2023

69세(An Old Lady)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기 때문에...

1월 세 번째 영화, 절망 또는 희망 3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늙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고 살아 있는 것이라면 누구든 겪어야 하는 일종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늙었다는 것'만으로 기본적인 권리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나는 늙거나 젊어도 여전히 나인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내 이름 석자보다는 '할머니'또는 '할아버지'로만 불리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들의 특성이 곧 나의 특성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이 먹는 게 더 두려워지는 건가 봅니다.

친언니가 갓 아이를 낳고 저와 나눈 얘기가 기억에 남아요.

먹여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기와 노인은 본질적으로 같은데 아기는 어리고 귀여우니 사랑을 받고 노인은 늙고 주름지니 미움을 받는 것 같아 슬프다고요.


69세의 주인공 심효정은 간호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 사실을 동거인 남동인에게 얘기하고, 효정과 동인은 경찰서에 이 사실을 고소합니다. 

형사는 이중호가 효정을 성폭행했다는 것에 대해 무심코 '친절이 과했네'라고 하는데요. 

형사가 악의를 가지고 저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젊은 남자가 늙은 여자를 강간할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나? (뭐가 아쉬워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요.

무심결에 하는 말에는 평소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이 담겨 있기 마련인데...'노인들'의 존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효정이 다니는 수영장에서도 다른 여자 회원들이 효정에게 몸매가 좋다고 칭찬을 합니다. 

젊은 여자 거나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에게 라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요? 

얼굴이나 몸에 대한 평가는 꽤나 실례가 되는 말입니다.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나이 든 사람에게 하는 칭찬'이니깐 당연히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효정은 가해자 이중호를 마트에서 만난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치매환자라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자신조차 내가 치매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무력감, 그리고 자신이 떠나는 게 동거인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말없이 동인을 떠납니다.

떠난 그녀는 이전에도 그녀를 추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간병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간병인 일을 하는 그녀는 꽤나 담담해 보이긴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가족도 없는 여자가 갈 곳은 저런 곳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변의 남성, 여성들로부터 듣는 얘기는 냉담합니다. 

그녀는 '뒷모습이 아가씨 같은'데, '조심을 하지 않아서', 가해자의 '과도한 친절'을 받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녀가 느꼈을 치욕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법도 그녀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젊은 남성에게 늙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 개연성이 없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이죠? 

너무도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담담해 보입니다. 그녀는 그녀대로의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효정이 가해자의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가해자는 효정에게 미쳤냐고 누구 인생 망칠 일 있냐고 소리칩니다. 

그녀는 "끝? 인생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 네가 저지른 거 하나, 하나 다 갚고 그러고도 질기게 안 끝나는 게 인생이다."라고 받아칩니다.

그녀도 너무 떨리고 힘들었을 텐데 저렇게 가해자에게 한방 날리니깐 제가 다 시원합니다. 

그녀는 당당했고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가해자의 아내가 임신한 것을 알고 놀라 돌아 나왔지만 그녀는 끝내 그 남자를 용서하지 않기로,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결심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또박또박 세상을 향해 자신이 그동안 숨겨오고 피해왔던 얘기를 하게 됩니다. 

내가 말해봤자 누가 내 말을 믿어줄까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을 덮고 사람들이 '불편해하는'얘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만 '진실'인 그 이야기. 

그렇게 하더라도 믿을 사람은 믿고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그건 더 이상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보는 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후회하는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뒷걸음치며 살았습니다.

그저 그늘에 숨어 잊히기를 바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봄볕에 눈물도 찬란하게 빛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제 저는 어려운 고백을 시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햇빛으로 나아가 보려 합니다.'

라고 하는 글을 써서 세상에 날려 보냅니다.


그리고 강렬한 한 줄 ' 심효정, 69세. 전, 병원 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당했습니다.'라고 씁니다. 


사실이지만 사실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그 사실을 그녀가 스스로 사실로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얘기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실제 주인공은 효정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저버리는 선택을 했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실제로 노인성폭행의 수가 꽤나 많다고 합니다.

아동성도착증처럼 노인성도착증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회는 이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성으로서 성폭행을 당하는 일, 그것이 젊은 남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자신이 늙은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법도, 주변 사람들도 힘이 되어 주지 않았습니다. 

젊고 늙은 것만 빼놓고 생각하면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답답합니다.


그리고 무서워집니다. 

나도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저렇게 세상에서 지워질까? 

때론 내 잘못이 아닌 것도 내 잘못이 되고 내가 하는 말이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시간이 올까?라고요.

그럴 때 이 영화를 생각합니다. 69세의 심효정을 생각합니다. 

그녀는 늙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잠시 세상을 두려워하고 세상에서 숨으려고도 했지만 

끝내,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직 살아있기에. 

그 용기가 저에게 와닿았어요. 


69세... 아직은 경험해 보지 못해 막연히 두려운 나이입니다.

내가 가졌고 무의식적으로 누려왔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가 될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예전에 공지영 작가님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읽었던 한 구절도 생각이 나네요.

'할 수 없는 이유는 999가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할 수 있다는 것'


+ 최근에 고 이순자 시인의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의 이순자 시인의 나이도 예순아홉입니다. 곧 일흔이 되는 나이.

많다고 생각되는 나이지만 작가는 일흔을 소리 내어 읽으면 '이른'이 된다고 합니다.

'이른(일흔) 전 나의 분투기가 이른(일흔) 후 내 삶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많은 경험이 글이 되었다.'

작가에게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본격적인 작가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시작하는 것에는 나이가 없고, 우주의 무한한 시간과 해저생물의 길고 긴 삶을 생각해 보면

일흔은 많은 나이가 아닙니다.

나의 일흔을 생각하며 매일 조금씩 더 용감해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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