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 프레드릭 Jan 24. 2023

아이 엠 러브(I am love)

강렬한 사랑을 통해 발견하게 된 나 자신

+인스타그램(@yellow_mellow_page)과 Notion을 통해 연재했던 글을 정리해서 브런치에 옮깁니다.


미친 사랑 이야기 2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는 항상 감각을 일깨워줍니다.

젖고 꿀이 흐르는 땅은 이런 곳일까 싶은 자연, 맛있는 음식과 술, 음악...

각각의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습니다.


I am love(Io sono Amore)는 2011년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보고??? 했던 영화였습니다.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엠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 10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I am love는 조금 달랐습니다.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가정을 파탄내고 도망간 불륜녀로서의 엠마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한 한 여성으로서의 키티쉬가 보입니다.


이 영화는 앞서 소개한 '대미지'와도 매우 닮았어요.

열정, 그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들이었습니다.

때로는 그 '열정'이 자신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그들의 선택이었고 그들이 감당할 수 있다면 상관없겠죠.


이탈리아 상류층 재벌인 레키가에 시집온 엠마.

남편이 지어준 '엠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레키가는 매우 보수적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생일 때 엠마의 딸 베타가 사진을 선물하자 할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그래도 그림을 그려줬으면 좋겠다'라고 끝까지 얘기합니다.


그리고 엠마의 아들 에도가 스포츠 경기에서 '안토니오'에게 진 것을 가지고

가문의 스포츠 전통을 망쳤다고 합니다.

그들 가문에서는 '이기고' '전통을 계승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식사를 할 때도 일렬로 기다라간 식탁에 앉아 있는데, 베타가 사진을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줬을 때

그걸 바라보는 다른 가족들의 낯선 시선이 공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승자 만을 인정하는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저마다 억압을 느끼며 살아왔을 것 같습니다.

한참 파티가 무르익어 갈 즈음, 에도의 친구 안토니오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가져오는데요.

엠마도 마침 파티에서 자리를 뜹니다. 둘은 이때 처음 만나 인사를 합니다.

안토니오는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파티가 부담스럽습니다.

둘은 그때부터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에도는 훌륭한 셰프인 안토니오와 함께 식당을 열고 싶어 하고, 자연스럽게 엠마는 안토니오가 일하는 곳에서

시어머니, 미래의 며느리와 함께 식사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음식을 먹는 엠마. 온전히 음식 맛에 집중하게 되고 마치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음을 느낍니다.

잊고 있었던 엠마의 감각이 깨어난 것은 이때부터가 아닐까요.

다시 운명의 장난처럼 엠마는 안토니오와 산레모 시내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이 재회 부분이 이전에 볼 때는 몰랐는데 매우 긴장되는 장면이었어요.

결국 둘은 마주치게 되고, 고급 세단만 타던 부잣집 마님은 안토니오의 트럭을 타고

산으로 굽이 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안토니오의 레스토랑으로 갑니다.

그 장면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같고,

엠마가 살아온 세상과 다른 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자연. 

역시 영상 장인, 이탈리아 시골 장인 루카 감독답게 영상을 너무 잘 뽑아냈어요.

루카 감독의 영화는 마치 이탈리아 홍보 영상 같습니다.

엠마는 레키가의 반듯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보다는

빛, 식물, 자연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살아오다가 안토니오를 만나며

마침내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토니오와 키스를 하고... 전개가 급하게 전환됩니다.

산레모에서 돌아온 엠마는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불륜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영화

'언페이스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상대 남자(폴)와 관계를 가진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그녀(코니)는 울었다 웃었다 하며 환희에 차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입니다.

잊고 있었던 감각과 욕망이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해서는 설레는 웃음이,

가족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에서는 울음이,

그리고 앞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괴로운 표정이... 뒤섞입니다.


I am love에서 엠마는 그냥 마냥 들뜨고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곧 있을 레키가의 파티를 위해 안토니오를 다시 보게 된 엠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를 대하고자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안토니오도 마찬가지고요.

그를 따라 다시 그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는 그녀의 옷, 장신구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벗깁니다.

마치 엠마를 규정하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를 봉인 해제 하듯이.

그녀의 긴 머리도 안토니오가 잘라줍니다. 그리고는 엠마는 ‘엠마’ 자신으로 남습니다.

아니, '키티쉬'로 돌아가게 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엠마의 이름은 원래 엠마가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이탈리아에 시집온 이후로 자신의 이름 대신 남편이 지어준 이름 '엠마'로 살고 있죠.

자신의 원래 이름도 잊은 그녀는 안토니오에게 자신을 '키티쉬'라고 불라달라고 합니다.

가족들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고.


안토니오와의 관계에서 만큼은, 거짓 이름이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조금 더 확장해서 이제는 '엠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걸까요.

엠마는 결혼한 이후로 자신을 잊고 명문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가기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자신이 왔던 곳을 그리워하게 되죠.

어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떠납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허울들을 벗어버리고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마주할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한 선택을 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정사 장면들... 풀밭에서의 정사신은 다시 봐도 참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감각적인 장면은 처음 봐요.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고요.

두 사람이 '성행위'를 한다기보다는 자연의 일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식물과 곤충들이 번식을 하듯이요. 여기서 음악도 한몫한 것 같아요.


격정으로 휩싸인 두 사람의 살과 음악이 겹쳐 황홀하게 느껴집니다.

레키가는 사업을 매각하기로 합니다. 이에 또 파티를 열고, 요리는 안토니오가 맞습니다.

식사에 에도가 좋아해서 엠마가 즐겨 만들던 수프 '우하'가 나오고,

에도는 엠마와 안토니오 사이의 퍼즐을 맞추게 됩니다.

에도가 엠마에게 러시아어로 고맙다고 하고 나가버리니 엠마의 남편인 탄크레디는

'러시아인 성격이 만만치가 않다'라고 합니다.

엠마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녀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느껴져요.


엠마와 대화 중 에도는 목숨을 잃고 맙니다. 사랑하는 에도를 잃은 엠마는 넋이 나간 듯합니다. 

그리고 불현듯,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넋이 나가 교회당으로 가 맨발이 된 엠마에게 탄크레디는 다시 구두를 신깁니다.

당신이 돌아와야 할 곳은 여기라고 하는 것 같아요.

엠마는 탄크레디에게 '안토니오를 사랑한다'라고 고백하죠.


탄크레디는 싸늘 한 눈빛으로 엠마에게 입혀줬던 옷을 빼앗으며

'넌 존재하지도 않았어'라고 합니다.

결국 엠마는 탄크레디에게, 레키가에게 그저 '장식'과 같은 존재였을까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가려는 그녀를 그녀의 딸 베타와 가정부 이다만 응원하는 듯합니다.


영화를 세 번째 보지만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건 언제나 응원할 일이지만, 그것이 왜 꼭 젊은 남자와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가슴을 뛰게 하는 열정은 '젊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대미지에서도 스티븐이 젊은 안나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렇고요.

공감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괜히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또한, 자기만 좋으면 남아있는 사람들이야 어떻든 상관없는 걸까요. 그것도 의문입니다.

원래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까지 배려해 가며 사랑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무료한 일상'은 있기 마련이고, 자기에게 꼭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자신의 감정을 따라가는 일은 응원하지만 자신의 감정'만' 따라 도망가듯 뛰쳐나가는 것은 무모하며 일부는 무책임하게도 느껴집니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영화적 재미와 메시지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장면입니다.

엠마가 자신의 허울, 좋은 옷, 값비싼 보석들을 다 버리고 운동복을 입은 체 뛰쳐나가는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속이 시원한 느낌도 들었고요.

어쩌면 제가 엠마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내가 누리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홀연히 떠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저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결말에 더 공감이 가는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항상 떠나기를 열망하지만요. 엠마처럼요.


엠마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마지막 쿠키 영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은 상상일까요 현실일까요?

엠마가 뛰쳐나간 후 안토니오와 재회했을지 안 했을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엠마는 더 이상 이전의 엠마가 아닙니다.

안토니와 재회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고, 안토니오는 그걸 자극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에 보고??? 했던 건 엠마와 안토니오의 관계에 너무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둘이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갑자기 키스.. 너무 영화가 엉성하다.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다른 분들 글을 읽어보니 원래 루카 감독 스타일이 그렇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리기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을 충실히 담는다고 하네요.

감정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여요. 그래서 마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을 영상으로

표현하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리뷰를 보다가 '감정의 크기 혹은 질감을 카메라로 담아낸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딱 맞는 것 같습니다.


+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여름 3부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해당 작품입니다.

애초에 의도하고 만들었는지 팬들이 그렇게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비거 스플레쉬는 별로였어요. 그것도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거 스플레쉬는 풍경 말고는 저와 너무 맞지 않는 영화였어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너무 좋아하는 영화인데요, 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에 대해 쓰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고 힘든 일입니다. 

재주가 없지만 아무렇게 끄적 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보고 생각하고 쓰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미지(Damag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