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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Feb 06. 2023

디어 평양(Dear Pyeongyang)

오빠들 다 보낸 것 후회하세요?

2월 - 양영희 감독님의 가족 영화 1 


양영희 감독님은 '가족의 나라'라는 영화를 보고 알게 된 재일한국인 감독님입니다.

한참 독립영화를 좋아하게 됐을 무렵, 감독님의 영화는 자주 가던 독립예술영화관에서 포스터로만 알고 있었어요.

감독님의 영화를 봐야지... 하면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최근에 개봉한 수프와 이데올로기까지 다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은 양영희 감독님의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양영희 감독님의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만나야 할 영화는 언제 어떤 계기로든 만나게 되는 걸까요. 

디어 평양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도서관에서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그게 양영희 감독님의 영화 이야기였습니다.

재일한국인의 삶에 관심이 꽤 있는 편이라 관련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챙겨보는 편인데요.

(박치기, 울보권투부, 가족의 나라, GO 등..)


그래도 재일한국인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재일한국인들의 현실, 조총련과 민단이 무엇인지,

그리고 조총련은 왜 북한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영화에 나오는 재일한국학교 교실에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이더군요.


양영희 감독님의 아버지(양공선 님), 어머니(강정희 님)는 두 분 다 제주도 출신 한국인이십니다. 

두 분은 혼란한 시기에 일본으로 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혼란했던 1960~70년대, 일본에서 차별받고 살던 재일한국인을 도와주었던 건 북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양공선 님은 열렬한 김일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강정희 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때만 해도 북한이 살만했었죠. 남한은 독재가 한참이었고요.


1970년대 일본 거주 재일한국인의 북한 '귀국' 사업이 일본과 북한 두 나라의 지지 속에 이루어지게 되고 

9만 명이 넘는 재일한국인들이 북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북한의 삶은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그곳에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경제는 점점 기울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조총련의 열렬한 활동가인 양공선 님도 자신의 아들 3명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게 됩니다.


북한에서 보내온 사진 속 감독님의 오빠들은 야위어 있었습니다. 

놀란 강정희 님은 그 사진을 아버지(양공선 님)가 보지 못하도록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어머니(강정희 님)는 지극 정성으로 자식들을 위해 음식이며 각종 용품들을 보냅니다. 

자식들 것뿐만 아니라 며느리, 손주들의 학용품까지 아주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냅니다.


북한의 상황을, 그리고 그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자기 자식들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계속해서 김일성을, 북한을 찬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생각이셨을까요? 

한평생을 받쳐 믿어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있던 것을 더 강하게 믿는 것 밖에 없었을까요.

그래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그들이 따랐던 '국가'이고 '국가'를 또 한 번 잃고 싶지는 않았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조국'이라는 것은 '나'를 지탱해 주는 뿌리 같은 것이었을 테니깐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상에는 동조할 수 없었던 양영희 감독님은 또 어떤 심정으로 버텨내셨을까요? 

영화보다는 책에 당시에 감독님이 느꼈던 것들이 더 자세하게 나와 있었는데요...(여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녀에게 가족은 감당하지 못할 큰 아픔이자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가족 안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감독은 카메라를 가지고 가족을 찍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영화들이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입니다.

'국가'란 무엇이고 '이념'이란 것은 또 무엇이기에 평생을 받쳐서 믿을 수 있는 걸까.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이 끊임없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 그들의 상황에 처해보지 않아 그들의 삶을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나는 나대로의 시선으로 이 영화들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양공선 님은 아들들을 북으로 보낸 것에 대해 후회하냐는 감독의 물음에,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열렬한 활동가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차별과 기회박탈로 힘들었던 일본에서의 삶, 희망이 보이지 않던 남한에서의 삶. 

귀국사업은 그들이 당시에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최선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지만 여기서 누구에게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양공선 님과 강정희 님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사상활동을 하고 

구호물품을 보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 개인이 책임지기에는 너무 큰 간극이 생겨져 버린 것이 문제긴 하지만요.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양영희 감독님은 '디어 평양'은 이데올로기 아닌 '가족 영화'라고 했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이 가족을 관통하여 좀 더, 아니 좀 많이 극적여 졌어요.

이 영화는 가족영화가 맞습니다. 

개인별로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마다의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때론 그게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가족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죠.

그에 맞서기도 하고, 그것을 이해해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다음 영화인 '굿바이 평양'으로 다음번에 또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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