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 프레드릭 Mar 03. 2023

[번외 편]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영화보다 깊은 마음을 읽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하면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까지 보고 이 책을 읽는 것이 맞을 겁니다. 더 이해가 잘 될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먼저 보고 이 앞의 영화들을 다 봤어요. 그리고 이 책을 한번 더 읽었습니다. 순서야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 책을, 이 영화들을 결국에는 만났고 내 안에서 어떠한 울림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영화로도 감독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여주기와 말하기가 주는 정보의 양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영화를 보고 내가 이해하고 느낀 것이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하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감독님의 글로 읽고 있자니 마치 북토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아하! 하면서 읽은 부분들을 조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42p

나는 짐을 싸는 어머니가 보기 싫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돈을 보내는 어머니 모습에 좌절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들과 손주들은 조국 덕분에 건강합니다' 자랑하는 이중적인 태도에는 반발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43p

지금에 와서야 짐을 싸던 어머니의 미소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 눈에는 일본에서 온 상자와 봉투를 열어보고 기뻐할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오직 그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가족의 웃는 얼굴을 매일매일 떠올리면서, 그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다음번 소포에 무얼 담을지 궁리했을 것이다. 만나지 못하는 씁쓸함을 상상으로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45년 동안 “부모밖에 못 하지”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을까.


52p

귀국? 저 나라에? 아들을 셋이나 보내고, 장남은 정신병에 걸렸는데 아직도 모자라요? 조선인이든 누구든 일본에서 예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해봐야 알지! 이혼해서 돌아온 딸한테 또 결혼을 하라니, 아버지는 학습 능력이란 게 없어요? 교훈을 얻으라고요, 조선인이랑 결혼했지만 잘 안 됐잖아요!'

이렇게 외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민족교육을 통해 뇌리에 박힌 유교사상을 지키려는 모범생인 내가 싫었다.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북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한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포 사회에서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인 활동가였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미화해서 타인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무모함을 혁명적 임무라고 믿고 수행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 손에까지 편도 표를 들려서 북한에 보낸 몇 년 후, 그 나라에 방문해서야 누구보다 북송 사업의 실태를 잘 알게 된 사람이었다.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용서받을 수 없다는 자각도 있었을 터이다. 세 아들과 가족들이 '인질'이 되고야 말았으니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훈장을 달고 활짝 웃는 부모님의 얼굴이 피에로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었다. 북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해 살아온 두 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믿고 살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런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76p 

그 말인즉슨 내가 미국에서 출국해 일본을 거쳐 북한에 다녀온 후, 미국 재입국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온몸의 핏기가 가시는 듯한 감각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어째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의 영향을 이토록 직접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북한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한국 국적(혹은 일본 국적)을 취득할 생각이었는데, 미국에 오기 전 끝냈어야 했던 걸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87p

나는 옥류관에서 열린 잔치를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채플린의 말을 떠올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란 쉽

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88p

잠옷 차림으로 진심을 말하는 아버지도,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버지도 모두 나의 아버지였다.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본심과 명분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본심 속에도 명분이 있고 명분도 본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다면체라 여러 측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비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평범해 보여도 인간이란 그러한 생명체인 것이다. 훈장을 단 아버지를 보면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혁명을 외치는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39p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큰 책임감이 밀려왔다. 언젠가 어머니가 몸져눕는다면, 어머니에게 치매가 온다면 어떨까.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순간들이 어떨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었다. 나의 감정, 나의 도량 그리고 나의 경제력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완벽하게 간호하려는 어머니를 보조하면서 내 삶은 이미 파탄 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 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173-4p


이데올로기가 달라 서로 탓하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루가 증명해 주는 것만 같았다.


175p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209p

어쩌면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이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감독님의 가족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입니다. 어떤 부분은 마치 내 일기장을 열어본 듯한 느낌도 들고요. 부모님에 대한 사랑, 이념이 다른 데서 오는 반발, 원망등이 뒤엉켜 때로는 이것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알지 못하다가도 결국은 우리는 밥을 같이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건 아무려면 어떠냐로 마무리됩니다. 다른 과거를 가지고 다른 사회를 살아온 부모님과 내가 하나의 마음이 된다는 건 애초부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어쩌다 그런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축복 아니면 불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양영희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3편을 요리조리 살펴보았어요. 영영 모르고 살았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해준 양영희 감독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프와 이데올로기(Soup and Ideolog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