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J.D. 의 가족은 캔터키 출신입니다. 그는 시골을 떠나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샤도네이와 쇼비뇽 블랑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엄청난 노력으로 예일대까지 갔지만 그가 자라온 세상과 지금 발 붙이고 있는 세상은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그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소환하는 존재. 엄마. 베브는 한때 공부도 잘했던 학생이었지만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어느 순간 비뚤어져버렸어요. 베브는 그녀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아이를 가졌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약에 손을 댔고, 과거의 무언가로 인한 절망 때문인지 감정이 쉽게 요동치곤 했습니다.
그건 단지 그녀의 잘못만은 아닐 겁니다. 그녀 또한 그녀의 부모 때문에 어렵게 살았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13살에 아이를 가지게 됐고, 아이의 아버지와 함께 외딴곳으로 도망쳐 어렵게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뭔지, 살아간다는 게 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왜 행복은 대물림되지 않고 슬픔과 분노는 되풀이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그 엄마 또한 엄마에게 상처를 받아왔고, 엄마는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죠.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졌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를 주는 채로 그리고 상처를 받은 채로.
어린 시절 J.D가 엄마 때문에 무너져 내릴 때 그를 잡아준 건 외할머니였습니다. 그녀 또한 좋은 엄마, 할머니는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가족이 타락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J.D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불행해졌던 이유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누구도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요.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J.D는 엄마가 다시 약에 손을 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자신을 옭아매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만... 결국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엄마가 지나온 세월을 그리고 그녀가 마주했어야만 했던 세상을 이해해 보기로 합니다.
''우리의 시작이 우리를 정의하지만 매일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들에겐 없던 기회를 내게 주었다. 어떤 미래가 날 기다리든 그건 가족 모두의 유산이다.''
부모님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부끄러운 적도 많았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몸으로 일해오신 부모님의 삶을 어린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알아가는 세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의 세상은 부모의 세상과는 달라져갔죠.
엄마도 외할머니를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엄마는 꽤똑똑했는데 할머니가 교육을 시켜주지 않아 이렇게 됐다고... 때로는 자신의 불행을 모두 외할머니에게 전가하기도 했어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려요. 엄마는 13살부터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했습니다. 고향인 진주에서 부산으로 와서 미싱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아빠를 만나 결혼하고 언니와 저를 키우며 지냈어요. 결혼 후의 삶도 평탄하지는 않았죠.
제가 느끼기엔 엄마는 감정을 다루는 일에도 세상일을 마주하는 일에도 서툴렀어요.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에 4남매의 장녀로서 엄마가 받을 수 있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었겠죠. 엄마의 부모님 또한 사랑을 주는데 서툴렀을 거고요. 그래서 저와 언니도 자라나는 동안 많은 상처를 입었죠. 시간이 지나 이제는 엄마와 아빠라는 뿌리에서 조금 벗어나 살면서, 그들의 삶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여전히 같이 있으면 한숨 나오는 순간들이 많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해하는 건 힘들지라도 그들의 삶에도 그들의 고유한 서사가 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내가 그들의 서툰 행동과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걸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겠다고, 나를 갉아먹게 하지 않겠다고도 다짐합니다.
몇 해전, 엄마와 외할머니는 크게 싸운 후 절연 했습니다. 거기에는 외삼촌들도 연관되어 있었고, 저는 감히 관여하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집에 가끔 와서 며칠씩 있다 가셨어요. 엄마에게 혼나고 울면서 외할머니한테 엄마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면 외할머니는 제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고 엄마 편을 드셨죠. 그때는 외할머니도 밉고 엄마도 미웠는데 외할머니는 결국 엄마의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의 편을 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사랑했던 것은 분명할 텐데... 왜 엄마에게 그렇게 모진 말을 하고 이제는 연락조차도 하지 않는 건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나라고 엄마를 항상 사랑할 수 없듯이, 그리고 엄마라고인 나를 항상 사랑할 수 없듯이.. 엄마도 할머니와 그럴 때가 있지 않을까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외할머니에게 연락도 하고 혼자서 할머니를 찾아도 가보고, 엄마도 설득하면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고 저는 또 제 삶에 휩쓸려 엄마와 외할머니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최근에 할머니와 화해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얼마 전 외할아버지의 제사에도 엄마가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엄마가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는데 그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엄마도, 할머니도 마음속에 무거운 짐처럼 가지고 있던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였을까요.
참 서툰 사람들. 우리는 모두 참 서툰 사람들입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보다 이전 세대 사람들은 나보다 조금은 더 서툰 사람들이었겠죠. 어쩌면 크게 달라진 게 없을 수도 있고요.
부정해 봐도 벗어나려 해도 결국 가족은 내가 뻗어 나온 뿌리입니다. 내가 큰 나무의 가지가 되어 어느 순간 새로운 나무로 자라난다고 하더라도 나를 이루고 있는, 나를 정의하는 것들에서 가족을 빼버릴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대신, 좋든 싫든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한번 더 내미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것이 이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전히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하니깐요.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글을 쓰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작년 5월에 가족에 대한 영화를 소개할 때 이 영화를 소개하려고 했는데 못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