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이 모여 공간이 될 때
오랜만에 영화에 대한 글을 연달아 세편 썼습니다.
글도 안 쓰다 쓰려니 잘 안 써지는 거 같아서 몇 번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네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가 느낀 대로 쓰려고 하지만, 그래도 너무 일기장 같은 글은 되지 않았으면 해서 다듬고 다듬었는데 여전히 갈길이 먼 것 같습니다.
최근에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봐서 꼭 이 감상들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욕심을 좀 냈네요.
제가 쓴 글을 본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경가 정영선 선생님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만 봐도 너무 황홀하게 아름다웠거든요.
평소에도 산, 숲의 풍경, 특히 4월에서 5월경의 연둣빛 가득한 풍경을 좋아하는데,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 화면을 채워 넋을 잃고 봤습니다.
선생님은 조경할 때, 단순히 보기 좋은 나무와 꽃을 심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나무와 풀이 살아갈 생태를,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국토의 생태를 고려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 지역에서 잘 살 수 있는 토종 식물을 심으려고 하신다고 해요. 식물이 자라는 시기, 햇빛의 양, 그늘의 여부까지 꼼꼼히 따져 정성스럽게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장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선생님은 시를 사랑하는 분이세요. 신춘문예 당선도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이건 유퀴즈에서 들었어요.)
직업인으로서 시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꽃과 나무, 풀로 땅에 시를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이 탄생되었을까 싶어요.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집 근처에 있는 선유도 공원에 갔다가 ‘이 공간은 참 좋다. 편안하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공간을 선생님이 작업하셨다는 걸 알고는 ‘역시...’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연에게 편안하고 알맞다면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선유도 공원 외에도 샛강생태공원,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까지... 자연이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들은 어김없이 선생님의 손을 탄 곳이었더라고요.
아산 병원 신관 조경작업을 하실 때, 환자는 식물을 보며 생명력을 느끼고, 보호자는 힘들 때 잠시 눈물도 흘릴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게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업무에 지친 의사, 간호사들을 위한 배려도 마찬가지고요.
몇 년 전 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울 곳이 필요했어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던 그 병원 주변에는 나가서 걸어 다닐 곳조차 넉넉지 않았습니다.
그때 주변에 나무와 꽃이 있었다면 절망적이었던 그때의 마음도 위로받을 수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진심이고, 그걸 보존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우리 꽃과 풀과 나무, 숲을 남겨주고자 한 선생님의 작업을 ‘조경’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무, 풀, 꽃을 가꾸고 그걸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고 나아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