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 내가 속할 곳은 어디에

2026. 1. 3.

by 미스 프레드릭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내향형 중에서도 극 내향형이다.

MBTI로 하면 INFJ.

MBTI란 것이 흔하지 않던 2000년 초반, 대학교에서 MBTI 검사를 했는데 60여 명의 학생들 중 나와 친구 한 명만 INFJ가 나왔다.


3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하고, 무리의 중심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30대 초에 상경했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 유일한 방법은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참 많은 모임과 클래스에 참여했다.(영화 모임, 글쓰기 모임, 책 읽기 모임, 맛집 탐방 모임, 요가&명상 클래스, 등산 모임, 술 시음 모임 등)

모임과 클래스를 통해 알게 된 소중한 인연 몇몇과 아직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내가 모임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자산이다.


상경한 지 10여 년이 지나 서울에 정착하고, 결혼도 했으며, 내 인생의 베프를 만나면서 우리 둘만의 작은 세계 속에서 충분히 안정감을 얻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휴일이 되면 새로운 맛집과 카페, 전시, 공연을 찾아 다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집밥을 먹고, 요가를 한다.


그나마 일터 밖에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형 외향형으로 지내기도 했지만,

일터에서는 완전히 I다.

일단 회사 사람들과 성향이 잘 맞지 않았다.

몇 년 전 일부 직원들과 워크숍을 갔다.

프로 그램의 일부로 애니어그램 테스트를 했는데 나만 다른 게 나왔다.

나는 4번 개인주의자형(보라색)이었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분석가형(5번), 충실가형(6번)으로 나왔다.


아... 그래서 내가 회사 사람들이랑 잘 못 어울렸구나.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다.

예술성과 감수성이 높은 보라색의 내가 녹색과 파란색이 득실득실한 집단에 기어이 들어와 17년이나 있었다니...


할 말 다하면서도 자기 처신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게 안 됐다.

그래서 입을 닫고, 매사에 조심하게 됐다.

행동으로 묵묵히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꽤나 많다.

성향 상 소속감을 느끼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데 회사에서는 그게 되지 않으니, 겉도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나마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신뢰를 쌓고 친밀한 관계가 되었지만 같이 근무할 기회가 없어 물리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스스로를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위로하지만 가끔 울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회사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면서 얻은 것도 분명 있다.

쓸데없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 회사에서의 내 위치보다 내 삶에서의 내 위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일치감치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내려놓고 바깥세상을 탐험하며 살았기에 회사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것을 경험했다는 것도 나름 자부한다.


그래, 세상 일에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양면이 있는 거지. 어떻게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겠어.


내가 어쨌든 회사를 덜 스트레스받으며 다니기 위해서 되뇌는 말이다.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내가 자주 보는 유튜버 뉴욕털게님의 말처럼 그런 건 소설 속에나 존재한다는 건 이제는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여기가 아니라 어디라도 나라는 존재에게 딱 맞는 곳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도 하나의 발전이다.


뭘 해도, 누구와 있어도, 받게 될 스트레스의 레벨을 내가 견딜 수 있을 수준으로 맞춰 나가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짝꿍의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품에 안기고 서로 장난도 치면서 하루 중 가장 크게 진심으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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