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
나는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괜히 서글퍼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한여름과 한겨울을 생각하면 한겨울이 사람들을 더 혹독하게 내모는 느낌이 든다.
그에 반해 여름은 하루하루 '축제'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아했다.
여름과 겨울에 각각 방학이 있었음에도 여름 방학이 더 '방학'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려서 그런 것 같다.
작년 여름이 너무 비이상적으로 더워서일까.
세월이 지나면서 성격이 바뀌듯 좋아하는 계절도 바뀌는 걸까.
올해 겨울은 싫지 않다.
여름과 겨울 중 어떤 계절이 더 좋냐고 물어보면 오히려 겨울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겨울이 좋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겨울에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좋다.
어제 해 맏이 장소에서도 사람들의 입김이 겹쳐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었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따뜻함을 몸속에 지니고 있다는 표시처럼 느껴진다.
추울 때 마시는 따뜻한 카페라떼를 좋아한다.
부드러운 우유거품이 위로하듯 내 입술에 닿으면, 입과 코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데 그게 나는 참 좋다.
몇 년 전 눈 오는 날, 유명한 크로와상 가게에 가서 오랜 기다림 끝에 갓 구운 크로와상을 샀다.
근처 카페의 테라스 자리에 앉았는데, 의자가 엉뜨였다!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밖은 추웠지만 엉덩이는 따뜻했고, 갓 구운 크로와상을 한 입 하고 제대로 잘 만든 카페라떼를 한 모금하니, 코와 입에서는 따뜻한 입김이 새어 나와 사방으로 퍼졌다.
'폭설에도 돼지런을 떨어 온 보람이 있구나.'
나는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겨울에는 음악이 맛깔난다.
나는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좋아한다.
주로 산책을 하면서, 집에서 배경음악으로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여름에 클래식과 재즈를 들으며 걸으면 더 더워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래서 빠른 댄스 음악을 찾게 된다.)
겨울에 듣는 클래식과 재즈는 가슴을 후벼 판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 3번은 겨울에 들어야 제맛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또 어떻고...
챗 베이커나 스탄 개츠의 음악도 나는 여름보다 겨울에 듣는 게 더 좋다.
오늘 산책길에 들은 Greig의 Violin Concerto 3번 c단조 op.45 중 2.allegro espressivo alla romanza는 듣다가 울뻔했다.
클래식 작곡가들이 겨울이 긴 지방에서 살아서 그런지... 겨울에 음악을 들으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 넋이 반쯤은 나가 있어 감각이 무뎌지는데
겨울에는 감각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손끝의 아림,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얼얼한 얼굴, 폐 속 깊이 들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들이 내 감각을 깨운다.
겨울에 보는 책도 더 깊다.
추위라는 것이 사람을 좀 더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책도 더 잘 읽힌다.
이번 겨울 들어서 벌써 책을 5권 정도 읽었다.
겨울밤, 작은 조명에 기대, 조용한 곳에서 느릿느릿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으면, 책도 더 잘 읽힐뿐더러 내가 대단히 근사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간들이 내가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여름에는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뒤섞이는 게 참 싫다.
모르는 사람의 끈적한 살이 닿는 느낌도, 각양각색의 땀냄새를 맡는 것도, 누군가가 나의 안전거리에 침범하는 것도 꽤나 짜증 나는 일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사람의 존재가 고맙다.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가 되어 겨울에는 주변 사람들이 귀하다.
사람을 곁에 두기보다 피하고 싶은 일이 더 많은 요즘 사람들에게 아직은 우리가 서로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