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3 터지고야 말았다

2026. 1. 21.

by 미스 프레드릭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

모든 것이 좋았던 오늘 하루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니 내가 터지고야 말았다는 말이 맞겠다.)


불분명하게 기분 나쁜 무언가가 있었다.

대부분의 기분 나쁨이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듯

나의 기분 나쁨도 그랬다.

딱 꼬집어 '이게 기분 나빠'라고 할 수 없는 형체도 불분명한...

하지만 상대에게는 '나 기분 나쁨'을 표시해야 성에 차고,

그걸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유아적인 마음.

한 동안 조용하던 나의 유아적인 마음이 왜 갑자기 고개를 훅 들고 나왔는지

나도 당혹스러웠다.


나름대로 짝꿍을 배려하기 위해 내가 해왔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나는 내가 한 것만큼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입을 닫아버렸다.


우리가 다시 얘기를 나누자, 참았던 감정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내가 이미 짝꿍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것들도 불만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실은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대하고 바라면 안 된다는 걸 글로 배워 잘 알지만

내 몸과 마음에 벤 '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내 노력은 아직 뼈를 깎는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나 보다.


그만해야 함을 알면서도 뚫린 입은 바닥이 드러나도록 말들을 쏟아냈고,

나는 내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 어쩌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를 나 자신에게 물었다.


여전히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기어이 다시 나를 들쑤셔

내 마음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미성숙한 아이가 그대로 어른이 돼버려 이리도 서툰가 보다.

참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말하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은 마음의 때가 됐다.


긴 대화 끝에 서로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 잘해 보자.라고 말했지만

나는 앞으로도 자신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잘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참 동안 볼 일이 없었던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김혜남 지음)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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