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난 집주인, 새집 안 부럽다

by 미미

새 아파트만 두 번, 10년을 살다가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지금의 아파트에 살기까지 생각보다 큰 결심은 필요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다 떠난 학교를 가는 게 버거웠던 큰 아이를 생각하면 새집이고 큰집이고 가릴 여유가 그땐 없었다. 하루빨리 아이가 적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게 먼저라 생각했다. 때론 아이를 좀 더 달래서 적응을 시켰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깐씩 스치기도 하지만 전혀 후회는 없다. 기복은 있었지만 꽤 괜찮게 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까.



물론 내가 누렸던 넓은 안방 생활을 포기하고, 남의 집 반전세 살이를 하면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화장실이 1개여서 남은 세 식구가 불편하다 투정을 해도 나는 조용히 사용할 시간을 눈치 봐가며 조정하고, 최대한 깨끗하게 집안을 관리하여 애정 어린 내 집이라는 느낌을 전해주려 애쓴다. 굳이 하루하루 남의 집이라는 인식을 하고 살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그냥 내 집이다.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딱 두 곳의 집을 봤다. 첫 번째 집은 40년 가까이 한 번도 손을 안 댄 느낌이라 도저히 살 자신이 없어 바로 포기했고, 다음으로 만난 집이 바로 지금 이 집이다. 전체 리모델링을 화이트톤으로 싹 끝내자마자 집을 보러 온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 보자마자 바로 이거야 하고 계약금을 지불했고, 후에 내가 살던 집이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이 넘게 구축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다.



구축아파트이긴 하지만 실제로 현관문만 열고 들어오면 구축 느낌은 전혀 없다. 꼼꼼하고 센스있는 주인의 구석구석 섬세한 리모델링의 자취가 남의 집 반전세살이라는 기분을 날려 보내준다. 화장실 타일조차 내 마음에 들게 바꿔놓으셨고, 거실 간접등이며 주방 식탁등 또한 주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물론 백 퍼센트 다 만족할 리 없는 게 사람 마음, 이만하면 4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충분히 살만하다는 것. 소소하게 겪는 불편함들은 언젠가 이 집을 떠나 더 나은 환경에 가서 생활을 하게 될 때 '그땐, 그랬지'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지난 1월 초, 평소 연락이 오고 갈 일이 거의 없는 주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2층이라 소음도 있고 외풍도 있을텐데 인테리어시 중문시공을 놓쳤었다고.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원하면 중문을 설치해 주신다고.



아무리 여유가 있는 주인이어도 세입자에게는 주머니를 닫으려고 하는 법인데, 선뜻 해주시겠다고 먼저 연락을 주시다니 이게 꿈인지 생신지. 연락을 주신 것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연식이 40년이나 넘었고 재건축 얘기가 오늘내일하는 아파트라 굳이 우리 때문에 이제 와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살짝 한발 물러나 여쭈었다. 재건축이 코앞이면 굳이 안 해주셔도 된다고, 그런 게 아니고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이면 중문이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감사 인사와 함께 문자를 전송했다.



그렇게 우리 집 중문은 일주일 안에 설치가 완료되었고, 우리 집은 좀 더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최신 유행의, 기존의 집 분위기에 안성맞춤인 디자인으로. 그 김에 나는 대청소를 시작했고, 변화된 집 분위기를 원하는 딸에게 기분 전환이 되는 환경을 선물할 수 있었다.





세를 놓고 온 우리 집도 다음 계약 때는 도배를 바꿔야 겠다는 후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세상살이 돌고 돌아 다 같은 마음인 법. 굳이 깐깐한 주인이 될 필요도, 괜한 거리감을 갖는 세입자가 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