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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10. 2024

끝나지 않는 전쟁

나무를 피하라

안타깝게도 전쟁이 일상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거의 매일 전사자 소식, 신무기 소식, 파병 소식 등 전쟁과 관련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덕분에 지구를 바라보는 달나라 토끼들은 매일 밤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을지도.  




요즘 전쟁에서 핫한 신무기를 꼽자면 단연 드론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 이와 비슷한 상황이 구축아파트에서도 늘 있다. 새똥 공격이라고 들어는 보셨나.


5+5년 동안 두 번의 신축아파트에 살았던 나는 지하주차장 생활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편한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나를 내려주고 기다려주던. 그토록 이 상황이 감사해야만 했던 것인가. 주차에 대한 애로사항은 꿈에도 생각 않고 대뜸 구축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사실 이사의 이유가 너무나도 크고 굵었기 때문에 그깟 주차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었다. 이번 집에서도 당연히 나는 잘 살 테다! 확고한 마음으로 이사를 왔는데,


                                                                                                       OMG...

                                                                          

주차자리도 없어 힘든 마당에 새는 똥을 어지간히 싸댔다. 오늘 세차하면 내일 싸고, 오전에 세차하면 오후에 싸고. 고만 좀 싸자 얘들아. 아니, 나무가 크고 울창해서 먹을 것이 그렇게나 많은 거야? 먹으면 싸고 먹으면 싸고, 꼭 우리 집 말라깽이 둘째 아이 같구나. 그런데 주차라는 것이 이렇게도 삶에 크게 차지하는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외출할 때마다 스트레스였다. 기분 좋게 단장하고 나와서도 기분이 나빠졌다. 그놈의 새똥 때문에!!!


자동차 새똥 세례


당장 출발을 해야 하는 데 나가서 차를 볼 때 이모양이면, 진짜 절망이다. 새똥으로 장식된 차를 차마 운전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데려다줘야 하는 상황에선 더 난감했다. 그 순간마다 말끔하게 차를 준비시켜 주시는 전용 기사분이 있었음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을 하고 주차된 나의 차를 봤는지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 단지 코너 나무 밑에 주차를 했더라. 그런데 그 나무는 새들이 너무 좋아해. 거기에 주차하고 한 번도 새똥을 안 맞은 적이 없었어.”

헉, 이게 뭔 소리여. 당장 가서 차를 옮기겠다고 하자, 이미 해가져서 그 시간쯤 주차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해서 나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래, 오늘은 괜찮겠지?

백퍼 똥 맞을 자리


이튿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 차는 똥차가 돼 있었다. 그 이후에도 세차를 하고 불과 1시간 남짓 주차한 후에도 똥차가 되어 있었고, 며칠째 차를 쓰지 않았을 때는 똥으로 뒤덮인 차가 너무 더러워서 진짜 화가 났다.             


! 악! 악! 




재력도 안되고, 부지런도 못 떨겠고, 도저히 이렇게 살 순 없겠다 싶어 남편과 함께 주차노하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긴 괜찮고 저긴 별로고, 요긴 적당하고.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은 우선 나무만 피하자.


봄, 여름, 가을에는 나뭇잎이 무성하므로 땡볕이라도 좋으니 무조건 나무가 없는 곳으로. 물론 한여름 40도 가까이 되는 더위에 땡볕 주차도 비추하고 싶지만 그래도 세차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땡볕을 추천한다. 이중주차를 해서라도 나무 아래만큼은 피하자. 특히, 참나무를 피해라. 모든 새들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백퍼 똥세례다.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지만 날도 추우니 그냥 안전하게 땡볕에 대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땡볕 주차를 감행하고, 세차 횟수를 줄였다. 물론 주차 자리가 협소한 구축아파트의 주차장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 무조건 이중주차를 하고, 다른 사람의 차를 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절대 나무밑은 선호하지 않겠다.     


구축아파트, 그래 살만하다. 생각보다.

그런데 새똥만큼은 진짜 피하고 싶은 마음일터. 땡볕 자리가 최고로 비싸다는 것만 알고 오시라. 새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항복도 답이 아니요, 오직 피난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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